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시절엔 스케치북 가득히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케이크를 자르듯 24시간을 나눠서 이름을 붙여주곤 했죠. 학교 가기, 학원 가기, 간식 먹기, 친구랑 놀기, 숙제하기, 책 읽기, 마지막은 별과 달을 그려 넣은 꿈나라.
그리고 조금 더 자란 후에는 다이어리라는 걸 사기 시작했어요. 해마다 고르고 골라서 샀던 다이어리들. 빼곡히 적어 넣었던 수많은 계획들. 하지만 돌아보면 계획이 전부 이루어진 해는 없었죠. 맨 앞장에 적어놨던 올해의 목표도 항상 이룬 것 절반, 이루지 못한 것 절반쯤 되었을까요.
그렇게 배웠나 봐요. 인생에는 계획이 필요하지만, 절대 계획대로 되진 않는다는 것을.
올해가 지나가면 이제 혼자 일한 지 꽉 찬 십 년이 되어요. 십 년. 3650일. 까마득해지는 그 숫자를 돌아보는 요즘이에요. 혼자 일하기에 더 촘촘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들을 이루기 위해 애썼던 날들.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수많은 실패와 계획에도 없었던 다양한 성공들.
십 년이란 시간을 통과하며 새롭게 배운 것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 오히려 흐트러진 계획들을 무마하기 위해 시도했던 것들이 더 좋은 선택이 되기도 한다는 것.
2024년에는 처음으로 '계획'을 세우지 않으려고 해요. 촘촘하게 적어두곤 했던 투두리스트도, 올해의 목표도, 비워둘 거예요. 그저 '매일 쓰는 하루'를 365번 반복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요.
아주 오래전부터 프로필에 써오곤 했던 '삶을 전부 씁니다'라는 문장대로 살아간다면, 그거면 되지 않을까 해요.
가을이 겨울에게. 일상 에세이 편지
당신은, 어떤가요?
곧 만나게 될 새해를 위한 계획들을 이미 촘촘하게 세워놓았나요? 끝이 없을 것처럼 길어진 투두리스트가 지겹다면, 계획 없이 새해를 맞이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