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구토를 잘 하는 법에도 급수가 있다고 해보자. 여기서 ‘잘’은 자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좋고 훌륭하게, 익숙하고 능란하게라는 의미의 ‘잘’이다. 그렇다면 4cycle 중반부터는 두 급수 정도는 올라가지 않았을까 자평해본다. 구토를 참아야 하는 ‘복용 후 3시간’을 무난히 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자, 모든 관심은 어떻게 하면 편하게 토할 수 있을까에 쏠렸다.
얕은 잠을 자다가 토할 듯 말 듯한 괴로움이 느껴지면, 자기 전 머리맡에 미리 준비해둔 이온 음료를 마셨다. 그러면 체액과 비슷한 느낌이 나 구토할 때 느껴지는 이물감을 줄일 수 있었고, 심한 구토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탈수와 전해질 불균형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었다.
혹자는 구토 욕구를 높이는 것이 왜 장점인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속을 편안하게 하여 욕구를 낮추는 것이 최선이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강도 높은 항구토제와 침구치료, 한방 차(茶) 요법까지 모든 수단을 이미 쓴 터라 대세를 거스를 방법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넘칠 것 같은 물컵을 굳이 불안하게 쥐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넘치는 걸 막을 수 없다면 그냥 쏟아버리는 게 더 나은 선택이다. 어차피 물은 닦아내야 하고, 열 잔 엎을 거 한두 잔 덜 엎는다고 뒤처리가 훨씬 수월한 것도 아니니까. 어떻게든 덜 흘려보겠다고 노력할 바에는 그 에너지를 아껴 두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리고 비록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한 번 속을 비우고 다시 채워지기까지 잠시의 평화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달콤한 데에 반해 토할 듯 말 듯한 상태가 주는 기분은 더럽기가 그지없어 구토를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은 점도 컸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손가락으로 목구멍 어디쯤을 짚어야 복압을 크게 끌어올리지 않아도 쉽게 뱉을 수 있는지 감도 점점 잡아가는 등 스킬도 키워 늘어난 구토 시간에 따른 체력적 부담도 어느 정도 벌충시켰다. 심지어는 아침에 늦어 지각할 뻔한 동생을 차로 태워다주기까지 할 정도였다. 나이가 젊고 몇 시간쯤 토해도 끄떡없는 체력과 회복력이 있기에 할 수 있었던 도박은 성공적이었다.
3cycle과 4cycle 사이는 여름이었고, 연일 무더위가 펼쳐지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매미소리는 짝을 찾기 위한 사랑의 세레나데가 아닌 뜨거워 죽겠으니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비명소리였다. 열기는 모든 것을 녹여대고 있었고, 비니 모자에 갇힌 내 반쪽 머리는 상태가 더욱 심각했다. 외출을 삼가야 했다. 하루에 스케줄은 단 하나였다. ‘오후 1시 골프연습장’. 냉방비를 아끼기 위해서는 가장 더울 때 집밖에 있는 게 수였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골프연습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횡단보도에 서서 녹색 불로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이잉’ 소리를 내는 전동휠체어가 내 곁을 스쳐지나갔다. 뜨거운 햇살을 막기엔 턱없이 부족해보이는 손수건 한 장이 그 분의 머리 위에 나부끼고 있었다. 나도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모자를 흠뻑 적시고 있던 땀을 훔쳐냈다. 생각은 공보의 시절로, 대학생 때로 계속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수술을 앞두고 수많은 생각이 날뛰던 그 어느 날에서 끝났다.
모든 게 감사하고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