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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Mar 31. 2017

[소설]내려놓음 외전 04 별 헤는 밤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외전 04 별 헤는 밤





 어린 시절 공룡을 참 좋아했다. 그때 당시 살던 집 근처 프랜차이즈 피자 전문점이 있었는데 피자를 주문하면 조그만 공룡 인형을 끼워주었다. 그리고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집안 구석구석에서 발견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어지간히 모아대었구나 싶은 것이, 만약 그때 그 집에서 공룡을 주지 않았다면 살이 이렇게 쪘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본의 아닌 백수 생활 덕에 낮에 외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할머니나 어머니의 손을 잡은, 때로는 친구들과 뛰노는 아이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리고 참새가 지저귀듯 “공룡 ABC~ 공룡 ABC” 노래하는 아이들의 손에 쥐어진 공룡 인형. 이런 걸 보면 아이라면 으레 공룡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시기가 있지 않나 싶다.


 지구를 영원히 지배할 것 같았던 공룡도 한 순간에 멸종했듯이 어느 순간 나의 손에는 공룡이 아닌 로봇이 들려있었다. 그러나 그 로봇도 《바이센테니얼 맨》이나 《아이 로봇》 같은 크기가 아니라, 《마징가Z》나 《지구용사 선가드》 같은 메카닉 류에 열광했던 것을 보면 ‘거대한 무언가’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로봇도 제 아무리 커보았자 한계가 있는 법. 종착지는 우주였다. 집에는 부족한 생활비를 모으고 모아서 산 과학 대백과류의 전집이 3개나 있었는데 오직 천체관련 책들만 너덜너덜했다. 어제 봤던 사진이나 오늘 본 사진이나 다를 바 하나 없건만 매일매일 신기해하며 쳐다보곤 했다.



 지구 크기의 100만 배 되는 태양, 태양보다도 더 큰 별들이 10억 개씩 모여 있는 은하, 그 은하들이 수없이 모인 은하단. 그 은하단 조차 수없이 많음에도 한없이 깜깜할 뿐인 우주. 조그마한 머리의 상상력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숫자로 가득한 우주를 바라보며 공상에 빠지곤 했다. 우주 밖에는 무엇이 있을까? 혹시 온통 흰색으로 가득 찬 공간에 검은빛을 내뿜는 별이 있지 않을까? 까만 종이에 소금 몇 개 떨어진 것 같은 화질의 사진을 보면서도 수많은 이미지를 떠올리며 우주와의 만남을 즐겼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 수학을 힘들어했던 시기가 그리 많지 않았는데, 아마 우주를 설명하는 숫자 앞에서 열심히 짱돌을 구리던 나의 옆에 수학 선생님인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런 어린 시절의 로망은 지금도 남아 버킷 리스트 중에는 ‘오로라 보기’도 들어있다. 우주와 지구가 나누는 대화를 본다는 것. 그 얼마나 황홀한 광경일까? 그러나 오로라는 한국에서 볼 수 없다. 대신 천체 현상이라도 빠지지 않고 보려 애썼다.


 지난 2009년에는 부분 일식을 보기 위해 과학 수업한다며 과외 학생도 끌고 나와 태양 필터 안경을 끼고 하늘을 뚫어져라 보았고, 2년 전 페르세우스 유성우 때는 관사 베란다에 죽치고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같은 해에 있었던 개기월식 때는 닿을 듯 말 듯 하던 그녀의 마음을 확인하는 키스를 나누기도 했다. 붉은 색으로 변한 달이 노란 빛을 되찾을 때까지 공원 벤치에 앉아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정말 꼴불견이라 어디 가서 말하기 부끄러운 기억이건만 이렇게 글로 옮길 수 있는 것도, 지구 뒤에 숨은 달빛 아래서 이루어졌던 일이어서가 아닐까? 붉은 달 위에 하나 아래에 하나 두고, 호숫가 벤치에 앉아 달콤한 입맞춤을 나누는 남녀. 그야말로 그림 같은 풍경이 아니었을지 상상해본다.



 그런 나에게 2016년 8월 12일, 또다시 찾아온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는 지루한 나날에 상쾌함을 안겨줄 청량음료 같은 이벤트로 다가왔다. 며칠 전부터 가족들에게 그날 저녁 시간을 비워두라며 들볶았고 덕분에 온가족이 다 함께 유성우를 보러 출발 할 수 있었다.

 별똥별을 보러 갈 곳은 운수 보건지소였다. 한적한 시골이라 광해(光害)따위 없고, 가로50m * 세로30m 주차장은 탁 트인 시야를 제공하기 까지 했다. 게다가 미리 협조까지 받아놓아 별을 보는데 방해될만한 것이 전혀 없었다.



동완 : 나 별똥별 보러 운수가려고. 지소 안에는 안 들어가고 주차장만 쓸 거긴 한데 혹시나 싶어서~ 괜찮을까?

고희 : 아, 그 때는 나도 어차피 휴가여서 지소에 없어. 의사 형도 금요일이면 집에 갈 걸?

동완 : 그럼 다행이다. 시끄럽게 하지는 않을 거긴 한데, 그래도 남의 집 앞마당 들어가는 기분이라서.

고희 : 주차장 어차피 면사무소, 노인복지회관, 지소 다 같이 쓰는 건데 머. 상관없지. 그리고 지소 들어가면 밖에 잘 안 보니까. 그래도 형한테 이야기는 해놓을게.

동완 : 땡큐~!


 그렇게 도착한 운수. 운수의 하늘은 여느 그때처럼 깨끗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에 표표히 떠있는 반달은 훈련소 시절 경계 근무 나갔었을 때 보았던 별이 쏟아지던 논산의 밤하늘과, 재작년 여름 이맘 때 형들과 같이 축구하고 덕곡 지소에서 뒤풀이하며 보았던 쏟아지는 별빛을 함께 떠오르게 했다.


 고기불판이 내뿜는 연기 속에서 조차 밝게 빛나던 별들이 뇌리에 깊이 박혀, 지소에 가기로 결정된 날 나는 지소 옥상에서의 시간을 상상했다. 테라스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엷게 탄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별빛이 수놓은 밤을 즐기는 내 모습을.


 보름달 뜬 밤 지소 옥상에서 연인과 운우지정을 나누었다는 건네들은 풍문은 나를 발칙한 상상에 빠지게도 만들었다. 드넓은 논과 수박밭 사이에 덩그러이 놓인 운수지소는 그리하더라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가장 가까운 건물이라 해보았자 30m 거리의 파출소와 면사무소. 그런 허허벌판에 몇 없는 2층 건물이 아니던가. 거리의 가로등도, 초등학교 운동장을 환하게 비추던 조명탑도 11시가 되면 모두 꺼진다. 사라진 불빛 속에 축사의 소도, 가로등 주위에 날아다니던 벌레도, 구애의 목소리를 드높이던 매미도 잠들어버린 그 곳. 간간히 드리는 귀뚜라미 울음소리 아래서 마주한 두 사람. 상상만 해도 로맨틱하고 음란한 밤이 될 터였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나가 보았더니 벌레가 너무 많더라, 혹은 춥더라.’의 현실적인 문제에 부닥쳤다거나, ‘나가는 것이 의외로 번거롭더라.’의 귀찮음 때문도 아니었다. 그냥 단지 까맣게 잊어버려서였다. 1년을 살면서 방 밖에 나와 밤하늘을 바라볼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퇴근시간이 되면 관사에 올라가서 문 닫고 나 혼자 만의 세계를 즐기기 바빴다. 심지어는 베란다에 비치는 햇빛이 아침잠을 방해한다고 블라인드를 한 번 내려놓은 이후로 또 까맣게 잊어 그대로 벽이 되어버렸다. 밤늦게 골프 연습을 하고 돌아와 주차하고 지소 문을 따러 걸어가는 그 순간에도 오로지 앞만 보았다. 그 달리 바쁠 것 하나 없는 삶이었는데 왜 고개 한 번 쳐들 여유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살았을까?


 좁디좁은 관사에 들어가 한 것이라고는 TV보기나 폰 게임뿐이었는데. 단 한 번이라도 넓은 바깥으로 나가 하늘을 보았더라면 그 광경을 못 잊고 옥상에서 종종 별구경을 하곤 했을 텐데. 그만큼 지금 내 눈에 비친 밤하늘은 아름다웠다. 냉장고에서 발견한 상한 스테이크도 이만큼 상실감을 주지 못하리라.


 아쉬움을 삼키며 돗자리 두 개를 깔고 주차장 한복판에 온가족이 나란히 누웠다. 상하좌우 20m 근방이 모두 평지, 빛이라고는 가로등 1개와 100m도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초등학교 조명탑 뿐. 이마저도 30분 뒤 11시가 되면 꺼질 것이다.



 달 반대편을 보고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붉은 선이 하늘을 가로로 찢었다.


 “와, 진짜 굵다. 이 근방에 떨어진 거 아냐? 운석 주우면 로또 당첨이나 마찬가지라던데”

 동생이 말했다. “아, 소원 빌었어야 했는데 못했다.”

 “오늘 많이 떨어진다니까 다음에 빌면 되겠지.”

 “오빠, 그거 들었어? 별똥별이 가장 많이 듣는 소원 1위가 ‘어!’ 이고, 2위가 ‘저기! 저기!’ 래.”

 “응. 재미없어.”

 “치.”

 어머니께서 말했다. “좀 조용히 해봐. 소원빌게. 집중 좀 하자.”


 유성우라는 이름에 현혹되어 비처럼 쏟아지는 별똥별은 기대했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시간당 150개씩 떨어진다는 말은 전문 관측소에만 해당되는 모양이었다. 10여 분이 지난 후에야 두 번째 별똥별이 떨어졌다.


 “어! 어!”

 “왜? 어디? 어디?”

 “동완아, 못 봤어?”

 “어, 엄마는?”

 “봤지.”

 “나만 못 본거야? 어디였는데?”

 “저쪽”

 “음, 3시 방향 말하는 건가?”

 “보자... 응. 대충 3시.”

 “생각보다 하늘이 엄청 넓네. 어디를 봐야할지 모르겠다.”


 그 후로 별똥별이 몇 개 더 떨어졌지만, 처음 본 붉은 불덩이의 화려함은 없었다. 검은 종이에 얇은 흰 펜으로 스윽 한 번 휘두른 정도였다. 그래도 별똥별 마다 제각기 특색은 있어 빠른 속도로 짧게 나타나고 사라지는 아이가 있노라면, 비실비실 거리면서도 꽤나 긴 꼬리를 선보이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이도 있었다.


 “저기에 카시오페아자리 있다. W 모양이 딱 보이네. 진짜 밝다.”

 “그럼 저거는 북두칠성인가?”

 “작은곰자리 아닐까? 둘 다 똑같이 국자모양이거든.”

 “별 진짜 많네.”


 11시가 되자 거슬리던 가로등과 조명탑의 조명이 본연의 임무를 다하고 퇴장했다. 그렇게 한결 어두워진 밤하늘에는 밝은 조명 뒤에 가려져 있던 수많은 별들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둠에 적응된 눈에 들어오는 수많은 별빛. 아름다웠다. 별똥별을 기다리는 김에 구경한다고 하기에는 그 존재감은 너무나 찬란했다.

 ‘꿩 대신 닭 취급 받을 존재가 아닌데 좀 미안하네. 이름 정도는 알아줘야겠어. 저렇게 항상 그 자리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데 까맣게 잊고 지나다가, 뒤늦게 찾아와서 별똥별만 기다리고 있는 꼴이라니.’



 폰을 꺼내 검색하면서도 혹여나 그사이에 별똥별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눈에 띄는 별들의 이름과 별자리를 찾아나갔다. 그런 나의 곁에는 집에서 가져온 커피를 마시는 나눠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별똥별 본 것을 자랑하는 동생이 누워있었다.


 생각했다. 나에게 찾아온 고난이, 실은 가족과 함께할 오늘을 나에게 주고 싶었던 운명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아마 이 순간은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앞으로 사는 동안 이토록 아름답고 낭만적인 순간을 온가족이 함께 보낼 기회가 몇 번이나 남아있을지. 훗날 나의 자녀가, 먼 훗날 손자와 손녀가 옛날이야기 해달라고 조른다면 오늘을 이야기하리라. 밤하늘에 별이 너무도 많은 나머지 자리가 모자라 떨어지기까지 한 날이 있었노라고.


 다시 생각해보니, 이번 일만 없었다면 이런 좋은 기회를 두고도 가족보다 친구나 연인과 함께할 생각을 먼저 했을 나에게 운명이 내린 벌 같기도 하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 내 머리맡으로 흰 빛줄기가 비쳤다.


 “오오~!”

 “어디? 어디?”

 “10시에서 2시로 지나갔어. 엄마.”


 이번에는 어머니가 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대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별똥별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며 일러주었다. 그리고 조금 뒤,


 “우와!”

 “어디? 어디?”

 “이번 꺼 진짜 컸어. 엄마 못 봤어?”

 “못 봤지. 어디였는데?”

 “3시 쪽에.”

 “아 느그 아빠가 오른쪽 보라고 해서 오른쪽 보고 있었는데, 또 나만 못 봤잖아.”

 “에이, 엄마 그건 복불복이지. 아빠는 봤는데?”

 “그니까 더 못 됐지. 나보고는 오른쪽 보라고 하고 자기는 왼쪽 보고. 다 느그 아빠 때문이야. 느그 아빠가 어!”

 “왜?”

 “별똥별!”


 어머니의 푸념을 듣느라고 제대로 하늘을 살피지 못한 탓에 별똥별을 놓쳐 어머니께 투덜거리려던 그때, 웃음기가 잔뜩 서린 동생과 눈이 마주쳤다. 그때부터 동생과 나는 웃음이 걷잡을 수 없이 터졌고 배를 잡고 웃는다는 말이 관용어가 아닌 실제로도 가능함을 몸소 느꼈다. 정말 끝도 없이 웃었다. 너무 웃은 나머지 눈물이 그치지 않아 여행용 티슈를 반이나 소모한 뒤에야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감정의 격류를 잠재울 수 있었다.


 “왜? 왜? 나도 좀 같이 웃자.”

 “어. 엄마 그게. 잠만. 크흐흐흑. 아악.”

 “냅둬. 저러다 말겠지.”


 궁금해 하는 어머니.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동생과 나. 시큰둥한 아버지. 심호흡 몇 번 해서 겨우 진정시키고, 말을 더듬더듬 이어나갔다.


 “아까 가민이가 별똥별이 듣는 소원이 머라고 했는지 기억나?”

 “머라 했더라?”

 “1위가 ‘어!’, 2위가 ‘저기! 저기!’라 했잖아”

 “그래 그랬지.”

 “그런데 엄마는 똑똑히 말했어. 느그 아빠 때문이라고. 엄마 소원은 이제 ‘느그 아빠 때문이야’ 인거지.”


 그 말은 들은 어머니도, 말을 겨우 마친 나와 내 동생도 다시 한참을 웃었고 아버지는 한숨 섞인 웃음으로 넘겼다.



 극대기가 지난 듯 별똥별 내리는 간격도 점차 넓어졌고, 스무 개를 채우는 순간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누구는 보고 누구는 보지 못한 것들이 꽤 있어 동생과 나는 15개, 어머니는 14개, 그리고 아버지는 9개만 보고 집으로 출발했다.


 돌아오는 차 밖으로 흐르는 주변 풍경. 지난 2년간 늘 보았던 풍경이 오늘은 아름다운 영화 속 장면처럼 느껴진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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