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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ullmoon Jan 09. 2022

강요야? 추천이야?

나를 빼곡히 알게 되는 시간 @제주여행

자주 화가 나고

종종 화내지만

바로 후회하며 

가끔 사과한다

제주에서 가고픈 곳을 서칭하고 정리하다 공책 한켠에 급하게 써 둔 문장. 그제야 왜 제주에 왔는지, 무얼 위해 왔는지, 이 까닭 없이 긴 여행에 대한 이유를 발견했다. 지쳐있었던 거다. 티격태격, 옥신각신, 시시비비, 아웅다웅 등등의 반복. 


아, 들린다.  

"영아, 그런 게 사는 거지. 남들도 다 그러고 살어. 어떻게 매일이 좋기만 허냐." 울 엄마 말씀 귀에 선하다. 그렇지. 그런 게 사는 거지.  소란하게 티격태격하다가도, 주말드라마 보며 금세 한편 되어 "저저저 저 못된 것." 한편 먹는 게 가족이지. 알지. 안다, 나도.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디저트 만들기와 요리책 보기를 즐기며, 만화책에 심취해 있고, 글쓰기보다 그림 그리기가 더 편한 "엄마 내가 엄청 좋은 노래를 들었는데"라며 양희은 님의 <엄마가 딸에게>를 들려주는 아이. 그랬던 쮸가 지난해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살가운 면모는 여전한데 청양고추 같은 삐딱선이 더해졌다. 하루에도 서너 번 갑분싸 나를 도발한다. 


툭하면 짜증이요, 뭐라고만 하면 "안 해, 싫은데, 내가 왜?"가 자동이다. 남편은 사춘기라 했고, 친정엄만 "너도 저 만할 때 그랬어." 하셨지만 그런 아이와 매일 붙어지내는 나는 황당했다. 고백하자면 사실 화가 났다. '사춘기가 대수야? 니가 사춘기면 나도 사춘기(사십 대)다.' '한번 붙어보자 이거지'가 솔직한 심정. 


쮸의 한 마디에 나는 자주 부르르 끓어올랐다. 두 번은 참지 않아. (실은 나의 그릇이 거기까지.) 한 번은 참고 한 번은 화를 냈다. 아이는 자주 말로 주고 되로 받았지만, 되로 돌려준 나 역시 지치고 괴롭기는 마찬가지. 해야 할 일 모두 미루고 침대에 누웠으면 나란 인간의 보잘것없는 됨됨이에 쓸쓸해졌다. 


열두 살과 싸우는 마흔네 살 이라니.

'헛살았구나. 아직도 사람이 덜 됐어.' 아이의 삐딱선을 몽글하게 품지 못하고 받아친 것을 반성했다. 하지만 반성은 반성일 뿐, 자고 일어나면 같은 날의 반복이었다. 비폭력대화에 대한 책을 사서 앞부분만 읽다 말다. 큰맘 먹고 꾹 참고 부드럽게 대응해도 돌아오는 건 또 다른 삐딱선이었다. 그럼 나는 '엄마가 봉이야? 사춘기가 벼슬이야?' 속으로 씩씩거리다 결국 아이와 맞짱을 떴다. 슬프고 미안한 건 아직은 내가 이긴다는 거.


강요야? 추천이야? 

일상이 되어버린 티격태격은 제주여행 2일 차에 다시 등장했다. 승마강습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단체 강습이야? 개인 레슨? 안 할래. 1:1 레슨은 싫어." 

이때부터 속에서는 입으로 꺼내놓지 못한 말들이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코로나 때문에 단체 강습이 없데. 그리고 단체 강습이 있다 해도, 일정상 시간 맞추기 쉽지 않아."

"싫어. 안 할래. 단체 강습 아니면 안 해."

"여기 와서 사진 좀 봐봐. 여긴 한라산 자락에 있는 승마장이라 이렇게 숲길에서 외승도 한데. 정말 멋지지?"


"엄마, 강요야? 추천이야? 사실은 엄마가 하고 싶은 거 아냐? 엄마가 하고 싶은 거 나한테 강요하는 거 아니냐고."


사려 깊은 엄마, 너그러운 엄마, 어른스러운 엄마라는 워너비 엄마상을 내던지는 순간 나의 입은 나의 것이 아니요 나의 머리는 나의 머리가 아니다. 줄줄줄 참았던 생각들이 입으로 쏟아져 나오고, 이 상태에 이르면 내 의지로 멈추기란 불가능하다. 그저, 가출한 머리와 입이 제 자리로 돌아오길 기다릴 수밖에. 


시인이 내게 들려준 말

여행가방에 습관처럼 책을 챙겨 온다. 앞 장만 들썩이다 그대로 집으로 모셔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허영기 가득한 습관은 멈출 수가 없다. 이번에 챙겨 온 책 중엔 이원하 시인의 시집이 있다. 하루에 한 편씩 꼭 읽어야지 작정하곤, 제주에서의 첫날 첫 시를 읽었다. 이래서 시를 읽어야 하나? 아이와 한바탕 한 후 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당근밭으로 난 창틀에 놓아둔 시집을 가져와 해당 부분을 급하게 찾아 다시 읽었다.


혼자 살면서 나를 빼곡히 알게 되었어요

화가의 기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매일 큰 그림을 그리거든요


혼자 살면서 나를 빼곡히 알게 되었어요라는 시인의 말이, 내겐 제주에서 나를 빼곡히 알게 되었어요라고 읽혔다. 내 마음의 열기는 벌써 식었지만, 아이의 열기가 식기를 기다렸다. 솔직하게 말해야지. 


네 말이 맞다고. 승마는 엄마의 꿈이고 엄마가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것 중 하나라고. 이것이 추천인지 강요인진 나도 모르겠다고. 나를 가장 화나게 했던 건, 너의 말투 너의 말이 가진 날카로움이라고. 그것을 네가 내게 배웠지 싶어 속상하고, 그것을 가볍게 툭 받아내질 못하고 '붙어보자' 기 쓰고 덤벼든 나의 치졸함을 후회한다고.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라는 이원하 시인의 시는 다음과 같이 끝난다.


제주에는 웃을 일이 참 많아요

현상 수배범이라면 살기 힘든 곳이죠

웃음소리 때문에 바로 눈에 뜨일 테니깐요


제주에 온 이유가 여기 있었네. 나는 모르고 시인은 알았던 이유. 아마도 웃을 일 많으려고 제주에 왔나 보다. 몇 분 후, 쮸가 "엄마 아까는 내가 잘못했어요" 했다. 선수를 놓쳤다. 


"내가 강요냐고 물어본 건, 저번에 엄마랑 봤던 TV 프로그램에서... 뭐였더라? 대리... 대리만족. 그런 이야기를 본 기억이 나서, 그래서 그랬어."


이 때다 싶어, 내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배우고 싶었으나 배울 수 없었던 승마가 귀족 스포츠로 인식되던(사실 지금도 좀 그렇긴 하지만) 나의 어릴 적 이야기, 미국에서 집 바로 뒤에 승마장이 있었으나 배우지 않았던 일, 그래서 두고두고 아쉬워하고 후회하고 있다는 것. 제주 승마장이 가진 최적의 환경 등등. 열심히 이야기하다 보니 쮸가 하품을 한다. 그래 여기는 제주니까. 그래 시인이 내게 알려줬으니까.


기억할 것! 쮸에게 내 생각을 전할 때엔, 최대한 짧게 하고픈 말의 반의 반의 반만 할 것.  


P.S. 제주의 기운인지 현재 22시간 29분째 평화 지속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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