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ullmoon Dec 02. 2021

엄마, 참 쉽지 않다

선생님이 ooo이만 좋아할 때


"엄마, 우리 선생님 말이야, 공부 잘하는 애들만 좋아하는 것 같아."


순간 내 머릿속은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

'뭐야, 뭐지?'

'공부 잘하는 애들만... 이랬어. 그 애들 무리에서 자기는 빼고 하는 말 같은데.'

'요즘 스스로 챙기게 뒀는데 숙제를 안 해 갔나? 수행평가 잘 못 했나?' 걱정의 꼬리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면 선명하게 남아있는 내 어린 시절 기억을 소환한다. 정확한 기억인지 기억에 근거한 허구인지 확실치 않지만 무튼, 내가 싫었던 어른들(엄마^^)의 반응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우리 엄마는 이럴 때, 이렇게 말하곤 했지. "그러니까 너도 공부 잘하지 그랬어!" 라거나 "너는 열심히 안 했어? 뭘 안 했어? 응?".


행주로 식탁을 훔치며 무심하게 물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어?"

"선생님이 OO 이만 좋아해. 걔가 발표할 땐 달라."


"아... OO이가 공부를 잘해?"

"응. OO이가 발표를 잘해. 모르는 것도 하나도 없어."


"그런데 말이야, 시험도 안 봤고 아무것도 안 했는데 OO이가 공부를 잘하는 줄은 어떻게 알아?"

"공부 잘하는 애들은 그냥 보면 알아."


빈 그릇을 개수대에 옮기고 남은 반찬들을 찬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무심한 척 질문~

"OO이 말고 또 누구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음... 없어."

"그럼 다른 친구들은 안 좋아하셔?"

"음... 보통. 남자 친구들은 맨날 혼내셔."

"아...."


다시 설거지를 하고, 주방을 정리하다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렇게 집요하게 물으면 아이는 같은 이슈로 다시는 내게 말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물었다. 왜? 나는 엄마니까.


(솔직한 속마음 : 왜 OO 이만 좋아하시지? 너는 왜? 왜???)


"자꾸 물으면 싫을지 모르겠는데 엄마가 걱정이 돼서 그래. 솔직히 누가 누구를 조금 더 좋아할 수 있거든. 사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시는 게 좋겠지만 선생님도 그러실 수 있고. 엄마가 걱정되는 건 그래서 네가 속상했느냐 하는 부분이야. 네 마음이 괜찮으면 엄마는 다 괜찮아."


"응. 속상했어."


"그랬구나. 혹시 너무 많이 속상해서 이건 선생님께서 고쳤으면 좋겠다 싶은 건 꼭 엄마한테 이야기해 줘."


"치, 얘기하면 뭐해. 엄마가 (선생님께) 말하면 나만 더 미움받지."


(뭐니, 이 반응? 그래 내가 뭘 해 줄 수 있겠어. 흑...)

"뭐야, 엄마가 뭐 쪼르르 선생님한테 가서 이야기할까 봐. 너 같으면 이런 상황을 가서 이야기할 것 같아? 당연히 안 하지. 대신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쮸는 이때부터 내 말에 시큰둥. 그렇다면 할 수 없이, 비장의 카드 쭌연이 등장~


*유독 옛날이야기를 좋아하는 쮸에게 볶이다 내 어린 시절 친구들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 시작이었다. 그중 특히 인기가 좋았던 건 한복집 딸 은경이(고집 세고 제멋대로라 모두들 같이 놀이 싫어함) 그리고 3,4,5학년 까지 3년을 나와 한 반에 짝꿍까지 했던 장난에 살고 장난에 죽는, 장난치기 위해 학교에 오지 싶었던 준연이.


"그런데 쮸~~~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패션 스타일이 다르잖아. 엄마 생각에는 결국 취향의 문제거든. 사람도 마찬가지라서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끌리고 조금 더 잘해 주기도 해. 준연이 삼촌 말이야, 엄마 4학년 때 선생님께는 매일 혼만 났어.

나중에는 여자아이들이 "선생님 준연이 가요~"이러면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듣지도 않고 "준연이 이 눔의 자식"이러면서 막 혼내셨어. 그래서 준연이 삼촌 실컷 혼나고 나서 여자애들이 "준연이가 그런 게 아니고 준연이는 보고 있었어요" 사실을 말하면 "너는 왜 네가 잘못 안 한 것도 암말 않고 혼나고 있었냐"라고 또 혼나고. 그치? 좀 너무하지?"


"물론 준연이가 워낙 장난을 많이 쳐서 전적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엄마도 너무 하다 생각했어. 그런데 5학년 때 선생님은 아주 젊은 여자 선생님이셨거든. 준연이 삼촌을 야단쳐야 하는 데도 "너 참 기발하다"며 막 웃으셨어. 선생님이 준연이만 좋아한다고 여자아이들 불만이 컸지."


"왜 도시락 김 먹으면 나오는 하얀색 봉투 있잖아. 그 안에 실리카겔이라고 투명한 알갱이들이 들었거든. 어느 날 준연이 삼촌이 실리카겔을 잔뜩 모아서 여자애들 신발 안에 넣어둔 거야. 애들이 화가 나서 선생님께 이르러 갔는데 선생님이 글쎄 "ㅎㅎㅎ 선생님 시절엔 흙이었는데, 실리카겔을 넣을 생각을 했네. 이 많은 양을 어떻게 다 모았어? 욘석아 그 집념으로 다른 걸 하면 대성하겠다." 이러셨지 뭐야. 엄마 생각에, 5학년 때 선생님 취향은 준연이 삼촌 같은 사람이었나 봐. 장난을 너무 많이 치지만 기발하고 상상력 풍부한 그런 사람."


"에이! 그래도 너무했다. 일단 야단을 치고 그 이야기를 해야지. 선생님이니까!"


쮸는 약속과 원칙을 중요하게 여긴다. 선생님께서 "다음 시간에 할게요"라고 한 이야기를 기억했다가 "선생님 OO 왜 안 해요?"라고 당당하게 묻는다.


엄마인 나는 안다. 


교실 안 아니 사람세상에서 당당함과 당돌함은 종이 한 장 차이. TPO에 맞게 어떤 어조로 어떤 단어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밉상이 될 수도 호감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언제나 호감이 되고자 애썼던 나와 달리 밉상이면 뭐?라는 쮸의 태도에 내가 자주 반한다는 거.


고리타분한 나의 시선으로 볼 때 종종 쮸는 당당에서 당돌로 기운다. 이 경우 두 가지 반응이 나온다. 

'어머, 요놈 봐라?' 따스한 시선 VS '이 눔의 자식이!' 피곤한 시선. 엄마인 나도 가끔은 피곤할 때가 있는데 타인은 어떠하랴...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래서 쮸에게 "언어의 온도"에 대해 "말을 할 때 단어의 선택에 대해" 일러주려고 애쓰는 편인데 결국은 "나나 잘 하자(아이는 부모를 보고 배우니까)"로 정리될 때가 많다. 어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넘겼지만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든 생각은 '선생님은 왜 OO 이만 좋아할까? 우리 쮸는???'


아이의 한 마디에 엄마의 마음은 수십 번도 넘게 들썩인다. 엄마, 참 쉽지 않다. 지혜로운 엄마? 버럭만 안 하면 다행이다. 



아이보다 앞서 30대를, 40대를 삽니다. 이 기록이 딸을 위한 조용하고도 든든한 잔소리로 남기를 바랍니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이제부터 오늘을 살겠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