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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ullmoon Dec 08. 2021

대저택에 살아보나 했었지

곧 다시 만나겠지 <잠시 안녕 몰타>

47박 48일, 몰타 여행을 계획하며 나는 코로나 팬더믹을 잊고 있었다. 올해 초 몰타에 가서 살고 있는 지인이 SNS를 통해 공유하는 몰타 일상의 영향이 컸다. 코로나는 무슨?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마스크 없는 일상. 몰타 인구 70% 이상 백신 접종 완료로 EU 최초 집단면역 국가가 되었다는 소식.  지난여름에는 몰타 정부가 (일부 상황에만 적용되긴 하지만) 야외 공간 마스크 의무를 해제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때문에 몰타에서의 47일이 '코로나 안전지대로의 대피'라는 착각에 빠졌었나 보다.


내 마음속 '잠시 안녕 몰타'가 싹트기 시작한 건, 친정 엄마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였다.

"뉴스 봤나? 주말에 친구들 온다며... 그중에 외국 갔다 온 사람은 없제?"

엄마는 이런 상황에 친구들과 모임을 하는 자식이 못마땅하기 그지없지만 꾹 참고 에둘러 '외국 다녀온 사람 없제'로 물으셨다. 외국 다녀온 사람은 없으며, 나와 만날 두 친구 모두 연구소 소속 연구원으로 누구보다도 코로나에 민감하며 주의하고 있는 이들이라고 설명했다.


(친정 부모님께는 우리의 몰타행을 아직 알리지 않았다.)


엄마와의 전화를 마친 후, 검색창에 다양한 키워드를 넣어 검색을 시작했다. 오미크론. 몰타 코로나 상황. 몰타 병원 진료. 12세 미만 아동 해외여행 등등. 그 와중에 발견한 블로그 하나. 코로나 팬더믹 이전 몰타에 머물게 되었고 약 7개월간 몰타에 머물다가 심각해 지는 코로나 상황에 급하게 한국으로 귀국한 가족의 여행기록이었다. 눈길을 끈 것은 몰타에서 이 가족이 경험한 어린 자녀의 독감 진단 및 처방 과정이었다. 독감 진단에만 1박 2일이 소요되었고 처방받은 타미플루 재고가 없어 약국 여러 곳을 돌다가 결국 며칠 후에야 타미플루를 구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얼마 전 미국에서 돌아온 K가 "한국이 제일 이야. 의료강국 대한민국, 처음으로 느꼈잖아."라는 말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미국에서 백신을 맞고 피 섞인 가래를 토할 정도로 상태가 나빴는데도 응급실 예약을 잡을 수 없어 애를 태웠다고 했다.


'만약... 만에 하나... 몰타에서 내가 혹은 아이가 아프다면???'

겁이 났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이 복잡한 속내를 당장 상의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도 해 봤지 않나, 사회생활. 하고 싶은 말은 산인데 남편이 퇴근할 때 까지 참기로 했다. 대신 몰타 여행 면면을 기록해 놓은 엑셀 파일을 열어 항공권부터 호텔, 숙소 등의 무료 환불 기한을 확인했다. 아뿔싸! 일 났네. 일 났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에어비앤비가 공지해 둔 코로나 관련 환불규정을 꼼꼼하게 읽었다. "가능한 무료 환불 가능한 숙소를 택할 것. 호스트의 환불규정을 잘 살필 것." 그러니까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확인하지 않았던 터였다. 몰타에서 30일을 머물, 남편과 내가 발견하자마자 "꺄악!"하고 괴성을 지르며 물개 박수를 쳤던 바로 그곳, 대저택 숙소의 경우 무료 환불에 해당하지 않았다. (왜 이 중요한 걸 확인하지 않았을까. 숙소의 매력에 취해 놓친 것이 분명하다.)


남편도 나도 반해버렸던 19세기 엔틱가구로 꾸며진 서재 (이미지 출처 : airbnb) 


몰타의 수도인 발레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곳. 내가 찾아낸 숙소는 발레타에 위치한 곳으로, 역사가 오래된 건물에 있는 아파트였다. 아파트라고는 하지만, 서재와 거실, 발레타의 야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넓은 개별 옥상까지 갖춘 타운하우스 느낌이었다. 거기에 <나폴레옹이 리비아로 이동하며 몰타를 지날 당시, 몰타에 남아 있던 프랑스 기사 중 한 명이 살았던 집>이라니. 내 취향은 아니지만 19세기 엔틱가구로 꾸며진 내부도 마음에 들었다. 심지어 게스트 평점이 5.0 만점에 4.97이며 모든 후기에 <극도로 깔끔하다>고 칭찬 일색이었다.


남편이 퇴근하자 나는 외투를 벗고, 손을 씻고, 실내복으로 갈아입는 남편을 쫄쫄 쫓아다니며 나의 변심(잠깐 안녕 몰타)을 고백했다. 더불어 가장 큰 문제인 발레타 숙소의 <환불불가> 규정을 설명했다. 언제나 그렇듯 300만 원을 넘는 (환불이 되지 않을지 모를) 숙박비에 대해 걱정이 산이 나와 달리 남편은 여유가 있었다. "그분도 사람인데 설마 원칙대로 하겠어? 10~20% 정도 제하고 환불해 주겠지." "이제 정말 위드 코로나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야. 그렇게 온몸을 웅크리고 혼자 집콕한다고 해도 안전한 세상이 아니라고." "다음 주까지만 기다려 보자. 오미크론에 대한 동향과 전문가 입장도 좀 살펴보고, 그때 결정해도 늦지 않아."


남편의 설득에 이틀을 보냈다. 12월 3일 마침내 나의 인내는 바닥을 쳤다. 불안은 하늘을 찔렀다. 지극히 현실적인 나는 남편이 말한 숫자들에 괴로웠다. 300만 원의 10%는 30만 원. 20%는 60만 원. '아니, 돈 일이십이 뉘 집 개 이름이야. 아까워, 아까워. 아깝다고~~~' 결국 나는 불금을 즐겨야 할(?) 금요일 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을 다시 설득하기 시작했다.


"여보, 우리 체크인 날짜가 1월 9일 이에요. 그리고 오늘은 12월 3일이고. 당신 말대로 한 주를 더 기다리면 12월 9일이나 10일이 되겠지. 내가 만약 호스트라면 12월 3일은 합리적이지만 12월 9일이나 10일에 환불 가능한지를 타진해 오면 생각이 조금 다를 것 같아. 사실 원칙적으로 환불이 안 된다 되어 있으니 우리는 사정하는 입장이잖아요. 가능한 한 빨리 상황을 설명하고 환불 유무를 물어야 그쪽에서도 결정을 하고, 새로운 게스트를 받지 않겠어요? 아무래도 나는 오늘 호스트에게 연락을 해야 할 것 같아. 만약 몰타를 가게 된다면 그때 새로 집을 찾지 뭐. 설마 우리 세 식구 머물 곳 못 찾겠어?"


그리하여 나는 "그렇지만, 그 저택에 머물 수는 없을 거 아니야. 그 집은..."이라며 안타까워하는 남편을 뒤로한 채 열심히 영작을 시작했다. 처음엔 거창하게 썼다. 

"현재 오미크론의 등장으로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고, 한국 정부 역시 Blablabla~~~ 그리하여 실제 한국 정부의 해외여행 정책이 어찌 변할지도 모르겠고 blablabla~~~"

문제는 영어실력이 충분치 않으니 글은 길어지고 내용은 산만하며 내가 가장 싫어하는 뜬구름 잡기식 글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결국 다 지우고 다시 쓰기 시작했다. Dear Claus라는 말로 시작된 편지는 다음과 같다. 

오미크론의 등장으로 코로나 팬더믹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더 커졌다. 물론 위드 코로나임을 잘 알고 있지만, 11살 아이를 둔 엄마로서 나는 내 아이를 데리고 잠재적인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열심히 준비하고 많이 기대한 몰타 여행이지만, 아쉽게도 여행을 잠정 취소하기로 남편과 나는 결정했다. 당신 숙소의 환불규정을 잘 알고 있지만, 코로나라는 특수상황을 고려해 페널티 없이 환불이 가능한지 청하고 싶다.


모든 영문 메일 마지막에 습관적으로 쓰는 나만의 엔딩 문장이 있다. I am looking forward to hearing from you. 미국에 잠시 머물던 시절, 저 문장을 처음 만났던 날이 생생하다. 당신으로부터 듣기를 학수고대 한다니. 정중하지만 발랄하고, 센스있는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저 문장을 즐겨 쓴다. 사실 대체가능한 다양한 문장을 떠 올릴 정도의 영어실력이 아닌 탓도 있다.


헌데 무언가 특별한, 한 끗 다른 엔딩을 쓰고 싶었다. 전액환불을 청하는 입장이니, 보다 그럴싸한 엔딩을 찾고 싶었다. 크리스마스도 다가오고, 12월이니까 라는 생각에 다소 유치하지만 Please become my christmas present라고 썼다. 다시 christmas present를 sata claus로 고쳤다. 고쳐놓고 보니 세상에~~~ 에어비앤비에서 알려준 호스트의 이름이 Claus가 아닌가. '느낌이 좋아. 느낌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내가 이리 간이 작다. 300만 원에 진심으로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전송 버튼을 눌렀다.


약 12시간 후 호스트인 Claus로부터 회신이 왔다. 

"I do understand. Corona has changed the world. From side I will refund." 

그는 일사천리로 full refund을 진행해 주었다. 분명 뛸 듯이 기뻐야 정상인데, 소중한 무언가를 잃은 듯 주말내내 마음이 휑했다. 그리고 습관처럼 에어비앤비에 접속해 나의 저택이, 발레타 우리 집이 여전히 비어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아파트 입구 문을 열면 마주하게 되었을 모습. 저 소파에 앉아 가족사진을 찍어야지 했는데... (이미지 출처 : airbnb)


어제 확인해 보니, 누군가 그 집을 예약 했다. 출국 하루 전까지 전액 환불이 가능한 항공권은 아직 취소하지 않았다. 남편이 요청이었다. "조금 더 지켜보자"는 남편의 모습이 내 눈엔 '아쉬움의 끌을 거머쥐고' 있다 여겨졌다. 그래, 그 날들만큼이라도 행복하다면야. 사실 걱정은 남편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다. 남편이 마지막 까지 놓치 않은 티켓을, 바톤터치 하듯 이어받아 휘리릭 가방을 꾸려 비행기에 오르고 싶은 이 또 다른 마음은 도대체 뭐람. 


이렇게 나의 47박 48일 몰타 여행은 시작도 전에 끝나버렸다...라고 쓰려니 정말 그렇게 되어 버릴 것 같아, '다시 만날 거야, 몰타'라고 쓴다. 잠시 안녕! 발레타의 잠시 우리집, 멋진 대저택. 


개별 발코니에서 보이는 발레타 풍경. 여기서 매일매일 1일 1 피크닉을 계획했었다. (이미지 출처 : airbn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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