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春期 vs四春期
시작은 출발시간이었다. "몇 시에 나가면 돼?"라는 질문에 아이가 짜증스러운 한숨을 쉬며 "8시" 했다. 도대체 이 맥락 없는 짜증이란. 아침 7시, 눈 뜨자마자 짜증 낼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못 본 척 넘어가려다 결국 한마디 했다. "아침이니까 못 들은 척 넘어가 줄게."
주방으로 돌아와 썰다 만 김치를 마저 썰었다. 기름을 두르고 신김치를 달달 볶다가, 남편이 출장길에 사 온 문어를 작게 잘라 넣고 다시 볶았다. 아침이니까, 그냥 아침이 아닌 11월의 아침이니까 뜨끈한 국물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우려 둔 멸치육수를 한 컵 부었다. 다진 마늘과 어슷썰기 한 대파 한 줌만 넣고 센 불에 화르륵 끓여내면 완성인데, 어느샌가 식탁 앞에 등장한 아이가 툭 한마디 한다.
"7시 30분에는 밥 먹어야 하는데, 아직도 안 됐어?"
(저저저, 저 눔의 자식이. 엄마가 니 친구야? 엄마가 밥 하는 사람이야? 너는 7시에 일어났지, 나는 5시 30분에 일어나서 지금까지 쉴 새 없이 종종거렸어. 그냥 주먹밥 하려다, 갑자기 기온 떨어져 입맛 없을까 봐 국물 하나 만드는 건데 너 진짜 그렇게 밖에...) 머릿속에서는 하고 싶은 말들이 끓어 넘쳤지만 꿀꺽 삼켰다.
"금방 돼. 거의 다 됐어."
식탁을 세팅하고 밥을 펐다. 김치 문어 전골(?)을 메인 메뉴로 아침을 차렸다. 늦었다고 급하다던 아이는 밥을 뜨는 둥 마는 둥. "엄마 차 타고 가도 돼?" 한다. 차를 타고 등교하기로 하니 20여 분의 여유 시간이 생겼다. 아이는 거실에서 나는 주방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집을 나서기 직전 '아!!! 체험학습 보고서.'
"인쇄 안 했어?! 엄마가 인쇄해 준다고 했잖아." 아이의 원망 섞인 말을 못 들은 척, 노트북 전원을 켰다.
그 와중에 보이는 오타. '이 눔의 자식. 그러게 진작 진작 보고서 쓰라고 했어 안 했어. 다 저녁에 급하게 쓰니까 인쇄할 시간이 없었던 거잖아. 시간이 늦어서 저 빨리 자라고 대신 인쇄해 준다고 한 거구만. 고맙다곤 못할 망정...' 불만 가득한 아이 못지않게, 나 역시 원망과 화가 치솟기 시작했다. 참자, 참아. 참아야 하느니라. 전운이 감도는 상황에서 하필이면 초가을 점퍼를 입은 아이가 보였다. 할까 말까 갈등하다 "좀 더 두꺼운 걸로 입지? 기온이 훅 떨어졌어." 했다. 짜증이 묻어나는 아이의 한숨. 결국 나는 "오늘 진짜 이상하다. 그래 말을 말자. 우리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자. 그래야 이 아침이 평온하지."라고 내뱉고 말았다.
운전하는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가 동네 북이지, 아주.' 싶다가도 '그래도 등교하는 아이, 기분 좋게 보내자' 싶었다. 학교 근처 골목에 차를 정차하고 잘 다녀오라 인사를 건넸다. 정적. 아이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차에서 내렸다. 욘석 봐라. 다시 한번 "잘 갔다 와~" 화해의 악수를 건넸다. 반항기 가득한 "응!". 결국 터졌다.
"차에 다시 타. 얼른." 아이는 뚱한 표정으로 다시 차에 탔고, 문이 닫힘과 동시에 참고 참고 참았던 화가 폭풍처럼 쏟아졌다. 누르고 삼켰던 화는 한 번 터지면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쏟아져 나온다. 중간에 멈출 방법이 없다.
"여기는 네 학교 근처고, 너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으로 차 안에서 이야기하는 거야. 학교 마치고 집에서 이야기할까 했는데, 그럴 수가 없어. 오늘 아침 엄마가 정말 여러 번 참았고, 이렇게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상태에서 그냥 묵인하는 것이 널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어. 도대체 엄마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거니? 날이 너무 차서 두꺼운 옷 입어야 할 것 같다는 그런 말도 못 해? (나 어릴 적 울 엄마가 이런 이야기 하시면 제일 싫었는데 결국 하고야 말았다. 나도.) 엄만, 이렇게 기본이 안 되어 있다면 공부?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 학교? 안 가도 된다고 생각해. 가장 기본 적인 것을 배우지 못했는데 공부는 하면 뭐 할 거고, 학교는 다니면 뭐 할 거야. 너도 그렇겠지만 엄마는 소중한 아침을 다 망쳤어. 이렇게 까지 네 기분 내 기분 망쳐가며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할까 망설였는데 그래도 엄마는 해야겠어. 네가 오늘 아침 뭘 잘못했는지 너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도대체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고,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해 볼게. 너도 생각해 봐. 나머진 학교 마치고 오면 이야기하자."
집으로 돌아오며 내내 후회했다. 그냥 등교하게 할 걸. 내가 조금 더 참을 걸. 화난 마음 누르고 눌러 내 아침만 망칠걸. 친정 엄마 생각이 났다. 눈물이 핑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