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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bokenpier Jun 24. 2017

'개혁'과 '통합'을 모두 잡을 수 있을까

 정치는 늘 싸운다. 싸움에 참여하는 각 정치세력과 이해관계자들은 대립하는 과정 속에서 결론을 도출하고 새로운 생활상과 상식을 만든다. 2000년대 초반 폐지된 호주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폐지 논의 당시 호주제 유지와 폐지에 대한 의견 대립이 팽팽했다. 그러나 유림 등 보수층의 의견보단 여성계의 논리와 설득력이 사회 여론에서 우위를 점해 호주제는 결국 폐지됐다. 호주제 폐지로 지금은 아버지 없는 집안에서 미성년 아들이 어머니 등 집안 여성들보다 앞서 집안의 어른(호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당시에 호주제 폐지와 유지라는 두 관점을 모두 수용하려고 했다면 지금과 꽤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탄핵 이후 사회 개혁이 진행되는 시점에 개혁과 통합이라는 이질적인 가치를 둘 다 추구하려는 시도가 있다. 비록 그 의도와 선의는 존중하지만, 바람직하거나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선 개혁과 통합이라는 상반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국민이 진정 바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오히려 올해 있었던 대선 결과를 보면 통합과 개혁을 동시에 추구하는 후보들의 성적은 저조했다. '중도'를 내세우며 양극단의 세력 대신 합리적인 정치를 하겠다는 안철수 후보는 21.4%를 얻어 3위를 기록했다. 적폐 청산을 강조한 문재인 후보의 절반에 불과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보수 진영의 논리를 일관되게 고수한 홍준표 후보에게도 뒤쳐졌다. '개혁적 보수'로 경제 정책 등에서 탈진영 정치를 보여준 유승민 후보의 득표율은 6.8%에 불과해, '거침없는 개혁'을 외친 진보진영의 심상정 후보와 득표율이 엇비슷했다. 대선 결과를 놓고 본다면 국민은 개혁과 통합을 동시에 추구하기보단 개혁을 더욱 원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번 대선은 5개 주요 정당이 각자 후보를 내세워 어느 때보다 정책 방향과 사회 구성을 이야기하는 담론이 많았기 때문에 이번 대선이 민심을 정확하게 반영했다고 추정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한발 더 나아가 개혁과 통합의 두 가치가 공존하는 국가 운영이 가능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경제 양극화, 권력기관 운영, 환경 보호 등 우리 사회의 문제들은 개혁과 통합을 모두 추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관행을 고치고 잘못을 저지른 인사에 대한 처벌까지 하는 것이 개혁이라면, 이에 순순히 응하고 나아가 협조하는 기존 구성원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성이 낮다고 볼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개혁과 통합을 같이 이뤄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과 내용으로 해나가야 하는지 적절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칫 기존 구성원들이 용인하고 실질적 피해가 없는 범위 내에서만 개혁을 하는 식으로 국정운영 방향이 폭넓게 수정될 가능성도 있다. 도입 당시 기존 구성원들의 극렬한 반발이 있었지만 지금은 제도로 정착한 금융실명제와 같은 개혁조치들은 아예 시도조차 안될 가능성도 있다. 


 지금 전 세계는 탈진영보다는 확실한 이념 노선을 밝히는 정치인들이 부흥하고 있다. 탈진영의 원조인 '제3의 길'이라는 개념이 나온 영국의 경우 원칙주의 사회주의자인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가 보수당의 과반 저지에 성공했다. 미국도 보호 무역주의자 트럼프와 민주사회주의자인 버니 샌더스가 선거 돌풍을 일으켰다. 프랑스의 경우 중도주의자 마크롱이 당선됐지만, 극우 정치인 르펜의 당선을 막으려는 유권자의 소거법적인 선택과 결선투표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통해 일어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정치는 국민을 대표해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짊어져야 하는 자리다. 그리고 그에 대한 판단은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선거를 통해 평가받는다. 애매모호하고 가변적인 개혁과 통합의 양립 추구를 하기보단 국민의 선택에 담긴 의미를 받들어 제대로 된 국정운영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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