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인표 Apr 29. 2019

어느 고등어의 고백


 어쩌면 당신은, 지금 갈라진 배를 펼쳐놓고 당신 앞에 누워있는 나를 그저 평범한 반찬으로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성격이 급해 금방 죽어버리는 만만한 식재료라고 치부할 수도 있죠. 어느 시골 식당에서나 쉽게 볼 수 있고, 심지어 통조림으로 깡통에 담겨 나오기도 하는 게 흔하디 흔한 고등어니까요. 아, 물론 저는 지금 고등어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환경파괴와 같은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에게 우리의 삶과 권리가 있듯, 당신들의 그것도 동등하게 주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의식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전하려고 합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당신들 앞에 벌거벗고 누워있는 나의 모습이 자발적 선택임을 고백하고자 합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잠시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바다는 아주 깊고, 넓습니다. 아직 알 수 없는 신비한 일들로 가득합니다. 평생을 헤엄쳐도 아마 저는 바다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 수 없을 겁니다. 당신들이 말하는 크라켄이라던지, 해룡이라던지, 그런 전설이 모두 허구는 아닙니다. 심해 깊은 곳에는 아직 저도 알 수 없는 것들이 살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바다는, 아주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저는 그 바다를, 평생동안 여행하며 살았습니다. 미지의 것으로 가득한, 끝이 없는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바다가 너무나 사랑스러웠습니다. 가슴이 뻥 뚫리는 청명한 푸르름, 형형색색의 줄무늬 옷을 입은 물고기의 화려함, 울퉁불퉁 솟아오른 산호초의 견고함, 군중을 이룬 물고기의 균형감, 날아오르듯 헤엄치는 바다거북의 우아함, 파도를 거스르는 흰수염고래의 웅장함... 끝없는 망망대해에 펼쳐진 그 아름다운 광경은, 매일매일을 가슴 터질 것 같은 찬란함으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어쩌면 물고기들이 평생을 눈을 뜨고 살아가는 이유는 생애 모든 아름다움을 두 눈에 담으라는 신의 뜻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아름다웠으니까요.


 그렇게 여행을 이어가던 중 우연히, 당신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날은 유난히도 바다가 청명한 날이었죠. 나는 어느 날과 다름없이 바다를 헤엄치며,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돌아보니 아기 새우가 힘없이 흔들거리고 있더군요.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라 생각했습니다. 새우는 생각보다 힘도 좋고, 눈치도 빠르거든요. 오랜 지느러미질로 슬슬 배도 고프고, 마침 근처에 산호초도 있어서 저는 잠시 쉬어가려고 했습니다. 저는 잽싸게 바다를 가로질러 있는 힘껏 녀석을 낚아챘습니다. 찰나의 순간이었죠.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순간 저는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제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날카로운 것이 입안을 뚫고 들어와, 어마어마한 힘으로 저를 끌어올리고 있었습니다. 믿을 수 없었죠. 제가 건드린 것은 해파리도, 복어도 아닌 그저 어린 새우였으니까요. 아마 당신이 평소처럼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입안을 무언가가 뚫고 들어와, 하늘로 빨려 올라간다면 믿을 수 없을 겁니다. 게다가 송곳처럼 날카로운 갈고리처럼 끌어당긴다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겠죠. 저 역시 그랬습니다. 저는 온 힘을 다해 저항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몸은 수평선 위로 튕겨나간 상태였고, 물이 없는 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당신들이 사는 세상으로 꺼내진 겁니다.

 물밖으로 나오자 벌써부터 아가미에 숨이 차올랐습니다. 호흡이 빨라지고, 힘이 급격하게 빠져나가서, 저는 지느러미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조류에 휩쓸렸을 때보다 절망적이었습니다. 정말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이제 더 이상 이 눈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바다를 여행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펐습니다. 그렇게 모든 걸 체념하고 생을 마감하려는 순간, 거짓말처럼 나를 깨운 건, 다름 아닌 당신의 환한 미소였습니다.


 태양에 검게 그을린 피부와, 눈가에 미세하게 피어난 주름과,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당신은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떠들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조개처럼 활짝 입을 벌리고 웃었습니다. 당신들의 모습은 아주 행복해 보였습니다. 나를 보며 당신들이 보여줬던 눈빛,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그 표정, 신비롭게 나를 애무하던 그 눈빛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그건 제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아름다움, 평생 잊지 못할 그런 경외였습니다.


 저는 기적처럼 바다로 돌아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이 저를 놓아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제가 너무 작아서 보내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보통 한번 뭍으로 올라간 친구들이 영원히 다시 바다로 오지 못하는 것을 알기에 저의 경우는 기적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미끄러지듯 허겁지겁 바닷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이제부턴 플랑크톤만 먹을거라고, 두번 다시 새우 같은 건 먹지 않겠다고 다짐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당신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기쁨에 가득 찬 당신의 얼굴이 자꾸만 아른거렸습니다. 나를 바라보며 보여줬던 그 미소, 그 눈빛, 그 표정과 당신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바다는 이제 감흥을 주지 못했습니다. 열대어 색감의 화려함도, 물고기 때의 일사불란한 몸짓도, 바닷속 수많은 아름다움도, 예전처럼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건 보이는 아름다움일뿐,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이뤄지는 아름다움, 사랑하는 사람과의 교류를 통한 경외로운 아름다움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 선물같은 경험은, 오직 이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지금까지 제가 살아왔던 것임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당신들을 볼 수 있다면, 당신의 그 가리비처럼 환한 미소를 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새우를 물게 된 것도, 당신 앞에 이렇게 누워있는 것도, 모두 우연이 아닙니다. 역시 물고기는 머리가 나쁘다는 조롱을 들을지라도, 지금의 선택에 그 어떤 후회도, 미련도 남지 않습니다. 이 넓은 바다를 그만큼 충분히 보았으니, 이제 삶을 마감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생애 최고의 아름다움을, 그 맑고, 아름다운 눈과, 사랑이 가득한 표정을 담아갈 수 있어서 진심으로 행복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당신의 아이가 울고 있군요. 어서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 이야기는 여기서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당신, 그리고, 당신의 사랑하는 남편, 그리고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아이. 모두 다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제가 당신들의 좋은 저녁거리가 되길, 당신들의 삶에 조그만 안식이 되길 바랍니다. 어쩌다 삶이 힘이 들 때면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당신들의 미소는,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보다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를 보내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