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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ullmoon Feb 08. 2022

여전히 여전해서 고맙습니다

우리의 제주 = 유람위드북스

#여전히

#여전해서

#고맙습니다


01

남편 합류 후, 내내 바빴다.

제주 동쪽에서 우도로, 우도에서 남원읍으로, 다시 한라산 자락으로. 지금은 여행의 시작이었던 제주항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향 같은(?) 제주 서쪽 한경면에 잠시 들렀다.


02

아이와 내게 

<제주=유람위드북스>일 만큼 제주에 올 때면 늘 그곳에 갔다.

우리의 숙소는 항상 제주시 한경면 조수리였고 아이는 거의 매일 폐교된 초등학교의 담장을 따라 유람위드북스로 등교했다.


2020년 12월, 약 7주간 제주에서의 파견근무(?)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 유람위드북스 사장님께 인사를 하러 갔다. 


"내년 겨울에 다시 뵐게요."

"저... 아마 그때에는 유람이 이곳에 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날 밤, 나와 아이와 유람의 마스코트 람이(고양이)와 사장님은 유람의 벽에 스크린을 걸고 영화를 봤다. 사장님 덕분에 우리는 그렇게 유람과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었다. 2021년 어느 날 유람위드북스 SNS를 통해 이전 소식을 들었다. 신축건물. 더 커진 규모. 하지만 사진 속 유람위드북스는 아이와 내가 알던 그곳은 아니었다.


03

제주항으로 가기 전 1박을 한경면으로 결정한 건, 오롯이 유람위드북스에 가기 위해서였다. 새로운 유람위드북스로 가기 전, 예전 유람 주변을 걸었다. 2년 사이 넓은 도로가 생기고, 몇몇 집들이 사라지고, 2층짜리 건물이 들어섰더라.


무엇보다 유람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담쟁이로 뒤덮인 건물 정면을 "새 옷 샀어요" 느낌 풀풀 나게 페인트칠하며 재정비한 것이 눈에 띄었다. 취향의 문제일 테지만, 그 자리, 그 건물, 그 시간이 가진 나이테 같은 것이 사라진 느낌이라 서운했다.


04

새로운 유람위드북스로 갔다. 새 집 냄새 폴폴 나는 건물에 예전과는 달리 주차장도 널찍했다. 유람의 인기를 입증하듯 주차장엔 차들이 가득했다.

왠지 스타가 되어버린 옛 친구를 만난 느낌이랄까. 조금은 낯설고 약간은 어색한 그런 기분. 그런데 사장님께서 나와 은쮸를 보자마자 반색하며 반겨주셨다. 람이를 좋아하던 은쮸를 기억하시곤 람이가 잠들어 있는 책장 위치도 알려주셨다. 저녁 7시 영업을 종료하는 시간까지 우리는 유람에 머물렀다.


"이렇게 손님이 없을 때가 많지 않아서요. 그때처럼 계단에서 사진 한 장 찍어 드릴까요?"


사장님 덕분에 은쮸와 람이와 새로워진 유람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사장님도 함께 찍어요." 사장님과도 사진을 남겼다. 이날 나는 유람의 방명록에 처음으로 글을 남겼다.


"여전히 여전해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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