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엄마가 된다고?!
착각을 했던 것이 있다. 어렸을 때 즐겨봤던 세일러문이나 웨딩피치 같은 만화를 보면 여주인공들이 요술봉을 흔들며 주문을 외면 다른 캐릭터로 변신한다.
“임신이에요 “라는 말이 이 만화의 주문처럼 내가 임신인 것을 확인하고 나면 바로 ‘엄마’라는 역할로 변신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난 변신이 되지 않았다.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을 확인했을 때도, 처음 산부인과에 가서 아기집을 봤을 때도, 그리고 우렁찬 심장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도 기억에 남아있는 내 느낌은 ‘얼떨떨함’이다.
“내가 진짜 엄마가 된다고? 우리가 정말 부모가 된다고?”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했다. 활발한 태동을 느끼는 임신 34주가 된 지금도 ‘얼떨떨함’은 아직 남아있다. 한 생명을 내 속에 품고 있다는 것이 너무 신비롭고 기적 같아서 믿기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배 속에서 무언가 꿀렁꿀렁 움직이는 느낌을 받으니 “진짜 내 속에 무언가 있긴 한가보다” 싶다. 처음에 느꼈던 얼떨떨함이 백지의 얼떨떨함이었다면 지금은 미색의 얼떨떨함이다.
아이를 출산해서 정말 내가 직접 눈으로 보고 안으면 정말 엄마가 되었다는 실감이 날까? 그때가 오면 확실히 “아! 난 이제부터 엄마다!”라고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을까? 아직 그 순간이 오지는 않았지만 난 그때도 얼떨떨할 것 같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손바닥 뒤집듯 쉽게 엄마로서 딱 변하는 것이 아니고 서서히 엄마라는 역할에 스며드는 것이다. 스며드는 과정에 있는 것. 엄마로서는 약 32년 동안은 살아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인 듯 하지만 가끔 나도 모르게 죄책감이 올라올 때가 있다. 이전까지 해오던 좋지 않은 습관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냥 여태 동안의 나로서 행동할 때 그런 느낌을 받는다.
‘난 엄마인데 이런 것도 이겨내지 못할까?‘
‘혹시라도 나의 이 유혹의 빠짐에 의해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안 좋은 영향이 가진 않을까?’
이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 나를 문다.
엄마가 되고 나면 내가 원하던 이상적인 사람인 완벽한 원더우먼으로 변신이 되어야 하고 그런 게 당연하다고 막연하게 생각한 듯하다. 물감이 물에 퍼지듯 차츰 물들어가는 과정인데 너무 엄마가 된다는 과정을 쉽게 생각했나 보다. 조바심 갖지 말고 한 단계씩 ‘엄마‘로 차근히 물들어가는 과정을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