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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ullmoon Jan 08. 2022

제주 살아요, 잠시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제주에살아요

#구좌읍에살아요


마음이 바닥까지 가라앉은 12월을 보냈다. 

"네가 참 배가 불렀구나" 모모 양은 말했지만, 배 부른 것과 가라앉은 마음에 무슨 연관이 있다고.  이유도 모른 채 마음이 가라앉은 상태에선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곱게 들리지 않는다.  


"제주에 가면 엄마 달라질 거야!" 아이에게 말했지만, 말도 안 되는 말이란 건 이미 알고 있다. 사는 곳 달라진다고 사람까지 달라진다면 누군들 떠나지 않을까. 

짐 싸기 전 그 폭풍의 중심을 담았어야 했는데... 다 싸버린 짐은 저리 별일 없었다는 듯 태평한 모습이네.


하기 싫은 숙제를 하듯, 꾸역꾸역  제주여행 짐을 쌌다. 마음 상태가 신통치 않아 여행 준비마저 흥이 나지 않았다. 


목포발 제주행 여객선 1월 6일, 01시 출발 

5일에 목포로 출발해야 하건만, 5일 새벽 3시 59분이 되어서야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주방 및 거실 청소, 팬트리와 냉장고 정리, 재활용 쓰레기 분리배출, 세탁함 빨래 돌리고 널기 등등에 약 4시간이 흘렀다. 아침식사 준비 후 본격적으로 짐 싸기에 돌입하며 약 2시간 후면 목포를 향해 출발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여행 처음 해 봄? T.T) 출발 예정시간은 오전 11시.


오전 11시는 진작에 지났다. 12시도 훌쩍. 급기야 "쮸~ 우리 그냥 가지 말까?" 했다. 약 한 달 간의 여행은 여행이 아닌 이사에 가까움을, 나는 왜 잊고 말았던 걸까. 


출발 1월 5일, 14시 15분

여행시작도 전에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그나마 아이가 스스로 점심을 해결한 것이 다행. 쉬지 않고 달렸다. 왜 이 고생을 하며 제주에 가는 걸까? 생각했다. 군산휴게소에서 한번 쉬었다. 아이는 가는 내내 다양한 음악을 들려줬는데, 이무진의 신호등을 가장 많이 들었다. 가사가 꼭 내 마음 같아 픽 웃음이 나왔다.  


목포입성 1월 5일, 19시 15분 

쮸가 노래 부르던 낙지탕탕이를 먹고, 도보거리의 빵집에서 목포 명물이라는 새우크림 바게트도 샀다. 떠나는 순간까지 가라앉았던 마음은 세상에나 어느새 두둥실 떠오르고 있다. 목포 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 최대 최고 초호화 크루즈형 여객선이라 홍보하는 퀸제누비아를 보는 순간 '어라? 내 마음, 이렇게 쉬운 거였니?' 4주간 가라앉았던 마음 따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처음 타보는 크루즈에 신난 아이와 나는 새벽 2시까지 놀다가 잠이 들었다. 


목포의 첫인상은 독야청청(?). 


코로나 시국에 평일 밤이라 시장통이 적막했다. 쮸는 걷는 내내 무섭다고~


차량 선적 중인 여객선. 쮸가 "엄마 저게 배야?"라고 물었는데 주차장에서 힐끗 보곤 "설마, 아무리 배라도 배가 저리 크려고."라고 답했다. 설마가 설마였다.
여객선 갑판(?)에서 내려다본 풍경. 저 다리(?)를 건너 차량을 배 안으로 실을 수 있었다.



제주항 도착 1월 6일, 6시

차를 운전해서 여객선 밖으로 나오니 어둠이 한창이다. 다행히 제주의 어둠에는 내가 좀 익숙하지. 서두르면 일출을 볼 수 있겠다 싶어, 목적지를 일출 명소라는 광치기 해변으로 정했다. 네이버에서 알려준 일출 예상시간은 7시 48분이었건만, 7시 전 후로 이미 땅과 하늘의 명도차가 나기 시작했다.  숙소 체크인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 상태라 일출을 놓쳤어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해변을 향해 달렸다. 도착했을 때엔 이미 해가 뜨기 시작한 후였지만 충분히,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간 만났던 제주의 해변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광치기 해변에서의 감동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구좌에 머무르는 동안 매일 새벽 일출을 보고 싶은데, 아침잠 많은 쮸 녀석, 가히 비협조적이다. 





구좌읍 입성 1월 6일, 9시 30분

숙소 체크 인 후, 홀로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내가 숙소 운이 좋은 편이다. 구좌에서 핫하다는 곳은 대부분 도보거리에 있다. 신기한(?) 인연으로 제주 숙소를 소개해 준 요요무문 카페에 갔으나 사장님은 뵐 수 없었다. 대신 요요무문의 대표 음료 당근주스를 사 왔다. 집에 오자마자 마셨는데 세상에 '당근주스가 이렇게 맛난 거였어?'  


숙소 뒤 당근밭에서는 당근을 박스 포장하느라 오후 내내 왁자지껄. 당근주스에 심취한 나는 구좌에 머무는 동안 하루 2번 당근주스를 먹을 경우 소요비용을 가늠해 보다가, 남편이 알면 기절할(?) 엉뚱한 발상을 하기 시작했다. 아... 사고만 싶어라, ㅎㄹ



P.S. 요리유튜버 재경언니의 조언을 참고하여, 맛난 당근쥬스는 남이 짜 줄 때 제일 맛있음을 상기할 수 있었다. 앞으로 매일 당근쥬스 사러 카페에 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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