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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Apr 07. 2019

길고양이에 대한 토론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마을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흔한 회의였다. 주민들은 아침 일찍부터 나와 동네에 어슬렁거리는 길고양이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최근 마을 가꾸기에 대한 논의로 어수선한 동네에 길고양이가 늘어나 민원이 많아진 것이 소집의 원인이었다.     


- 전부 다 몰아내서 깨끗한 마을을 만들어야 합니다.     


 말끔한 정장 차림의 주민이 가장 먼저 의견을 제시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고양이들은 사람과 눈을 마주쳐도 도망가지 않아 기분이 나쁠 뿐만 아니라, 사방팔방에 털을 비비고 다녀 미관을 해쳤다. 게다가 음식물 쓰레기통을 마구 헤쳐 놓는 바람에 동네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으며, 마주치는 사람마다 냐옹거리며 밥을 달라는 통에 죄책감마저 든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일부 주민들이 집사처럼 길고양이에게 주기적으로 식량을 제공하는 바람에 이웃 마을 길고양이까지 넘어오게 됐고, 거기에 더해 최근 일부 몰지각한 주민들이 고양이 급식소까지 열자고 주장하고 있으니 여기가 사람을 위한 마을인지, 고양이를 위한 마을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는 거리에 있는 고양이를 일제히 소탕하여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세련된 마을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이제 어디로 가야 합니까.  


 아웃도어의 연설을 인내력있게 듣고 있던 노인이 말했다. 국방색 줄무늬가 가득한 낡은 밀리터리 군복을 입은 그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르자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에 따르면 길고양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길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반려동물로 사람들에 의해서 키워지다가 버려진 유기묘인 경우가 많으며, 거리의 쥐를 박멸하려는 목적으로 도입했다가 쥐가 사라지고 잉여화되자 방사시킨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길고양이 틈에서 태어난 새끼들 역시 다시 길고양이가 되어 쓰레기통을 뒤지고, 거리를 배회하고, 어느 날 어두운 골목에서 죽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비록 지금은 길에서 헤매고 있어도 오늘도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것들이라며, 비록 단기적으로 고통스러울지라도 그들에게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몇몇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침묵했다. 길고양이에 대한 연민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깨끗하고 살기 좋은 마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길고양이의 운명은 결국 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에 따라 결정되기로 하였다. 주민들은 무표정하게 투표장으로 향했다. 회의장 밖에는 얼마 후에 결정될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지 못한 황갈색 길고양이 한 마리가 얼룩덜룩한 줄무니를 뽐내며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눈길을 한번 주고는, 자그마하고 까끌까끌한 혀로 자신의 얼굴을 핥으며 갸릉거렸다.     


 그들의 선택에 따라 길고양이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시작할 것이다. 사람들의 보살핌속에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도, 지하 깊숙이 파인 구덩이에 엉겨붙어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어미 고양이의 충만한 기쁨속에서 태어나 삶을 영위하다, 이제는 일면식도 없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온전하게 결정될 그들의 삶을, 이제 곧 사라질 그 얼룩덜룩한 생애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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