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추운 겨울이었고, 불붙지 못하는 젖은 장작 같은 소식만이 쌓여갔다.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프기 시작하는 건지. 몸이 아프면 마음이 병이 나는 건지. 몸과 마음이 앞다투어 아파 병원을 드나들던 날이었다. 모든 일에 무감했던 나는 지속되는 아픔 덕에 내 몸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게 신기했다. 생경한 통증에 존재라는 건 생각보다 아픈 거구나 깨달았다.
나쁜 일은 왜 한 번에 오는 걸까. 나만 아픈 거면 좋을 텐데. 아버지 건강도 급격히 악화됐다. 내가 아픈 건 비할 바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무너지는 모습을 본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곤두박질쳤다. 내 몸은 나아지는데 아버지는 점점 까맣게 쪼그라들었다. 심폐소생술 거부 동의서를 쓰고 온 날은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아버지가 건강해지셨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더 이상 아프지 않게 편안하게 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불효자 같은 효심이랄까. 복잡한 마음이었다. 한동안 불안한 마음으로 휴대폰을 보다 잠들곤 했다. 어느 날 밤인가 오빠의 전화가 왔다. 택시를 타고 병원을 향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한동안 전화벨 소리를 켜놓지 못했다.
아버지는 좋은 양육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우리 집에서 금쪽이를 찾는다면, 아버지라고 말할 정도였다. 건강이 나빠진 다음에도 담배를 피워대던 아버지. 매일 같이 술을 드시던 아버지. 사 남매 중 한 명, 한 명의 장점을 다른 한 명의 단점과 비교하며, 험담은 앞에서, 칭찬은 뒤에서 하던 아버지. 그래도,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버지를 사랑했다. 내가 언제나 사랑은 그래서가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생각했던 건 아버지 때문이 아닐까.
어릴 적 부모를 잃고, 동생들을 보살펴야 했던 소년 가장. 하고 싶었던 공부 대신에 돈을 벌어야 했던 사람. 살만해진 40대 초반에 아내를 잃고, 사 남매를 홀로 키워야 했던 가장. 아버지는 평생 가장의 무게를 지고 살았다. 그 무게에 짓눌려서일까. 아버지가 그렇게 갑자기 늙어버린 건. 순식간에 힘없이 쪼그라들어버린 건. 아기처럼 모든 걸 기억하지 못하게 된 건.
아버지에게 상처받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저 최대한 아버지의 말에 무감각해지려 노력했다. 덕분인지 힘든 일이 있어도, 누군가의 비난을 받아도 겉으로는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무신경하다는 말을 들을 때도 있지만, 내 나름의 자기 방어 기제였다. 그러면서 단 한 번도 아버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이해하면 내가 상처받을 것 같아서, 자식인 내가 되려 아버지가 애잔해할 것 같아 애써 외면했다. 그러다 이제 와 나이 든 고아가 되어 생각한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남자아이. 사춘기에 아버지마저 떠나고 동생을 키워내던 고아가 된 청소년. 아마도 평생 외로움을 달고 살았던 사람, 아니 그것조차 느낄 새 없이 끊임없이 일만 하던 아버지. 지금은 먼저 떠나보냈던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 할 나의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