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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ullmoon Dec 01. 2021

나는 이제부터 오늘을 살겠어요

live HERE, not there

신혼집에서 11년을 살았다. 남편은 연애할 당시 전세를 끼고 집을 구매했다. "집 보러 가자"라는 말에 졸래졸래 따라나섰지만 그 집에 우리의 신혼집을 꾸릴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도, 이 사람과의 결혼을 생각하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당시의 나는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상견례를 하고도 헤어지는 연인을 보았다. 청첩장까지 찍고 나서도 결혼을 무르는 커플도 만났다. 때문에 당장 결혼 예정도 없던 터라, 남자 친구가 구매하는 집은 더도 덜도 말고 딱 '남자 친구의 소유물'일뿐이었다.


몇 년 후 결혼 준비를 하며 자연스럽게 그 집이 신혼집이 되었다. 집을 다시 보러 가던 날 남편은 몇 번이고 내게 당부했다. "주방을 바꿀 거고, 화장실도 싹 수리할 거야. 지금은 보기가 좀 그런데, 공사하고 나면 괜찮을 거니까...


몇 해전 그 집을 보러 가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버스정류장을 내려 열 걸음 정도 걷다 우측 골목으로 돌아서면 단층짜리 낮은 건물로 이어진 시장 골목이 나왔지. 골목을 지나 왼편으로 꺾으면 학교가 있었고, 학교를 마주하고 있는 두 동 짜리 아파트에 그 집이 있었다. 아파트 마당 사이로 맞은편 목욕탕 굴뚝에서 뿜는 하얀 연기가 보였고, 골목 입구 방앗간의 고소한 참기름 냄새는 아파트 마당까지 났다. 모퉁이 과일가게에서는 플라스틱 소쿠리에 홍시를 담아놓고 박스의 일부를 뜯어 '한 소쿠리 2000원' 이렇게 써 놓고 말이야. 소소하지만 따뜻했고 정감 어린 풍경들....이라고 기억하고 있었으나.


기억 속 그 골목, 그 동네는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쇠락 중인 시장 골목과 낡고 낡은 아파트였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짜리 아파트 5층. 한 칸 한 칸 계단을 오를 때마다 오래된 건물 특유의 냄새가 코를 파고들었다. 습기에 들떠 툭툭 떨어지는 벽면 페인트 하며, 누군가가 흘린 것이 분명한 말라붙은 음식물 찌꺼기에 '다 죽어'라는 낙서까지, 무엇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곧 재건축 들어간다니까, 1년만 살자. 1년만 살고 이사 가면 되니까." 남편은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다행히 나는 선택과 결정에 질려버린 상태였다. 결혼식장/ 웨딩스튜디오/ 한복 디자인/ 드레스 디자인/ 신혼여행지/ 하객음식/ 답례품 등등등. 수십 가지를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지친 내게 선택이 아닌 지정으로 다가온 신혼집은 어쩌면 반갑기 까지 했다. '1년 그까이거~'라는 믿음도 한 몫했다.


하.지.만. 우리 사는 세상 어디 그리 만만하던가. 1년이 2년 되고, 2년이 3년, 3년이 4년, 자꾸자꾸 기간이 늘어났다. 1년만 1년만 하다 보니 어느새 7년. 회사 일이 바빴고, 임신을 했고, 아기가 아팠다. 아기가 아프니 병원비 걱정에, 더더욱 내 일을 붙잡고 있어야 했다.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일을 계속했다. 시간은 휙휙 지나갔고, 밤늦은 귀가 새벽 같은 출근 속에 '재건축은 언제 하지?' '이사는 언제 가지?' 등등의 생각은 싹 틀 겨를도 없었다.  



아이가 다섯 살 되던 해, 이직을 했다. 아이 떼어놓고 일을 할 바엔 돈이라도 많이 벌자는 마음이었다. 십 년 가까이 해온 '업'을 바꿔 새로운 '업'에 도전했다. 역시 세상은 호락하지 않았다.  오른 연봉만큼 요구되는 책임과 일의 양이 커졌다. 새로운 팀원들과는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합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솔직해 지자. 합이 맞기는커녕 번번이 어긋났다. 계좌에 찍힌 월급을 보고 있자면 '꾹 참고 몇 년만' 싶었지만, 매일 아침 새벽 4시부터 30분 간격으로 눈을 떴다 감을 정도로 '회사 가기 싫어 병'은 깊어졌다. 


어느 날부턴가가 식후 티타임 챙기듯 점심을 먹고 나면 회사 근처 약국에 갔다. 그런 날들을 보내던 중 약사님께서 심각한 목소리로 이러는 거다. "약 대신 큰 병원에 가 보는 건 어떠세요?" 말 그대로 '뭥미?'라는 표정으로 서 있는 나를 보며 선생님은 말을 이어갔다. "매일 이 시간만 되면 소화제 사러 오는 것 아세요? 아무래도 약으로 해결할 일이 아닌 것 같아요." 그 한마디에 먹먹했던 마음에 쨍하고 해가 났다. "고맙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거듭 인사를 하며 약국을 나오다 다시 약국으로 돌아갔다.


"약사님 저, 제 병명이 뭔지 알아요. 그리고 뭘 해야 할지도요. 진작에 알았는데, 모른 척하고 있었나 봐요. 약사님 덕분에 모든 것이 명쾌해 졌어요.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5일간 연차를 내고 다섯 살 아이와 단 둘이 3박 4일 남이섬에 머물렀다. 그리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제 힘든 시기 다 지났는데..." 안타까워하는 선배들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대출이자는 어쩌고, 30평형대 아파트 이사의 꿈은 또 어쩔' 피어나는 걱정들도 죄 무시했다. 나는 그저 <live here, not there>이라는 한 문장에만 매달렸다.


갓 설계사무소를 오픈한 남편에게 "내가 다른 건 못 해 줘도, 1년 치 생활비는 댈게요" 호기롭게 했던 약속도 져버렸다. "여보, 언젠가 찾아올 행복 말고, 나는 오늘 지금 여기서 행복해야겠어. 미안해요. 진짜 미안한데, 일단 내가 살아야겠어요. 경력단절? 그런 건 개나 줘 버리라 그래. 정 안 되면 내가 나를 고용하지 뭐. 그러니 아무 말 말아요. 나는 이제부터 내일이 아닌 오늘을 살기로 했으니까."


to be cou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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