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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Aug 26. 2023

재미 없는 책을 올바르게 덮는 방법

버지니아 울프, 너새니얼 호손

어디선가 들은 얘기인데 유대인들은 아이가 읽기를 배우기 시작할 때 성경 구절이 새겨진 석판에 꿀을 바르고 구절을 읽으며 이를 핥아 먹도록 시킨다고 한다. 읽기라는 행위와 달콤함이라는 감각적 자극을 연결시켜 뇌에 "읽기=달콤함" 이라는 기억을 심어주는 것이다. 읽기는 읽기고 꿀은 꿀이니 사실은 완전 별개지만, 우리의 뇌는 어떤 행위에 있어 대개 그 당시의 정황이나 분위기, 감각적인 자극을 함께 기억한다. 진짜로 술 자체가 좋아서라기보다는 함께했던 사람들과 나눴던 이야기, 혹은 분위기가 좋았어서 술(정확히는 술자리)을 좋아하게 되고, 만두를 먹고 심하게 체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후 만두만 봐도 식욕이 떨어지는 것 등이 예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애들이 아니니 이제와서 진짜 꿀을 책에 바를 필요는 없다. 읽기에 있어 우리의 꿀은 '재미'다. 앞서 수차례 강조했듯, 재미가 있어야 일단 진득하게 읽고 끝장을 보게 된다. 그 재미는 탄탄한 서사에 있을 수도, 뒷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에 있을 수도, 사이다스런 결말에 있을 수도, 품격있는 표현과 아름다운 문장에 있을 수도, 완독 여부에 있을 수도 있지만 뭐가 됐든 "읽기=재미" 라는 기억이 일단 우리 뇌에 심어지고 나면 그 때부터는 읽는 행위 자체에 대한 진입 장벽은 훨씬 낮아진다.


그런데 가끔, 정말 지독하게 안읽히는 책을 만날 때도 있다. 물론, 끔찍할 정도로 읽히지 않는 책을 억지로 눌러 참아가며 읽을 필요는 전혀 없다. 하지만 '왜 안읽히는지'에 대한 파악은 반드시 해야한다. 읽히지 않는 책을 꾸역꾸역 읽어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 부분을 명확히 정리하는 것이 자기계발에 있어 훨씬 더 유용한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안 읽힌다’라 하면 대개는 문해력이 부족한게 원인이라 생각하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고 혹은 반대로 문해력이 부족해서 읽히지 않는 것을 그저 취향의 문제로 뭉개버리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뭐가됐든 ‘그냥 재미가 없어서’로 쉬이 결론짓고 끝내는 습관은 독서 생활의 지속에 있어 그닥 좋지 않다.


내 경우는 버지니아 울프와 너새니얼 호손의 작품들이 그렇다. 일단 버지니아 울프는 기승전결 등을 따르지 않고 그저 본인의 의식이 흐르는대로 글을 쓴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가는 속도가 사람마다 다를텐데 나는 버지니아 울프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늘상 버겁다. 기를 쓰고 쫓아가다가도 매번 어디선가 놓치게 되고 그 간극은 점점 더 벌어져서 어느 시점에는 완전히 포기하게 되기도 한다. 어떤 글들은 하나의 장면을 아주 다각적으로 묘사하는데 치중하느라 줄거리랄 게 딱히 없기도 하고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들도 과거와 현재를 마구 넘나들면서 줌인과 줌아웃을 바삐 오가기에 여전히 나에게 울프는 너무 어려운 존재다.


울프의 작품들은 내 눈에는 너무나 인스타용 컨텐츠 같아 보인다. 폄하의 의미는 아니고 스틸 컷 같은 하나의 장면에 아주 깊이 몰입하는 것, 심지어 그 장면에 별 의미가 없을지라도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을 어떻게든 정성스럽게 박제해두는 것 등에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 박제된 장면 안에서 결단코 시간은 흐르지 않기에 이들은 모두 개개의 파편에 가깝다. 이어붙이려 한다면야 드문드문 가능하긴 하겠지만 그 연결 부위는 절대 매끈할 수 없다. 본래 현실에는 매끈한 일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인스타스러운’ 이런 특성이 도리어 더 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울프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나는 현실과 인스타 사이 그 중간 어디즈음에서 헤메는 신세가 된다.


한편 호손은 인간의 어두운 부분에 주목해 재앙, 죄악, 비밀 같은 것을 주요 소재로 글을 쓴다. 종교적인 바탕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호손의 단편들은 다들 괴기스럽고 기묘한데 귀신이나 살인자가 대놓고 나오는 류의 호러나 스릴러가 아니라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 더러운 찜찜함을 안긴다. 명쾌한 부분이 없어 읽는 내내 정서적으로 엄청나게 사람을 시달리게 한다. 그 와중에 문장들까지 장황하고 화려해 아무리 해도 적응이 안되었다. 너무 시달려서인지 뭐 때문인지 모를 일이지만 나는 호손의 단편들을 읽으며 몇번이나 굉장히 뜬금없는 허기를 느꼈다.


누구나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그것에 마법같은 힘을 입히는 일은 아주 소수만이 할 수 있다. 그런 글을 읽지 못한다고 자괴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울프와 호손은 그런 사람들이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 뿐이다.


‘문제는 내 문해력이 아니고 어떤 글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나와 잘 맞지 않는 것 뿐’이라는 확신을 가지려면 일단 내 읽기 역량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는 것은 어쩌면 자존감의 영역까지 닿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러저한 글은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잘 못 읽는 사람’이라는 현재 상태를 받아들일 것, 남들이 다 좋다는 작품일지언정 쫄지 않고 ‘나에게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인해 별로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그리고 바로 그 ‘이러저러한 이유’에 있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목표를 세우는 것, 모두 자존감을 가꾸는 방향으로의 자기계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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