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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Jul 02. 2024

와플 그 이상의 무언가를 찾아서

시작은 와플이었다. 메이플 시럽으로 코팅한 와플은 한국에서 곧잘 적응을 해 소보루빵처럼 흔한 빵이 되더니 크로플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빵과의 콜라보까지 시도했다. 무조건 맛있을 수밖에 없는 '그 빵'은 전국을 휩쓸었다. 내 지갑도 함께 휩쓸렸고. 그런 와중에 세계여행을 떠나게 됐다.


의아하게도 벨기에는 생각보다 가 본 사람이 많지 않다. 유럽여행을 다녀와도 벨기에는 안 가 본 사람들도 많다. 주변에 존재감이 막강한 독일 프랑스 영국이 둘러싸고 있어서 소외된 걸까. 와플하면 바로 떠오르는 누구나 아는 그 나라는 한국인에게 좀처럼 인기 있는 나라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지 못했던 곳은 흔히 봐왔던 곳보다 더 극적인 감동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진짜 벨기에 와플을 먹으면서 새로운 세상을 걷는 상상을 해보니 이건 무조건 가야 하는 곳인 거다.

프랑스 파리에서 버스를 타고 벨기에 브뤼셀로 넘어갔다. 3박 4일 동안 브뤼셀과 근교 도시 브뤼허, 겐트를 여행하게 됐다.



브뤼셀 -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 있는 도시

<노트르담 드 파리> <레 미제라블>을 쓴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Vitor Hugo)'가 브뤼셀의 그랑플라스 광장을 두고 한 말이다. 벨기에 수도 브뤼셀의 대표 광장인 그랑플라스 광장(La Grand-Place) 안에 서 있으면 궁 안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정교한 기둥 하나 장식 하나를 점묘화처럼 잘게 붙여 하나의 우아한 궁궐을 완성한 것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각기 다른 건물이 모였음에도 통일감이 느껴지는 광장이다. 이는 그랑플라스 광장으로 연결되는 여러 골목들과 동네들의 모습과 결이 다른 풍경이다. 그 반전 때문에 처음 광장 안에 들어서면 그 모습이 더 극적으로 다가온다. "우와" 감탄사를 내뱉을만하다.

그랑플라그 광장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물은 브뤼셀 시청사다. 15세기에 건설된 뾰족뾰족 고딕 양식의 건물은 유독 웅장하다. 유럽 내에서 볼 수 있는 대성당들을 볼 때의 감정과 흡사한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시청사 꼭대기에 성 미카엘 동상까지 있으니 종교적인 공간이라고 해도 누군가는 믿지 않을까.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8월에는 Flower Carpet 축제가, 평소에는 관광객들의 포토존이 되는 그랑플라그 광장은 벨기에 역사에 깊이를 더하고 있다. 그 역사의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브뤼헤 - 블록 가게에서 만든 미니어처 도시 속으로

브뤼헤역에서 나와 브뤼헤 중심가에 들어간 순간, 블록 도시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거대한 블록 가게에서 봤던 정교하게 조립된 미니어처 도시. 브뤼헤의 모든 것은 세심한 장인의 손길을 거친 블록처럼 정교하다. 운하를 따라 늘어선 고딕 양식의 건물들, 자갈길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골목들, 그리고 그 위로 높이 솟은 종탑은 '이걸 어떻게 만든 거지?' 신기하게 바라봤던 블록 작품을 보는 것 같았다. 

광장의 중심을 차지한 벨프리(Belfry) 종탑은 하늘로 향하는 블록을 하나하나 쌓아 올린 듯하다.

브뤼헤는 운하 도시다. 찾지 않아도 자연스레 보게 되는 운하 위로 납작한 보트가 지나간다. 보트를 타고 도는 운하 투어는 브뤼헤를 탐험하는 방법 중 하나다. 배를 타고 운하를 따라 흘러가며 본 도시는 물 위에 떠 있는 그림처럼 보인다. 

브뤼헤의 골목길을 걷는 것은 마치 동화 속 미로를 탐험하는 것 같다. 좁고 아늑한 골목마다 작은 카페와 기념품 가게들이 미로 게임 속 아이템처럼 숨어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와플 가게들. 벨기에 전통 와플 가게들이 브뤼셀에도 많은데 달달한 와플 특유의 냄새가 먹을 생각이 없던 사람도 지갑을 열게 한다. 벨기에의 자부심인 와플을 한입 베어 물며 '와플마저 블록을 조립해서 완성한 것처럼 조각조각 무늬네?' 생각했다.


겐트 - 연필로 그리고 칠한 풍경화

브뤼헤의 생동감 넘치는 색채와는 다르게, 겐트의 건물들은 채도가 연한 파스텔 톤으로 도시 전체에 잔잔한 아름다움이 덮여있다. 마치 부드러운 연필로 스케치한 풍경화 속을 거니는 느낌이었다.

겐트의 거리를 따라 단정하게 줄지어진 건물들은 오래된 책의 삽화를 보는 것 같다. 어느 것 하나 색깔이 강해 보이는 게 없다. 힘을 주지 않은 채로 연필을 잡고 슥슥- 그어 그린 그림처럼 부드럽고 연하다.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도 건물만큼 평온하다.

여기에 잔잔한 운하까지. 한 폭의 연필화는 그렇게 완벽해진다.

적어도 여행자 입장에서 겐트의 랜드마크는 성 바보 대성당(Saint Bavo's Cathedral)이다. 대성당답게 거대하고 우직한 멋을 자랑하는 성 바보 대성당은 연필화의 결정체다. 명확한 색을 넣지 않아도 음영만으로 웅장한 입체감을 살린 걸작. 가장 색깔이 빠진 건물 같은데 도시 안에서 가장 돋보인다. 성당 내부에는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의 걸작인 '겐트 제단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천상의 빛을 담은 듯한 섬세한 색채와 디테일 이 플랑드르 회화 중 불후의 명작이라 불린다. 15세기 유럽 미술의 초석이라 지칭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일정상 다시 보지 못했지만, 겐트 도시에 색이 입혀지는 시간은 여느 도시들과 다르게 일몰 뒤다. 해가 지고 하늘이 깜깜해지면 건물들이 형형색색 강렬한 색채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보라색 노란색 등 브뤼헤의 건물 색깔보다 훨씬 진한, 형광색의 가까운 조명이 건물과 다리를 뒤덮는다. 어두워도 어둡지 않은 겐트다.


벨기에의 와플은 당연히 천상의 맛이었지만, 여행을 다 마치고 벨기에를 되돌아보면 와플만큼이나 도시 풍경이 강렬하게 떠오른다. 도시 풍경이 근처에 있는 여러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독보적으로 특별했다. 아니 세계여행하면서 그리고 태어나서 다닌 여러 나라들을 다 가져와 비교해도 비슷한 도시조차 없다. 벨기에 자체가 다른 세상이다. '와플을 먹으며 걷지 않더라도 무조건 가야 하는 곳이구나!' 벨기에를 이곳저곳에 추천하고 다녀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벨기에는 와플은 시작에 불과한, 거대한 특별함을 가진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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