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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Apr 23. 2019

너를 보내며

 오늘도 편지는 오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헤어지자는 짧은 편지를 받은지 세 달이 됐다. 그동안 수없이 전화를 하고, 정성껏 편지도 써봤지만 대답이 없었다. 이제 곧 병장인데. 몇 달만 참으면 되는데. 이제 와서 미안하다니. 떠난다니. 이렇게 편지 한통 남기고 가버리면, 정말 그걸로 끝나는걸까.

 물론 전조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너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휴가 때 사소한 다툼이 있었다. 입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취업에 성공한 너는 야근이며, 저녁 학원이며, 심지어 회식 자리까지 꼬박꼬박 챙겼다. 마치 뭔가에 쫒기는 사람처럼 끝없이 무언가를 찾았다. 심지어 내가 휴가를 나온 날에도 그랬다. 너만을 기다리며 한걸음에 달려온 나에게 너는, 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어제 새벽까지 회식이었다며, 자기도 정말 오랜만의 휴식이라고 말했다. 마치 일간 신문을 보는 사람처럼. 만기된 보험을 갱신하는 사람처럼. 갇혀서 하루하루 보내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너는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꿈을 꾸고, 다른 세상을 품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너는 변한 것 같았다. 항상 함께 발맞추던 네가 나보다 먼저 세상밖으로 떠나갈 것 같았다.

“이제 제발 그만 좀 해!”

 그것이 네가 들려준 마지막 육성이었다. 내가 없는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해서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있겠다더니. 그래서 우리 늘 지나가며 못 본척 했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와인도 마시고, 야경이 멋진 한적한 마을에 가서 따듯한 차도 마시자더니. 이제와서 제발 그만하라고? 도대체 왜? 갑자기 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추억이 얼기설기 뒤엉켰다.

 우르르 쾅쾅. 쮁!

 슬픔과 무기력과 원망이 가득한 내무실에 균열을 일으키는 괴성이 들렸다. 숙소 바로 뒤에 위치한 조리실에서 무언가 발작하듯 꿈틀거리는 소리였다. 후임 병사들이 벌떡 몸을 일으켜 손바닥을 오므리고 벽에 귀를 댔다.

"무슨 소리냐?" 내가 물었다.
"아무래도 그 놈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그 놈?”

 되물었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꿩만큼 튼실한 허벅지와 뱀처럼 유연한 몸, 새끼 악어만큼 강력한 이빨을 가진 이 구역 최상위 포식자. 보통보다 두 세배는 큰 대왕 쥐였다. 녀석은 그 강력한 스펙으로 창고안의 식량을 갈기갈기 찢어놨고, 가끔 특별 부식이라도 들어오는 날에도 우리보다 먼저 맛을 봤다. 다년간의 경험치로 쥐덫을 장난감처럼 다루는 놈. 쥐약은 간식먹듯 처먹는 괴물. 실사판 회색 피카츄였다.

“어떻게 하지 말입니다?” 병사가 물었다.
“잡아야지.” 내가 짧게 대답했다.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왜. 무섭냐?”
“아, 아닙니다! 귀신도 때려잡는 최전방! 정예 수색! 쥐 따위 무섭지 않습니다!"
“그래. 그렇지. 근데 귀신은 네 종아리에 빵꾸를 내지는 못할텐데. 괜찮겠어?”
“이, 일단 병사를 더 불러오겠습니다!"

 군 생활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군에 대한 충성심이나, 버려지는 음식물에 대한 친환경적 각성이 찾아온 건 아니었다. 다만, 네 생각이 났을 뿐이다. 너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녀석을 잡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처음 그 놈에 대한 얘기를 했을 때 너는 집중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쥐가 있을 수 있냐며, 동화책을 읽는 아이처럼 선한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밖에 식량을 조금 두면 어때? 그럼 창고에는 안 올거 아냐.” 네가 말했다.
“안 돼. 잡아야지.”
“잡는다고? 잡아서 어쩌려고?”
“가둬버려야지. 죽을 때까지 영영 못나오게.”

 너는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더 복잡한 얼굴로 꼭 그래야 하냐고 되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말했다. 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녀석은 조리실에 정돈된 부식품 사이에서 부시럭 거리고 있었다. 나는 가장 먼저 창고 문을 닫고, 타겟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철옹성같은 바리게이트를 쌓았다. 그리고 주변에 쌓인 짐을 하나 둘 바리게이트 밖으로 옮겨냈다. 상자가 줄어들수록 녀석의 은신처가 유물처럼 맨살을 드러냈다. 파쇄기통처럼 박스를 갈기갈기 찢어져 뭉쳐논 흔적. 병사들에게 줄 귀한 라면과 한달에 한번 나오는 초코파이를 맛있게 처먹은 흔적이었다.


 병사 중 일부는 삽을 들고, 또 다른 일부는 그물을 준비했다. 반보 이상 물러난 병사도 있었고, 오랜 노부부처럼 손을 맞잡은 병사들도 있었다. 지난 초코파이 대량폐기 사건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하는지 아득하게 눈을 번쩍이는 이도 있었다. 무기를 꽉 움켜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녀석을 감추고 있는 마지막 짐이 남았다.


“준비됐지? 하나, 둘, 셋! 하면 들어 올려.”

 내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병사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전투태세를 취했다. 작전 상황처럼 긴장감이 멤돌았다. 나는 크게 외쳤다.
“자, 하나, 둘, 셋!!


 마지막 박스가 주사위처럼 허공으로 던져졌다.

“찍!!!! 찍!!! 찍!!!”

 괴성이 사방에 울려퍼졌다. 도살장 돼지의 울음소리. 한껏 굶주린 들짐승이 내뱉는 신음소리. 코너에 몰린 생명이 발악하듯 내뱉는 절규였다.


 그러나 그 발작에 신속하게 응답해야 할 병사들은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을 뿐, 미동이 없었다.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을 쓸어 내리며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 이미 잡은 것 같습니다만...”
“잡았다고?”

 나는 현장을 내려다 보았다. 끈끈이에 몸이 반쯤 늘러붙은 쥐가 옴짝달싹 못하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놔둔 끈끈이였다. 녀석은 끈끈이에 걸린 발 하나를 빼내려다가, 역반동으로 몸 전체가 늘러붙은 것 같았다. 몸을 웅크리고 학학거리며 발버둥치는 녀석은 생각만큼 크지도 않았다. 누룽지처럼 달라붙은 놈이 새벽처럼 검은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저렇게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으면, 힘들겠지?”

“미치고 환장하지 말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늘러붙었으니.”

“공격하려고 짖어대는 줄 알았는데. 살려달라고 울고 있었구나.”


 가만히 귀기울였다면, 들을 수 있었을까. 만약 그랬다면 두려워하며 바리게이트를 쌓는 대신, 울고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시기하고, 질투하고, 두려워하는 대신, 기다리고, 믿어주고, 사랑해줬다면, 네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을까. 만약 그랬다면 지금 우리 모습도 조금은 달라졌을까. 조금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을까.

“...아무래도 보내줘야 할 것 같아.”
 바리게이트를 치우며 내가 말했다.
“잘 못들었습니다? 보내준다고 말입니다?”
“그래. 이놈도 살려고 그런 거 아니야. 힘들었겠지.”
“그러다가 살아서 다시 돌아오면...”
“...할 수 없지. 뭐.”

 조리실 서랍을 열어 튀김요리를 하기 위해 쟁여둔 식용류를 꺼냈다. 뚜껑을 열고 몸을 숙여, 천천히 녀석의 몸에 들이부었다. 몸 전체가 붙진 않아서 그런지 얼마동안 발버둥치던 녀석은 결국 미끄러지듯 끈끈이를 빠져나왔다. 얼마간은 허겁지겁 바닥에서 미끄러 졌지만, 조금씩 균형을 잡더니 이윽고 산을 향해 유유히 사라졌다.

 나는 녀석을 한참동안 바라보다 내무실로 돌아와 펜을 잡았다. 너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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