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그런 것이어서는 안 된다
기분이 좋아지는 주문 같아
너도 해봐 눈을 감고 중얼거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눈을 감고 바람을 느껴봐
엄마가 쓰다듬던 손길이야
멀리 보고 소리를 질러봐
아픈 내 마음 멀리 날아가네
- 노래 <살다 보면> 가사 중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에 많이 나온 노래다. 아마도 가창력을 뽐내기에 좋은 노래라 많이 들리는 것 같다. 그런데 그 가사가 너무 불편하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지니까 사는 게 괜찮을까
가사를 보면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엄마가 해 준 말이다. 아마도 딸에게 해 준 말인 것 같다.
엄마는 왜 딸에게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라고 했을까. '살다 보니 살아진' 삶을 살았던 엄마는 행복했을까?
삶은 '살아야'지 '살아져서'는 안된다. '살아지는' 나는 내 삶의 주체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삶의 주체로서 살지 못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행복한 삶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을까?
그런데도 어떻게 딸은 엄마의 이 말을 생각하면서 기분이 좋아질까? 어떻게 아픈 마음을 날려 보낼 수 있을까?
곱씹고 곱씹어 봐도 이 가사는 나에게
'그저 죽지 않으면 살아있는 거다, 그러니 견뎌라'라고 들린다.
가사는 가사이고 <서편제>라는 이야기의 맥락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오랫동안 여성들의 삶이 '살아지는' 것이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래서 더욱 노래를 들을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엄마의 말을 떠올리는 딸은 기분이 좋아져서도, 아픈 마음을 날려 보내서도 안된다.
'살아지는' 것은 아름다울 수 없고 아름답게 이야기되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