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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e Kim Mar 01. 2022

너를 떠나보내며

11월 28일, 그리고 오후 네시를 잊지 못하는 마음

너를 기리며 그리는 기린 그림

2021년의 나머지 반,

사랑하는 너를 보낸 11월 28일 오후 네시 경을 절대 잊지 못할 거야.

함께 만들어 갈 거라고 마냥 믿어왔던 세계는 속절없이 눈앞에서 잘려나갔으니까.


불에 태워보내 까만 재만 남긴 너를 담는 유골 단지를 고르러 간 날은 참 잔인했지.

피에타라는, 이름만으로도 아픔을 느껴야 했던 장의사의 사무실에는 여러 크기와 색상의 유골함이 진열되어 있었고,

그중에서 우리는 너에게 가장 어울릴, 그리고 네 마음에 가장 들 검은색의 단정한 유골함을 골라야 했다.


너를 보내는 기간은 참 적절하게 짧고도 길었다.

헬기를 타고 카셀 병원으로 이송된 지 딱 한 달 만에 너는 우리 곁을 떠났으니.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우리는 너의 병상 옆에서 오르락내리락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많이도 탔다.


넌 한 달보다 더 긴 시간 동안 너의 곁에 있기엔 우리가 많이 지쳤을 거라 생각했겠지?

그렇다고 한 달도 안 되게 우리 곁을 떠나기엔 너도 우리도 많이 아쉬웠을 거야.


병상에서 의식이 거의 없이 누워있는 너의 손을 잡기 위해

너의 가족들과 카셀로 가던 길은

울음과 불안으로 가득 찬 채 속이 울부짖고 있었어.


그때만 해도 난 널 이렇게 보낼 거라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

신기한 우연들이 우리에게 손톱만 한 희망을 매번 안겨줬으니까.

꺼져가는 불씨에 자꾸 마른 장작이 한 톨씩 얹어지더라.


카셀에서 묵었던 비앤비 호텔의 방 번호 519 너의 생일,

병원 주차장에서 주운 네 병동 의사의 지갑,

너를 보내기 며칠 전 내 꿈에 나왔던 너,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리 위에서 만난 양 떼와 양치기…


그래서일까, 너를 보내는 길이 더 힘들었어.

우리가 희망하던 결말과는 정 반대였으니까.


장례미사도, 묘지에서 너를 보낸 성대한 장례식도,

파빌리온에서 했던 너의 추모전도,

더 이상 네가 죽었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이 모두 치렀어.


그래서 네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건 아니야.

그저 현실이 냉정할 뿐이지.


나는 요즘 많이 안 울어.

내 몫의 슬픔은 마음속 저 깊이 가라앉아

몇 겹의 반창고와 거즈로 덮어두고 있어서 그런가 봐.


하루에 몇 번씩 네 생각이 나면

아득히, 그리고 마냥 애잔하고 슬퍼.

그렇다고 눈물이 줄줄 흐르진 않아.


근데 오늘은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

지금 너를 생각하는 내 마음이 잠시 수면 위로 떠있나 봐.

흐르는 눈물을 거슬러 오늘 핸드폰 앨범을 열었어.

Favorites 앨범 속 너의 사진들을 많이 정리했어.

같이 찍은 사진들 빼고는 그냥 일반 사진 함에 들어가도록.

그렇게 하나하나 떠나보낼 수 있게.


나는 아직도 너에 대한 글을 쓰기엔 망설여져.

너와 친밀했던 순간들은 기억에서 아직 가시처럼 느껴져서,

그리고 나의 감정들이 아직 정리가 덜 된 것 같아서.


그래도 처음으로 너에 대한 글을 이렇게 올려본다.

많이 보고 싶어.

마지막으로 내게 전화해줘서 고마워.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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