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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Aug 22. 2023

완독의 기쁨과 함정, 해결책은 "인터벌 독서법"

오스카 와일드, <캔터빌의 유령>

만약 양육자로서, 내 아이의 문해력을 위해 엄마 혹은 아빠인 내가 먼저 문해력을 키워야겠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아이들에게 친숙한 작품을 우선 순위에 올릴 수도 있다. 아예 아이들과 같이 읽을 수 있는 작품으로 읽을 거리를 고르는 것도 좋다. 아이와 같은 이야기를 읽으면 그 이야기를 소재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의미있는 질문을 던져줄 때 큰 도움이 된다. 이런 측면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을 물망에 올려볼 수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모든 작품이 아이들과 함께 읽기 적절하다곤 할 수 없지만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왕자의 동상과 남쪽 나라로 떠나지못한 제비가 살신성인의 자세로 도시의 빈민들을 돕는 <행복한 왕자>를 비롯한 여러 작품은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에 꽤나 적절하다.


오스카 와일드의 <캔터빌의 유령> 또한 어린이 뮤지컬로 연출되어 무대에 곧잘 오르는 작품이다. 이 이야기는 정통 고딕 공포물의 탈을 쓰고 있지만 'PPL이야?' 싶게 실소가 터지는 장면이 여럿 나오는 것을 비롯하여 정말이지 너무너무 웃기다. 이 이야기는 유령의 집이라며 모두가 꺼려하는 캔터빌 저택으로 미국 국적의 오티스 가족이 이사를 오면서 시작된다. 집에 들어선 가족들이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벽난로 옆의 피 얼룩. 저택의 늙은 가정부는 그 얼룩은 캔터빌 경에게 끔찍하게 살해 당한 아내의 핏자국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며 으스스한 분위기를 더하지만 오티스 씨의 첫째 아들 워싱턴은 ‘핑거튼의 챔피언 얼룩 지우개’와 ‘패러건 세제’만 있으면 못 지울 것은 세상에 없다며 오래된 피 얼룩을 말끔하게 지운다. 가족들을 겁주기 위해 온 몸에 사슬을 감고 나타난 유령에게 오티스 씨는 사슬이 삐걱거리는게 기름칠이 필요할 것 같다며 ‘태머니라이징선 윤활유’를 건네고, 기괴한 유령의 웃음 소리를 들은 오티스 부인은 유령에게 '닥터도벨팅크'를 권한다. 이 가족에게는 그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는다. 매번 그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상업적인 제품이 있는 것이다!


단편은 대개 묶음으로 만나게 되고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들 또한 그렇다.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한 권의 책에 꽉 들어차 있는데 각각이 다 흥미로워서 하나하나 읽다보면 제법 많은 페이지가 후루룩 지나가고 어느새 완독을 하게 된다. 앞서 문해력을 위해서는 정독이 중요한 것도, 다독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했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일에는 '완독의 기쁨' 또한 큰 포션을 차지한다. 몇 페이지를 읽어내는 것도 버거웠던 내가, 맛깔스런 이야기에 빠져 하나 둘 읽다 보니 어느새 100 페이지도 넘는 책을 끝까지 읽었네? 하는 경험은 앞으로 지속해나갈 읽기 생활에 있어 꽤나 의미있는 일이다.


완독에 있어, 앉은 자리에서 책의 첫 장부터 끝장까지를 한 번에 몽땅 읽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 몇날 며칠이 걸리든, 몇번을 끊어 읽든 그런 것에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좋다. 나 또한 한 번에 한 권을 모두 읽어내는 일은 드물고 주로 이야기 단위로 끊어 읽는다. 이렇게 하면 완독의 부담은 덜어지면서도 읽기 행위 자체에는 나름의 완결성이 생긴다. 뭐가 됐든 한 권의 책에 있어 중도하차 하지 않고 전부 읽었다는 것이 완독의 포인트이고 그 완독이 '재미 없는데 억지로 참고 읽었어'가 아니라 '재미 있어서 계속 읽다보니 어느새 책이 끝났네? 중간중간 빵 터지기까지 했네?' 가 될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다만 완독에만 집착하다보면 분량이 적고 쉬운 책만 줄줄이 읽게 될 수도 있다. 이 부분은 자칫 다독가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기도 하다. 문해력은 의외로 근력 운동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근력 운동에 있어 가벼운 무게를 꾸준히 드는 것과 무게를 점점 올리는 것은 효과가 다르다. 가벼운 무게를 꾸준히 드는 것은 이미 있는 근육을 단련시켜 더 탄탄해지게 하지만 근 두께 자체를 올리지는 못한다. 내 몸 상태에 맞지 않는 고중량에 도전했다가는 부상을 입게 될 수도 있어 주의해야하지만 그럼에도 근 두께를 키우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점에 반드시 적절하게 증량을 해줘야 한다. 그렇다고 계속 고중량만 치는 것도 근육이 쉽게 지칠 수 있어 그닥 바람직하지는 않다.


문해력도 마찬가지다. 읽는데에 재미를 어느 정도 붙였다면 이후에는 다양한 난이도의 책을 고루 섞어 읽는 단계로 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다섯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하면 세 권은 내 수준에 잘 맞고 재미있는 책, 한 권은 앞서 읽어본 세 권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더 어려운 책, 또 한 권은 이전에 보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장르(비문학 포함)나 몰랐던 작가의 책 등으로 구성하는 식이다. 이번 책을 읽느라 머리에 쥐가 날 뻔 했으니 다음 책은 즐겁고 쉬운 책으로! 이번 책은 수월하고 편하게 보았으니 다음 책은 좀 더 빡세게! 하는 식의 '인터벌 독서법'이다. 책을 읽을 때 언제나 3:1:1로 꼭 맞추라는 건 아니고 그럴 수도 없지만, 중요한 것은 '1의 두 자리'를 비워둬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독서 생활을 3으로 채운다면 (아무것도 읽지 않는 것보다야 백번 낫기는 하나) 문해력은 제자리 걸음을 하게될 수도 있다. 특히 3:1:1 중의 마지막 1에 해당하는 '이전에 보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장르나 몰랐던 작가의 책'에 도전할 때는 완독의 부담을 조금 내려놓고, '맛보기'의 느낌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완독하면 참 좋겠지만 그게 안된다고 해도 '어찌 첫 술에 배부르랴?' 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읽어보자. 포기하지 않고 읽고 읽고 또 읽다보면 언젠가는 이 1이 3에 포함되는 날이 반드시 온다.


책을 읽는다는 것의 최종 목표는 언제나 책을 읽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문해력이 어느 정도 올랐으니 이제 책은 안녕~이 아니라 평생 읽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궁극적인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 평생 읽는다는 것은 평생을 책에만 빠져 본업도 내팽개치고 책벌레처럼 살라는게 아니라, 내가 필요할 때 읽을 수 있고, 읽은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현생에 치여 비록 읽기 생활을 드문드문 이어가더라도 말이다.


지금부터 20년 후에 인기있을 직업의 70%는 아직 존재하지 않고 있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여러 측면에서 불확실한 부분이 너무 많은 세상이 된지라, 지금 배우는 지식 그 자체는 20년 후의 미래에 직접적으로 활용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면 공부할 필요가 없겠네요!"는 절대 아니다. 그보다 우리는 평생을 공부하며 살아야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쪽에 더 가깝다. 안됐지만 현실이 그렇다. 평생 공부할 필요를 느끼고 계속해 나간다는 마음과 함께, 새로운 것을 체득할 수 있는 기본적인 역량을 갖춘 사람의 가치가 더 빛을 발할 수 밖에 없는 시대다. 뭐가 될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새로운 것 역시도 읽고 생각하고 쓰고 말하면서 배울 것이다. 빵빵한 문해력을 바탕으로 책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캐내어 내 것으로 체득시킬 수 있다면, 미래에 무엇을 공부해야하든 별 걱정은 필요 없을 것 같다.


덧붙이는 말.

미래에는 더 쉽고 편하면서도 더 효과적인 학습 방법이 나오지않겠냐고? 인간의 뇌 구조가 물리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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