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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Apr 21. 2024

팡도르 빵 위에 앉아 슈니발렌을 볼 수 있는 도시

반년 넘게 여러 나라를 다니고 있는 입장에서는 사실 스위스가 그리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인터라켄과 그 일대에 있을 때보다 니스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일박을 지냈던 바젤이 훨씬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유럽 여행지로 스위스를 으레 말하지만, 역시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그 나라가 정말 좋은지는 내가 직접 가봐야만 알 수 있다. 바젤을 제외하고는 재미있었지만 한번 발을 담가본 것으로 만족하는 그런 도시들이었다.


하지만 스위스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알 것 같다. 그 마음을 이해한 건 피르스트 산 위에 올랐을 때다. 산 위에 있는 레스토랑 앞 캠핑 의자에 눕다시피 앉아 맞은편에 서 있는 설산들을 바라보는데

팡도르 위에서 슈니발렌을 보고 있는 기분인데?

문득 두 음식들의 외형을 떠올리게 됐다.

두 음식이 대중적인 듯 먹는 사람만 먹기 때문에 잠깐 사진으로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망치로 깨 먹는 독일 전통 디저트, 슈니발렌(슈발렌이라고도 한다)
한국 베이커리에도 꽤 대중적으로 파는 팡도르. 한국 팡도르는 사진보다 슈가파우더가 훨씬 많이 쌓여있다

슈가파우더 가득 쌓인 빵 위에서 울그락불그락 단단한 초콜릿을 봤다. 

눈 위에 발을 푹- 담그고 있는 내 모습은 마치 팡도르 위에 수북이 쌓여있는 슈가파우더가 파인 모양 같다. 칼로 가를 때마다 포크로 찍을 때마다 스르르 키가 작아지는 슈가파우더. 

토르의 망치로 깨야만 깨질 것 같은 단단함이 웅장함을 불러 있으키는 스위스의 설산 모양은 아무리 생각보다 취향이 아니었던 스위스였어도 이색적이었다. 황혼을 보고 개인지 늑대인지 명확하게 답을 내리지 못하듯, 이 설산이 아름다운지 무서운지 또한 결정을 못 내렸다. 어떻게 보면 절경인데 계속 마주하고 있으니 나를 덮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괜히 눈사태가 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건가 불필요한 상상을 했다.

스위스 여행을 마무리할 때쯤 그에 대한 명확한 나의 의견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결국 실패했고 이대로 두기로 했다. 마치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수식어가 생겼듯 나에게 스위스 설산은 아름다움과 무서움 중간의 모양을 하고 있는 슈니발렌이다. 

슈니발렌의 단단함이 실은 부드러운 존재였다는 깨달을 때는 먹을 때다. 안에서 초코가 녹을 비로소 깊이 있는 단맛에 머리 회전이 빨라진다. 바삭하게 씹히는 견과류와 과자의 식감은 덤. 여기에 망치로 깨는 재미까지. 

그것조차 스위스의 설산이다. 막상 산 위에 오르면 이색적인 경험을 할 때의 신기함을 체감한다. 내가 지금 흔치 않은 소리와 풍경 그리고 촉감 속을 걷고 있구나. 재미라는 표현을 쓰기 딱 좋은 상황들이 펼쳐진다. 


인터라켄을 베이스캠프로 삼고 신나게 눈을 밟고 산을 봤던 시간들은 이후에 열 개도 넘은 도시를 여행해 온 세계여행자가 보기에도 귀한 경험이었다. 특히 스위스는 물가가 보통 비싼 게 아니기 때문에 더욱더 흔치 않은 기회로 여겨진다. 

알쓸신잡에서 유시민은 그리스 아테네를 두고 '연락처는 아는데 선뜻 먼저 연락하고 싶진 않은 상대'라고 말했다. 잘 여행했는데 또 올진 잘 모르겠다는 의미다. 나에게 스위스 설산이 그랬다. 분명 재미있게 잘 여행했는데 또 보러 갈 거냐고 스스로에게 질문한다면 글쎄. 바젤은 다시 가고 싶은데 알프스 산맥의 대자연을 위해서 갈지는 모르겠다. 

슈니발렌과 팡도르를 맛있는 디저트라고 생각하지만, 내 돈 주고 사 먹지 않는 것과 같다.



▼ 스위스 여행 정보는 아래에 별도로 정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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