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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May 25. 2024

인생 캐릭터가 살아 움직인다면?

무언가를 열렬히 애정하는 마음으로 채운 하루

세계여행 중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

그것도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아무리 식당 한 번 안 가고 빵으로 끼니를 채우는 여정을 하고 있더라도 프랑스 파리에서 꼭 돈을 써야 하는 곳이 있었다. 바로 프랑스 파리 외곽에 있는 디즈니랜드. 디즈니랜드는 여러 도시에 있는 만큼 갈 기회는 앞으로도 충분하지만 미키마우스에 대한 대우가 유독 톡톡한 곳이 파리 디즈니랜드이기 때문이다. 미키 마우스 무늬만 봐도 눈이 뒤집히는 어른이 여행자는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가기로 계획한 예정일 직전까지 날씨를 잘 보고 있다가 자유이용권을 구입했다. 그리고 당일, 개장 한 시간 전에 디즈니랜드 입구에 도착했다.

파리 디즈니랜드는 두 개의 테마파크로 이루어져 있다. 디즈니 스튜디오의 영화 콘텐츠를 바탕으로 조성된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와 보통 디즈니랜드 할 때 떠올리는 아름다운 성과 디즈니 캐릭터들이 있는 '디즈니랜드 파크'가 있다. 자유이용권이자 입장권으로 이 두 동을 모두 왔다 갔다-하며 즐길 수 있다.


환타지아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 분수대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가장 선조 격인 영상 콘텐츠를 꼽자면 <타지아>다. 꼭 단군신화같이 대하지 않더라도 나 또한 디즈니 영상 콘텐츠의 정수는 '타지아'라고 생각한다. 요즘에 와서 타지아와 비슷한 걸 찾자면 디즈니에서 영화를 개봉할 때마다 앞에 에필로그처럼 붙는 단편 영화라고 보면 된다. 클래식 음악에 맞춰 여러 에피소드가 펼쳐지는데 대사 없이도 시선을 붙잡는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디즈니의 힘이 느껴진다. 

환타지아의 에피소드 중 가장 많이 다시 본 에피소드는 '마법사의 제자'다. 제목 그대로 미키가 마법사의 제자로 나오는데, 마법사만 쓸 수 있는 흰색 별 무늬가 그려진 파란색 마법사 모자를 몰래 훔쳐 썼다가 사고를 치는 이야기다(사고도 보통 사고가 아닌데 그게 전체 스토리다).

환타지아 <마법사의 제자>

파리 디즈니랜드에서는 입구에서부터 이 타지아의 일부를 볼 수 있다. 마법에 걸려 미키가 손수 들어야 했던 물통을 대신 들어 옮기는 빗자루의 역동적인 모습은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다. 조형물 하나만으로도 물을 퍼 나르는 빗자루들의 행진이 줄줄 떠올랐다.

미키가 몰래 쓴 파란 마법사 모자는 건물만 한 사이즈로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에 세워져 있기도 하다.

곳곳에서 디즈니랜드가 타지아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한 편으로는 잘 만든 콘텐츠 하나의 힘이 이렇게나 오래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인상적으로 봤던 만큼 가장 좋아하는 미키도 타지아에 나오는 빨간 망토를 두르고 파란색 고깔 모양 모자를 쓴 모습이다. 몇 년 전, 뉴욕 디즈니 스토어에서 그 버전 인형을 발견했는데 냉큼 사서 애착인형으로 대하고 있다. 어화둥둥이 따로 없다.

못 안고 있어서 안달인 미키를 찾아다닌 하루였다. 하루라고 해도 무방한 게 개장 전부터 일루미네이션 쇼가 펼쳐지는 폐장 때까지 종일 혼자 미키를 찾아다녔다. 카우보이 미키 인형에 아련한 눈빛을 보내기도 하고 미키 손을 토대로 만든 장갑을 끼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디즈니랜드에서는 정글북 곰 발루 등 여러 디즈니 캐릭터들을 볼 수 있다. 그중 가장 간절하게 기다린 건 역시 미키. 미키마우스는 파리 디즈니랜드에서 가장 극진한 대우를 받고 있다. 무려 미키마우스의 집이 따로 있어 보고 싶으면 놀이기구 타듯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웬만한 놀이기구보다 오래 기다렸던 것 같다. 아무래도 미키랑 대화도 나누고 사진도 찍다 보니 줄이 빨리 줄어들지 않는 듯했다. 그나마 대기줄 중앙에 있던 브라운관에서 미키 마우스 에피소드들을 볼 수 있어 힘들지 않았던 것 같다. 여기에 반드시 봐야 한다는 기대감 섞인 의지가 들어가기도 했고.

사십 분쯤 기다려 나보다 훨씬 키가 큰 미키를 만날 수 있었다. 인형탈인 걸 알아도 나에겐 진짜 미키마우스였다. 무려 감정을 표현하는 미키였으니까. 미키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존재라며 호들갑을 떨었을 때 미키는 감동한 듯 손으로 입을 막는 제스처를 취했고 팔짱을 끼자며 팔을 내밀었다. 속으로 거품 물고 뒤로 자빠질 뻔했다.

어린이 시절부터 줄곧 입은 옷만 다를 뿐 미키 인형을 손에 들고 다녔고 안고 잤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때면 '할 수 있겠지?'라며 미키에게 말을 걸었고 웃고 있는 미키를 보며 힘을 얻었다. 어쩌면 살아오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미키에게 의지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미키와 마음을 나누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세계여행을 통틀어 몇 가지 인상적인 기억 중 하나를 꼽으라면 반드시 이 순간은 포함된다. 사진을 찍고 집을 나왔을 때 꿈을 이룬 벅찬 기분이 들었다. 보통 행복이 아니었다.

디즈니 캐릭터를 대거 만날 수 있는 카 페스티벌을 보면서도 열심히 미키를 따라다녔다. 원하는 미키 사진을 건지기 위해 와다다닥- 찍고 달렸다. 아이돌 세계에 있는 '홈마'가 된 기분이었다.

또 타고 싶은 놀이기구들을 마지막으로 타고 일루미네이션 쇼를 맨 앞에서 보기 위해 미리 놀이공원 바닥에 앉아 기다렸다. 일몰 색이 더해져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분홍색 성을 바라보며 하루를 되돌아봤다. 

꿈을 이룬 하루더라. 세계여행을 떠나온 것만으로도 소원을 풀고 있는 건데 어릴 적부터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친구가 되어주고 있는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는 보다니. 그것도 프랑스 파리에서. 낭만이 치사량 초과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행복한 삶'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앞으로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때마다 행복한 기분을 자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럼 나는 언제 행복하지?

결론은 '성취감'이었다. 원하는 바를 이뤄냈을 때. 갖고 싶은 걸 소유하게 됐을 때. 보고 싶었던 걸 봤을 때. 하고 싶었던 걸 할 수 있을 때. 작고 크건 바라던 걸 현실로 만들었을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휴식시간마저 생산성 있는 것을 하며 시간을 채우는 이유다. 성취감을 느낀 기억이 어릴 적부터 많았고 이제 그 기쁨이 얼마나 거대한지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변화시키는지 아니까 시간을 함부로 쓸 수가 없다.

그렇지만 계속 달리고 참으면 방황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그냥 다 하기 싫기도 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툴툴거리면서 하기도 한다. 여행 중에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호텔에서 하루 푹 쉬고 싶을 때도 있었고 돈 좀 그만 아끼고 싶다고 한숨 쉬던 날도 있었다. 

그때마다 옆에 있는 건 미키마우스였다. 디즈니스토어 안에서 진열되어 있는 인형 하나에 금방 웃었고 디즈니랜드에서 만난 미키 하나로 피곤함이 성취감이 됐다. 말 못 하는 쥐 하나는 일상 속에서도 여행 중에도 큰 의지와 응원이 됐다. 

도라에몽에 울고 웃는 한 연예인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 마음을 안다. 어릴 때 만난 캐릭터 하나가 인생의 소울메이트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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