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기록하는 힘에 대하여
안녕,
여기 오랜만이야.
조금은 느린 일상의 속도를 꾸준히 기록하기로 결심하며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남긴다.
스물여덟 번째 여름을 맞이하면서 새로 산 카메라의 필름을 인화했다.
이런 골목길에 다시금 정이 가기 시작했다.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보면서 그동안 괜히 아쉽고 미워 보인 건물들과 도로들에 다시 정이 든다.
이제는 도로 옆의 들풀들이 눈에 밟히고 하늘의 뭉게구름이 더 잘 보인다.
결국 내가 어디 있든지 마음가짐의 차이라고 생각하며 주파수를 다시 올려본다.
사진의 장소는 남영역 근처의 어느 카페의 한 구석이었지만,
자기만의 방이라는 중요한 마음속 공간을 떠올리게 하는 컷이라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설정해뒀다.
사진 속 푸른빛들이 마음에 여름을 조금씩 들여보낸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마음은 갈팡질팡 참 힘든 시간을 보냈다.
가족들이 참 밉기도 했고, 내 마음대로 될 수 없는 상황이 원망스럽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별이 내 앞의 길을 크게 바꿔놓는데 적응하는 것이 참 어려웠다.
짐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특히 초반에 힘들었다.
장염에 걸려서 거실 바닥에 누워서 링거를 맞아야 했을 때,
딱딱한 바닥이 낯설어서 그 자리를 어서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과 결국 비슷한 결이겠지.
한 시간 가량 가만히 누워서 링거를 맞아야 했던 내게 최선의 방법이자 유일한 방법은 온몸에 힘을 풀고 상황에 나를 맡기는 것이었으니.
인생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서, 내일도 모레도 내년도 사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이 중요한 거라고 했다.
지금 여기 현재에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웁스, 기차에서 이 글을 쓰다 내릴 역을 지나쳐버려서 부산으로 가게 됐다.
참 오랜만에 집중해서 글을 쓴 시간이라 그걸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길이라고 위안해보자.
일상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하루 생각의 작은 조각들을 모으는 작업이다.
글을 쓰고 있을 때는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차분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이런 작은 조각들이 여기 지금의 나의 위치를 밝혀준다.
어느 날 이 글을 다시 읽을 나를 위해 문장을 만들어보자.
이제 가벼운 글이라도 자주 조금씩 기록해보겠다.
살아가는 생각들을 기록하자.
꾸준히, 조금씩, 나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