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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수 Sep 06. 2021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이 애틋하게 구겨질 때

내원


따분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야. 살다가 질리는 구석이 있는 것처럼 점점 말이 겉돌아서, 속이 텅 빈 사람이 되려는 게 아니야. 파편으로 남으려는 게 아니야. 그렇게 지나가버린 시간들 중에서 유독 나의 이야기를 찾고 싶은 것 뿐이야.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확신이 들지 않을 때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 거지. 그럴 땐 부단히 다른 사람들이 정해놓은 기준을 뒤적이며 그게 나와 부합하는지 맞춰보는데 그럴수록 어느 구석은 초초해지니까. 질문은 이렇게 수정되어야겠지. '나 즐기고 있나?'


그렇지 않다면 이유를 찾아야겠지. 한 층씩 내려가며 훑어보는 거야. 최근 하고 있는 일들인가, 만나는 사람이라든가 아니면 목표했던 바라든가. 그런 다음에 각층에서 발견된 문제의 공통점을 축출하는 작업이 필요할 거야. 그 공통점 안에 즐기지 못한 진정한 이유가 있겠지.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이 있자나 '오늘을 즐겨라'. 그런데 즐긴다는 건 나를 욕망의 넝쿨 속으로 밀어넣는다는 의미가 아닐 거야. 그 끝에 파멸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조금이라도 안다면 말야. 즐긴다는 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일치시키는 진행형일 때만 가능한 일이겠지. 


이 글은 그런 일치를 도모하기 위해 적는 나의 처방이야. 




진단


즐기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 건 3월 무렵이었습니다. 그땐 아직 눈이 내리고 있었고, 그 눈발을 보며 한 해가 어떻게 갔으면 하는 바람 정도가 있었을 뿐이지요. 그래요. 그땐 그런 바람도 있었고 날씨도 계절도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이미 3월이었음에도 아직 한 해 바람을 갖고 있었긴 했지만,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런 것들이 마음에 들어와 생활할 만큼 저는 즐기고 있었던 것 같아요.


3월 15일에 논문 중간발표가 있고, 여러차례 지도교수님과 상담을 받으며 장차 8월 말이 되면 논문을 완성하게 되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한 학기가 지나도록 논문의 주제가 계속해서 바뀌었고, 이제 8월 말이 다가올수록 저는 더 초조해졌지요. 초조한 마음을 달래려 옷도 사보고, 자소서도 써보고, 친구도 만나보고, 아예 내려놓자 여행도 다녀왔어요. 그런데 불안이 씻기질 않는 거예요. 


왜 나는 논문을 일정대로 완성할 수 없었을까. 이 문제는 복잡해요. 텍스트나 주제에 대한 나의 중심이 잘 잡혀 있지 않은 문제부터 지도교수님이나 학업 분위기의 탓도 안 할 순 없겠지요. 그런데 왜 나는 논문을 일정대로 완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즐길 수 없었을까. 이 문제는 심각해요. 나의 중심이 잘 잡혀있지 않은 문제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이 문제를 잘 해결하면 나머지도 척척 해결되겠죠.


나는 나를 온전히 놓아주지 못해요. 기대치가 있거든요. 그 기대치를 다 채우지 못한 나에게 화가 나고, 그 기대치를 갖고 있지 않은 나에게 속상해요. 그런데 그 기대치가 말이죠. 실은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그 기대치에 도달하고자 하는 마음. 그래서 진정 내가 원하는 걸 찾는 일, 나의 이야기를 찾는 일이 선행되어야 해요. 


이제 내가 원하는 일은 나의 이야기를 찾는 일과 그것의 기대치에 도달하는 일. 이 두가지 뿐이지요. 그것이 아닌 모든 다른 일들은 나와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겠죠. 그러면 나의 이야기를 찾기 위해 했던 노력들을 알아보고, 그 노력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한 다음에, 그 실패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을 해결하면, 나머지 문제들이 해결될 거예요. 



1. 내 이야기를 찾기 위해 했던 노력들


- 논문 주제 설정에 매진하기. 그러나 ____로 인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 회사 다녀보기. 그러나 ____로 인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 자소서 써보기. 그러나 ____로 인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 대화해보기. 그러나 ____로 인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2. 실패한 까닭


논문에 실패한 까닭

: 정확한 타깃 설정의 실패 (예 : 웹소설과 서사, OSMU와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 : 어떤 지점을 얘기하겠다는 건지 명확하지 않았음) 


회사에 실패한 까닭

: 업무 적응의 실패 (예 : 퍼포먼스마케팅, 엑셀작업 및 GA데이터 분석의 반복 : 생각했던 업무와 달랐음) 


자소서에 실패한 까닭

: 한 지점으로 엮이지 않아 실패 (예 : 담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아서 날카로운 한 지점을 발견하지 못했음)


대화에 실패한 까닭

: 깊이 있게 들어가지 못해 실패 (예 :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아 말을 차곡차곡 하나씩 쌓거나 또박또박 펼쳐나가지 못했음)



3. 실패의 공통점 


나는 무엇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두 문장으로 끊어지는 간단한 생각을 완성하지 못했다. 삶에는 여러 요소들이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요소들을 조목조목 얘기하는 것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중에 하나만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 논문 구상에 있어서도, 회사 업무에 있어서도, 자소서 작성에 있어서도, 대화 진행에 있어서도 스스로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한번에 다 이야기할 순 없다. 그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할 것이다. 그 하나를 갖고 시작한 이야기에 다른 모든 것들이 담기도록, 하나씩 하나씩 정성껏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즐기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하나를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모든 것이 이야기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전부가 아니란 이유만으로 하나의 자리를 계속 비워두기만 한다면, 삶은 텅 빌 것이다.





처방


하나를 온전히 채워볼까요. 손쉽게 내어주지 말까요. 그렇게 한 마디를 하더라도 온힘을 다해보는 거예요. 그리고 뒤돌아보지 말까요. 그럴 바에 차라리 다른 한 마디를 온힘을 다해 준비하는 거예요. 그렇게 한 마디가 다음 한 마디를 만날 때, 견고한 문장은 완성될 겁니다. 그것은 당신의 온힘으로 지은 지금 여기의 이야기. 지금 이 문장을 읽고 있는 당신은, 이제 이 문장을 읽고 있을 것이고, 이제 이 문장을 살게 되겠지요. 


모른 척할 순 없겠죠. 할 일이 많다며 투덜거릴 필요도 없겠어요. 주어진 문장을 그저 차근차근 잇는 작업이 필요할 겁니다. 욕심 부리지 말고요. 논문을 작성할 때에도 온힘의 한 마디를 준비하는 겁니다. 그 다음 문장이 이어지겠죠. 일을 시작할 때에도 온힘의 한 마디를 준비하는 거예요. 자소서와 대화도. 당신의 둘도 없는 진심으로 뽑아낸 한 마디, 당신이 걱정하지 않아도 그 한 마디가 다음의 당신을 구원할 겁니다. 


*주의사항

절대로 한 마디를 소홀히 하지 않을 것. 그 연결이 끊어지는 순간 상황은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귀가


이렇게 적고 나니 한 풀 가벼워졌을 뿐 아니라 조금 기대도 된다. 아직 아무런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것이 더 이상 문제라고 느껴지지 않는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닐까. 원인이 결과가 된 것이 아니라, 잠시거나 착시라도 결과가 원인이 된 건 아닐지. 


그건 그러니까 고백 같은 것. 나는 하얀 종이 위에 편지를 적듯 나에게 가득찬 문장들을 적어 보낸다. 그러면 어느 날 삶에 도착하겠지. 타자가 자아를 앞서가지 않는 곳. 온전히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새로워지는 곳. 결과가 원인이 될 수 있는 곳. 그곳이 나의 집이다. 












* 추신 


과거                현재                미래                    현재                미래                 과거                미래

결과                원인                결과                    원인                결과                 원인                결과


이런 일은 물론 공간적으론 불가능하지만, 시간적으론 가능하다. 

가령 이 문장을 적고 있는 지금의 나는 현재의 나이지만,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의 나는 과거 나의 일부이거나 그 총합이다. 마찬가지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는 '방금'이었던 '지금'이 지나간 후의 누군가다. 그 누군가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누군가지만 이미 지금 여기 있다. 이러한 실재의 경험이 타임패러독스, 타임슬립, 네모난원, 동그란세모 같은 모순의 경험을 비논리적으로 가능하게 해주는 삶의 실재 단위가 아닐까. 


따라서 결과가 원인이 되는 곳, 시간이 공간을 앞지르는 틈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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