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일기
산부인과에서는 출산이 가까워질 때쯤, 언제 병원에 와야 하는지 이야기해준다. 그중 많이 나오는 단어가 '양수'와 '이슬'이다. 양수가 세거나 이슬이 비친 뒤, 진진통(진짜 진통)이 5분 간격으로 오거나 양수가 파수되었을 때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진진통이 무엇인지, 양수가 세는 게 무엇인지, 이슬이 비친다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는 나는 출산이 가까워질수록 두려웠다.
'이게 이슬인 건가?'
'자궁수축인 것 같은데 이게 진통인가?'
하루에도 몇 번씩 혼자 '이게 ~인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2월 1일 저녁 9시.
화장실을 갔다가 나오는 데 갑자기 양수가 세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30분 동안 팬티라이너 3장을 갈았다. 진통은 없지만 양수가 세는 것 같다고 분만실에 전화를 했다. 양수가 세거나 터졌다면 아가에게 감염의 위험이 있다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 일단 양수인지 아닌지 판별을 하는 게 좋겠다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에 분만실로 향했다. 빨리 가서 확인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 우리 부부는 옷만 갈아입고 출산 가방도 놓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출산의 과정으로 진입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검사 결과 양수였고 이미 자궁문이 2cm 열렸고 항생제를 맞아야 해서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밤 11시. 이렇게 출산의 서막이 열렸다.
이때까지 진통은 별로 없었다. 무통주사를 맞으면 자궁문이 늦게 열려 더 힘들 수도 있고, 사람에 따라서는 무통주사가 안 먹히기도 한다고 해서 맞을지 말지 고민했다. 얼마나 아플지에 대한 감이 서지 않아서 더 고민이 되었다. 짧고 굵게 끝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정말 이렇게 했으면 큰일 날뻔했다.)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등에 주사를 놓는 데 처음 맞아보는 주사여서 그런지 너무 무서웠다. 꼬리뼈까지 싸-아해 지고 다리가 저려오는 느낌에 '혹시 내가 잘못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올라왔다. 무서워서 다리랑 팔을 얼마나 꼬집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새벽 5시. 진통이 이때까지도 미비했다.
결국 관장을 하고 분만 촉진제를 사용했다. 촉진제를 맞고 한 2시간쯤 지나자 진통이 시작되었다. 진통은 파도타기와 같았다. 파도처럼 막 몰려왔다가 지나가고 잠깐 잠잠해졌다가 또 몰려오고 지나가 고를 반복했다. 이미 출산을 경험한 지인들에게 출산의 고통이 어떤 건지 진짜 많이 물어봤었는데 그때 아무리 설명을 잘 들어도 감이 오지 않았었다. 직접 겪어보니 정말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고통이었다. 심하게 급체를 해서 토할 것 같고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생리통이 절정에 달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하면 될까?! 몸이 내 의지와 다르게 오한이 든 것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진통이 오면 고통에 몸부림치다 지나가면 잠깐 의식을 잃었다가 또 오면 몸부림치기를 반복했다.
아침 9시 반. 자궁문이 3cm 정도 열렸을 때, 무통주사를 투입했다. 다행히 무통주사가 잘 들어서 한 1시간 정도 약간 의식을 회복했다. 너무 아파서 정신이 희미해져 갔는데 무통주사가 들어가니 정신이 좀 돌아와 신랑이랑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그러다 자궁문이 7cm 정도까지 열리고 무통주사가 안들을 무렵 본격적인 분만 준비에 들어갔다. 본격적인 분만준비라 함은 이제 본격적인 힘주기에 들어가는 단계이다. 제대로 힘을 주어서 아가도 고생하지 않도록 빠르게 내보내는 게 핵심이다. 내가 아픈 것 보다도 세상에 나오려고 고생하는 아가가 덜 고생하도록 해주고 싶었다. 엄마 뱃속에 편안하게 있다가 본인도 그 길을 뚫고 나오려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더 의지가 굳건해졌다. 내가 힘을 준 상태로 숨을 좀 오래 잘 참아야 산도를 빠져나오는 아가가 다시 안으로 쏙- 들어가지 않고 쑥- 나온다기에 힘을 주고 입술이 파래지도록 숨을 참았다. 그렇게 반복하기를 여러 번.
오후 12시 50분. 우리 아가를 내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세상에 나와 어리둥절해하는 아가가 나와 눈을 맞췄다. 그 순간 거의 내 심장은 멎어버리는 줄 알았다. 너무 신기하고 감격스러워서.
안녕, 아가야. 만나서 반가워!
아이와 첫인사를 나눴다. 이렇게 반가운 만남이 또 있을까?! 상대가 누구인지 몰라도 그냥 너이기에 너무 반가운 이 느낌. 그냥 온전한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느낌. 이 순수한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아이를 갖고 뱃속에 열 달을 품고 있을 때도 '엄마'였지만 가슴에 품으니 진짜 '엄마'가 된 느낌이다. 지금은 조리원에 있어서 아직 '육아'의 '육'도 시작하지 않은 단계이지만 지금은 이 경이로운 감격에 더 폭 담기고 싶다.
산모가 100명이 있다면 100개의 출산 스토리가 있다. 어떤 분만 형태를 택했든 어느 하나 쉽게 출산한 스토리는 없다. 세상의 엄마 모두가 이 한 생명을 세상에 나오게 하기 위해 자신이 평상시 낼 수 있는 용기와 에너지의 몇 배를 썼을 것이다.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엄마의 자격이 충분하다. 한 생명을 길러나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없는 건 아니다.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의심도 올라온다. 유축을 하고 있을 때는 '여긴 어디, 나는 누구인가?'라는 예전의 나와 다른 나를 마주할 때 울적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도 참 많은 어려움들, 힘든 점들이 있겠지만 출산이라는 한 고비를 용기 있게 넘긴 나를 잊지 말고 씩씩하게 하나씩 잘 헤쳐나가고 싶다.
엄마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나에게.
안녕?! 만나서 반가워.
우리 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