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프레임워크와 전통 서사 구조의 비교분석
PAS 프레임워크는 원래 마케팅 분야에서 나온 프레임워크다. P,A,S는 각각의 약자로, 문제, 구체화, 해결방안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건, 결국 카피라이팅이든 마케팅이든 혹은 창작활동이든, 감상하는 사람이 어떤 작품을 보고 '이거 내 이야긴데?'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진화적으로, 내 이야기가 아닌 것에는 주의력을 쓰지 않도록 설계된 존재다.
그래서, 모든 이야기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명확하다. 감상자로 하여금, 이게 내 이야기라고 느끼게 하는 것. 깊이 빠져들고 공감하고 이입하고 몰입하게 하는 것.
내가 가장 좋아하는(나만 좋아한다기엔 전세계 사람들이 좋아해 마지 않는) 영웅서사 12단계 플롯과 PAS와의 연결고리를 찾아보자.
P. 문제. 모든 사업 마케팅과 스토리는 결국 여기서 시작한다. 단어가 '문제'이지만 결국 가장 인류 보편적으로 잘 안 되는 무언가가 삶에서 가로막고 있는 상황이라는 걸 보여준다. 이것만큼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내가 늘 이야기하지만, 결국 모든 인간은 이런 감정을 느끼며 산다. 그것도 하루에 수백번씩.
'...내 맘같이 안 되네.'
어른들이 하는 말 아니던가. 세상일이 내 맘같이 되진 않는다. 내 인생도 매한가지다.
내 생각처럼 그렇게 잘 되지 않는다.
이게 PAS에서 P의 역할이고 조금 확장하면 A도 사실 저걸 보여주는 역할일뿐이다.
영웅서사 플롯에서는 1막(Setup)에 해당하는 1장, 조금 확장해서 본다면 1장에서 3장까지가 저 역할을 한다.
영웅서사 플롯의 1장은 '평범한 일상'이다. 평범하다는 건 곧, 내 맘같이 안 되는 삶(작게 본다면 '상황')을 의미한다.
그리고 PAS에서 A는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보여주는 걸 말한다.
인간이 스토리에 몰입하고 가정이입을 하게 되는 뇌과학적 원리는 거울뉴런과 신경결합으로 설명할 수 있다.
거울뉴런이란, 무언가를 보면서 똑같이 행동하고 반응하고 발화하는 뇌세포를 일컫는 말이고, 이런 거울뉴런의 발화는 신경결합이라는 이론으로 설명된다.
말이 어려워보이지만, 결국 내 눈앞에서 무언가를 말하고 행동하고 느끼는 사람을 보며 인간은 자신도 똑같이 마치 그 사람이 되어 그걸 말하고 행동하고 느끼는 것처럼 신경학적으로 동화된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PAS에서 P와 A는 결국 감상자가 깊게 나의 일처럼 느끼고 공감하며 이입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는 영웅서사에서의 1장, 혹은 1~3장에 해당하는데 왜 그런지 조금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1장은 평범한 일상이라고 했으니,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그 평범함이란, 우리 누구나 겪고 있는 삶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니까.
2장은 '소명의 부름'이다. 무언가가 내게 말을 거는거다. 그게 상황이든, 어떤 사람이든, 사건이든, 내면의 소리이든. 내게 말을 건다. 이 평범한 일상에 갇혀 한 번도 알을 깨보지 못하고, 도전도 해보지 못하고 사라질 것인지.
이 또한 매우 보편적이다. 겉으로 보기에 우리 평범한 대다수는 그저 가만히, 숨죽인 채, 쳇바퀴 돌듯이 살다가 삶을 마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은 분명 이런 의미 또한 내포하는 말일거라 생각한다.
가까이서 들여다본 우리 각자의 극도로 '평범해보이던' 삶은 사실 꽤 수차례 목도하는 '운명의 부름'과 그 앞에서 고뇌하는 우리의 내면적 갈등으로 이어지는 한 편의 영화이자 이야기다.
영웅서사 플롯의 3장은 '소명의 거부'다. 앞서 말한 2장에서의 고뇌와 갈등은, 결국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나의 두려움의 유혹에 이기지 못해, 혹은 도저히 내팽개칠 수 없는 현실적 여건에 의해 우리가 소명의 부름을 거부하고 다시금 원래 자리에 머무르기로 결정하는 슬프지만 극히 올바른 결심을 의미한다. 이 또한 누구나 나의 삶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평범한 삶'이다.
이렇게 PAS에서의 P와 A는 영웅서사 플롯의 1~3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PAS에서 굳이 P와 A를 나눠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말한 감상자가 작품에 몰입하는 한가지 원리, 뇌과학적 메커니즘은 신경결합이라고 했다.
짐작할 수 있을거다. 이 신경결합이 잘 일어나려면, 내 눈에 그 작품 속 주인공의 반응, 표정, 행동, 말, 모든 것들이 생생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뭔가 추상적이고 잘 그려지지 않고 잘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내 신경세포들이 동화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가급적 구체적이고 생생해야 한다. A는 바로 그 역할을 한다. 좀 더 구체적이고 피부에 닿을 것처럼, 내 실제로 경험했던 걸 떠올리게 할 정도로 그럴싸하고 자세하게. P를 아주 구체적으로 실제처럼 그려내고 묘사해내는 게 사실 A의 역할인 것이다.
A의 역할이 이런 목적에만 한정되는 건 아니지만, 분명 그 역할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영웅서사 플롯 또한 매한가지다. 2장과 3장이 그 역할만으로 별도로 구성된 건 아니지만, 분명 앞의 1장이 말하는 '평범한 일상'에서의 평범한 삶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나. 누구나 삶을 살아가다 보면, 이대로 정말 끝나도 괜찮은가, 이렇게 계속 머물러서 세월이 다 흘러가버려도 괜찮은걸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되고.
그 고민에 대한 무형의 손짓이나 내면의 외침이나 일말의 희망 같은 걸 목도할 때가 온다. 하지만 이미 내 삶이 얽매여있는 수많은 현실과 책임과 제약으로 인해 끝내 외면하게 된다.
결국 PAS에서의 A와 영웅서사 플롯에서의 2~3장은(만약 2~3장을 A에 대응시킨다면) 좀 더 감상자들이 깊게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한다.
나는 숫자 3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폴더와 이론과 플롯과 사고의 체계를 자꾸 3이나 하다못해 3의 배수로라도 잡는 건 결코 숫자3을 강박적으로 좋아해서만은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자, 앞서 말한대로 좀 더 감상자가 깊게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작업은 몇단계에 걸쳐 이루어지는가.
나는 사실 내가 마인드엔지니어로서 내담자분들의 심리상담, 심리검사를 진행하거나 코칭, 케어를 하는 일에서도 마찬가지고. 스토리엔지니어로서 창작을 하는 일에서도 마찬가지로.
영웅서사 플롯을 가장 좋아한다. 전세계 가장 많은 작가들이 그러는 것처럼.
영웅서사 또한 3막구조에 갖다붙여서 3개로 쪼개놓았는데, 그 김에 한 번 지금 이야기한 '깊게 몰입하도록 초대하는 작업'도 3단계로 쪼개보자는거다. 내 이야기는.
우리는 말한다. 이건 평범한 이야기라고. 평범한 내가 쓴 이 (주인공의)이야기는, 사실 평범한 당신의 이야기라고. 당신은 사실 내가 쓴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고.
영웅서사 플롯 1장에서 우리는 한 번 그런 손짓을 건넨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일상을 보내는 주인공의 이야기. 극히 무난하고 잔잔해보이지만 실은 맘처럼 잘 안 되는 주인공의 일상. 그리고 나름 맘처럼 되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어딘가에서 가로막히는 모습.
이게 1단계 초대다.
두번째 단계의 '초대'
2단계 초대는 2~3장에 걸쳐 일어난다. 2장에서 소명이 운명의 목소리로 주인공을 부르지만, 3장에서 주인공은 결국 소명의 부름을 거부한다. 이 놀랍도록 지극히 평범한 전개와 스토리에, 감상자는 다시 한 번 이것이 내 이야기와도 같구나, 라는 '초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세번째 단계의 '초대'
3단계 초대는 그렇다면 무엇인가.
사실 3단계 초대는 아직 다루지 않은 영웅서사 플롯의 4단계에서 일어난다.
4단계는 내가 기존의 영웅서사 플롯을 가장 내 마음대로 많이 뒤바꿔서 커스터마이징해버린 단계인데.
여기서는 글의 목적에 맞게 간단하게만 말하자면, 4단계에서 주인공은 두 부류의 정신적 스승을 만나게 된다.
이 '정신적 스승'이라는 것이 사실 원래 영웅서사 플롯에서는 약간 하얀 턱수염이 배꼽까지 내려오고 지팡이 짚은 채 한 200살 정도 살아온 산속의 스승님을 의미하는건데.
나는 이 정신적 스승을 두 부류로 나눈다. 하나는 하얀 스승. 하나는 검은 스승. 검은 스승이 바로 세번째 단계의 초대다.
3번째 단계의 초대는 왜 그럼 4단계라는 설명도 아직 안한 곳으로 넘어가 있는가.
이 세번째 단계의 초대는 1단계의 초대와 2단계의 초대와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1단계, 2단계 초대는 각각 감상자가 자신의 삶과 유사하다고 느끼며 공감하고 몰입한다면. 3단계 초대는 사실 많은 이들에게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먼 미래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초대다.
무슨 이야기냐. 3단계 초대라고 내가 말한 이 '검은 스승'은. 앞서 3장에서 거부했던 걸 이젠 더이상 도저히 '거부'로 계속 밀고나갈 수가 없게 만드는 '재앙'과도 같은 걸 의미한다.
즉, 이 세번째 단계의 초대는 사실 주인공에겐 벌어져버린 일이지만, 감상자의 삶에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물론 '초대'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살다보면 언젠가 일어날법한 일이고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거나 말이 안 되지는 않는 일이다.
이는 감상자가 이제 더 내릴 마음이 없이 안전벨트 꽉 동여매고 주인공이 되어 내가 그려낸 이야기 속 세계에서 주인공의 삶을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돕는다.
이야기는 곧 삶이고 인간의 근간이다. 내가 굳이 HINT(통합이야기치료)라는 심리치료이론을 만든 것도, 오랜 인류역사 내내 모든 크고 작은 사회주체들이 이야기에 집착했던 것도, 내가 이야기를 덕후마냥 좋아하다 못해 결국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인간에 관심이 많고 인간을 들여다보는 게 가장 즐거웠던 나는, 결국 이야기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필연적인 길로 걸어가고 있고. 재밌게도,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만드는 일은 결국 다시 인간을 살피고 이해하게 만든다.
모든 인간에게 있어.
나는 곧 내가 쓴 이야기이고, 이야기는 곧 나라는 존재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