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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혼잣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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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잠 Jan 28. 2021

몰래

이소라를 듣는다

얇고 투명한 얼음 위를 사뿐히 스치는 깊은 바람의 소리

하늘을 보랏빛으로 물들이는 어스름 부드러운 공기의 소리


아름답다


소파 끝에 꽁꽁 웅크린 비쩍 마른 건조한 몸뚱이

매니큐어가 반쯤 남은 발가락

얇은 피부 위로 핏줄이 일어서는 손가락

부피도 색도 잃어가는 머리카락

귀에 닿은 팔을 미세하게 흔드는 염치없는 심장의 박동


아름답지 못해

아름다운 것들의 호흡과 두근거림을 몰래 훔쳐보며

조용히 마른 침을 삼킨다

먹고 싸고

약에 취해 식욕을 참으며 잠에 취하는 시간을

목까지 차오르는 초라한 것들을

더는 부끄러워할 힘도 없어

구석에 숨어 몰래

착각이라도 해보려고 몰래



2018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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