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10년 그리고 결혼 4년차의 이야기
관계는 어렵다. 관계를 잘 맺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능력이다. 관계에도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누구나 자신에게 어느 정도 좋은 이미지의 가면을 씌울 수 있다. 긴장하고 조심스레 관계를 맺다가 이제 익숙해졌다 싶을 때쯤 조심성이 없어지기 시작한다. 점점 관계를 위해 나를 꾸미는 것에 소홀해지기 시작하고 민낯이 드러난다.
부부의 관계가 그렇다.
연애와는 다르다. ‘결혼’이라는 제도적 계약을 믿고, 서로를 편하게 대한다는 명분 아래 점점 관계에 대한 노력을 줄였던 것 같다. 상대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다. 연애할 때 좋았고, 이 정도면 너무 잘 맞았으니 결혼해도 문제없겠다 생각했다. 연애 때 철없던 나의 모습을 다 받아주고 다 받아주고 아낌없이 주는 그런 나무 같은 사람이니 결혼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 후 우리의 관계는 달라졌다.
신랑은 연애 때처럼 투정 부리던 나를 이제는 받아주지 않고 본인도 상처가 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평생 가야 하는 관계이고 중요한 관계이니 앞으로 본인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상처 받은 부분에 대해서는 다 담아 두진 않겠다고 말했다.
결혼을 후회했다.
난 이런 사람이어서 결혼한 게 아닌데 연애 때는 안 그러다가 왜 이제 와서 그러나 원망도 했다. 하지만 신랑은 그렇게 해야 나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고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상처에 대해 말할 것이라고 했다.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10년을 사귀고 결혼을 했지만 연애 때 발견하지 못한 모습을 보니 반감부터 들었다. 그건 너의 잘못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배신감마저 들었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게 내가 미운 짓을 해도 다 받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계속 이런 것으로 다툼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과연 난 그 사람에게 이렇게 내가 생각하는 정의대로 ‘사랑’을 해주고 있나?’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서 상대에게 그걸 바라는 나의 모습이 모순적이었다. 이런 생각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상대에게 폭력적인지 알게 되었다. 상대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려면 나의 요구에 부응하다 언젠가 그 상대는 사라지는 것 아닌가. 그렇게 되는 건 너무 싫다.
연애 때는 누군가 더 희생하고 맞춰주는 사람이 있는 ’ 남자‘와 ’ 여자‘의 관계였다면, 부부는 정말 서로 잘 배려해주어야 하는 ’ 사람‘과 ’ 사람‘의 관계인 것 같다. 누구 하나가 무조건 희생하고 받아주는 이런 관계는 오래가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하다. 건강한 관계가 되려면 서로가 서로를 위해주고 배려해 주어야 한다. 항상 서로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야 고이지 않고 흐른다. 그 과정이 쉽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나의 부족한 면을 보고 나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또 서로에게 실망하고 때때로 우울감도 느끼며 성장통을 겪는다. 성장통을 겪어도 그 길이 건강한 관계로 향하는 길이라면 서로 맞잡은 손을 놓지 않고 기꺼이 걸어 나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