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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Jul 12. 2019

똑딱이를 아시나요?

“어이, 대우 오락실 사장님. 오늘 표정이 밝네. 무슨 좋은 일 있었어?”

"좋은 일? 글쎄. 낮에 누가 찾아오긴 했는데. 너 혹시 똑딱이라고 알아?”

“똑딱이? 그게 뭔데?”

“가스렌인지에 불을 켜는 스위치 같은 거야. 이 똑딱이를 누르면, 똑딱- 하면서 작은 불꽃이 생기는데, 그 스파크가 가스랑 만나서 불이 일어나는 원리지. 일종의 마중물 같은 거야. 옛날 오락실에서는 이 똑딱이 하나면 공짜로 오락을 할 수 있었거든.”

“그게 무슨 말이야? 공짜로 게임을 하다니?”

“똑딱이를 동전 넣는 부분에 대고 똑딱- 튀겨주면 게임기가 100원으로 인식해 버리는 기계적 오류가 있었어. 예전에 불량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지. 나 같은 오락실 주인 입장에서는 골칫덩어리였고. 근데 오늘 낮에 어떤 친구가 가져왔더라구. 아주 오래전에 알던 친구가.”

“그런 게 있었다니 신기하네. 근데 그걸 오래전 친구가 왜 가져온 거야?”

“오늘 내 기분이 좋은 이유이기도 한데, 들어 볼래?”

“응. 들어볼래.”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야. 지금도 오락실을 운영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오락실 분위기가 좀 달랐어. 요즘은 게임이 대부분 즉흥적이고 휘발성이 강하잖아. 인형뽑기, 사격, 다트, 오토바이. 일회용이지. 근데 예전에는 안 그랬거든. 게임마다 각자의 우주와 각자의 이야기가 있었어. 스트리트 파이트, 철권, 더킹오브파이터즈, 삼국지, 던전드래곤, 1945... 그런 게임을 하다 보면 뭐랄까, 세상과 싸우는 기분이 들었지. 학교가 끝나면 초딩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서로 이기고, 지고, 싸우고, 화해하고, 항상 왁자지껄했어. 게임 잘하는 친구는 인기도 많았고. 나도 가끔 몰래 뒷자리로 가서 대결을 신청하기도 했는데 초딩한테 진 적은 한 번도 없어. 왜냐하면 얘들이 학교에 있을 시간에 나는 게임만 했거든.”

“으이구, 초딩 이겨서 좋았겠다. 그런데?”

“근데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영업을 마치고 돈 통을 열었는데, 100원짜리 동전 열댓 개밖에 없는 거야.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 왜냐하면 아무리 게임을 잘해도 그 동전의 양으로 몇 시간을 앉아 있는 건 불가능한 일이거든.”

“그래? 누가 돈통 뜯어서 훔쳐 간 거 아니야? CCTV 돌려봤어?”

“100원 띠기 장사에 CCTV 살 돈이 어딨어. 내가 오락실 주인이고, 교환원이고, 청소부고, CCTV지. 아무튼 의심스러워서 다음 날부터 방에 숨어 유심히 오락실을 살펴봤지. 3일쯤 지났을까. 어떤 꼬맹이 하나가 열심히 똑딱이로 게임을 하고 있더라고. 보통은 게임이 끝나면 포기하고 돌아가거나, 동전을 더 넣어서 목숨을 연장하는데 이놈은 똑딱이로 영원한 생명을 구사하고 있었어. 진시황의 꿈을 이룬 거지.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살금살금 다가갔어. 어디서 주워온 것 같은 후줄근한 옷차림에 시큼한 아몬드 냄새가 코를 찌르는 놈이었는데, 내가 어깨를 톡톡 찌르니까 화들짝 놀라더라.”

“놀라는 걸 보면 꼬맹이도 본인이 잘못했다는 건 알았나보네.”

“그랬겠지. 근데 황당했던 건 그 꼬맹이 반응이었어. 처음에는 움찔 놀라더니, 천연덕스럽게 무슨 일이냐고 되묻는거야. 그래서 내가 말했지. 다 알고 있으니 주머니에 있는 똑딱이 이리 내놓으라고.”

“그랬더니? 순순히 줬어?”

“처음에는 그렇게 보였어. 나한테 아저씨, 손 내밀어 보세요,하더라구. 그래서 얘가 바보는 아니구나, 하고 손을 내밀었는데 이놈이 갑자기 내 손에 똑딱이를 번쩍- 켜고는 냅다 도망가는거야. 초딩용 전기충격기에 당한거지. 내가 놀라서 뒤로 나자빠지는 사이에 노루 새끼처럼 도망치더라구. 나는 얼른 일어나서 그 녀석 뒤를 쫓았어. 쪼그만 몸으로 어찌나 빠르게 뛰던지 시장통 아주머니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더라. 그렇게 한참 동안 대낮의 추격전을 벌였어.”

“정말 당돌한 꼬맹이네. 그래서 결국엔 잡았어?”

“당연히 잡았지. 생각해보면 아무리 빨라봐야 초딩이잖아. 뒷덜미를 잡고 오락실로 데려오면서 요놈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어. 그냥 보내긴 괘씸했거든. 전기 충격기에 당한 손목도 따끔거렸고, 숨도 턱밑까지 차올랐으니까. 그래서 조금 고민하다가 꼬맹이 집으로 찾아가기로 했어. 녀석을 바로 잡아줘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물론 내심 보상같은 걸 바랬는지도 모르지.”

“그랬구나. 그래서 정말 집으로 찾아갔어? 보상받으러?”

“응. 꼬맹이랑 같이. 혹시 도망갈까 봐 손목을 꼭 잡고 걸었어. 그 좁쌀만한 놈이 또 방방거리면서 도망이라도 가면 솔직히 잡기 힘들 것 같았거든. 근데 그놈은 뭐가 그리 당당한지 성큼성큼 걸어가더라고. 그렇게 꽤 오래 걸었어. 산꼭대기에 있는 집이었는데 30분 이상은 걸린 것 같아. 겨우 집에 도착했는데, 음, 그 녀석이 집이라고 소개한 곳이 좀 충격적이었어. 말이 집이지, 판자 몇 개 세워놓은 창고나 다름없었거든. 그 사이 할머니가 대문을 열고 나오셨어. 두 눈에 경계심이 가득했지."

“낯선 사람이 집에 왔으니까 그러셨겠지. 엄마나 아빠는?”

“들어보니 아빠는 알콜 중독이라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엄마는 오래전에 도망갔다고 하더라구.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어. 쓰레기장에 있는 것 같았지. 할머니는 나한테 손자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지만 이미 빚쟁이들한테 다 뜯겨서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소리를 질렀어. 뭐, 꼬맹이 차림새로 봐서 가난은 예상했지만 막상 그 상황에 닥치니까 당황스럽더라. 좀 안쓰럽기고 했고."

“그래서? 그냥 돌아왔어?”

“아니. 그래도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어른으로써 체면은 살려야 하지 않겠어? 할 말은 해야지. 훈계같은 거. 집에서 나와서 꼬맹이랑 계단에 잠깐 앉았어. 그리고 물었지. 왜 그랬냐고. 게임이 하고 싶었던 거냐고."

"그랬더니?"

"꼬맹이가 그러더라. 자기는 게임을 할 줄도 모르고, 그런 건 처음부터 관심도 없었다고."

“게임에 관심이 없는데 왜 똑딱이를 하고 있었던 거야? 말이 안 되잖아.”

“상식적으로는 그렇지. 근데 그 녀석 눈빛이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어. 굉장히 진실되게 들렸거든. 무슨 변덕인지 몰라도 나는 주머니에서 똑딱이를 꺼내서 그 녀석한테 되돌려줬고. 혹시 게임이 하고 싶으면 똑딱이 튀기지말고 언제든 얘기하라고 했지. 꼬맹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어. 나도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그렇게 둘이 한참을 계단에 앉아있었는데 마침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도시에 하나 둘 불이 들어오더라. 산꼭대기 달동네에서 본 그 날의 풍경은 어딘지 모르게 참 쓸쓸해 보였어. 그 뒤로 얼마 안가 판자촌은 철거를 했고, 꼬맹이도, 할머니도 어디론가 떠나버렸지. 그 이후로 다시 꼬맹이를 볼 수 없었어.”

“그랬구나. 그럼 오늘 찾아왔다는 친구가 혹시 그 꼬맹이야?”

“응. 아주 오래전 일인데 용케 기억하고 있더라고. 그 녀석, 나를 유심히 보다니 자기를 알아보겠냐고 묻더라. 사실 내가 어떻게 알겠어. 이미 너무 오래전에 잊은 일인데. 그래서 내가 누구신지요, 하고 물었더니 이 똑딱이를 건네더라구. 그제야 생각이 났어. 다 큰 어른이 되어 있더라. 반가웠어. 그래서 내가 웃으며 물었지. 아직도 똑딱이를 하고 있습니까,라고. 그랬더니 어쩌면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라고 대답하더라.”

“그게 무슨 말이야? 이제는 어른일텐데?”

“그때 생각했어. 어쩌면 이 친구는 정말 게임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 거라고. 그 어린아이가 마주해야 할 삶이 너무 혹독하고 잔인해서, 게임 속 가상 세계의 싸움을 시시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고."

“그 친구한테 똑딱이는 다른 의미였겠네."

"아마도 그랬겠지. 이제 하나뿐인 할머니도, 자신을 버린 부모도, 낡은 판잣집도, 그리고 자기 자신도,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여기를 발견한거야. 나한테 떠나지 않고 남아줘서 고맙다고 말하더라. 마침 해가 어둑어둑해져서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어."

“그때는 하늘이 어땠어? 덜 쓸쓸했어?"

“응. 왠지 모르게 포근했어. 또 놀러 와도 되냐고 묻길래 언제든지 오라고 했어. 여긴 대우(大友)오락실이니까.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겠지만, 힘이 닿는다면 오래오래 여기 머물겠다고.”

“그렇게만 된다면 누군가에겐 최고의 대우가 되겠네.”

“어쩌면. 그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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