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워홀일기01
삶이란 예측하기 힘든 것이라고 알고 있긴 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운 좋게 서른이 넘어 워킹홀리데이를 왔는데,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과 일본의 사이가 영 좋지 않게 되었습니다. 운이 좋은 것일까요, 나쁜 것일까요.
나중으로 미뤄두었던 도쿄워홀일기를 이것 역시 삶과 같은 것이겠지라며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삶도 있구나’라는 가벼운 시선으로 쓰윽 읽어주시기를 바라봅니다.
이것은 휴가인가 행군인가
직장인이 되어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는 휴가를 받으면 항상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 짧은 휴가기간 동안 다녀오기 적당한 거리, 그리고 덕질로 배운 일본어로 회화도 가능했기에..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사고 싶은걸 사는 것은 무척 좋았다.
그런데 회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직장인의 휴가가 그렇듯 짧은 기간과 무더운 여름에만 떠나야 한다는 것이 아쉬웠다.
봄에는 벚꽃놀이도 가고, 가을의 축제를 즐긴다거나, 가장 좋아하는 일드 <고독한 미식가>의 맛집을 모조리 찾아가 보거나 등등,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언제나 빠듯하고 고된 일정 탓에 여행이 아니라 행군을 온건가 싶을 때도 있었다.
그 때문에 머릿속엔 1년을 머물며 여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 생각이 일을 하는 내내 따라다녔다.
여행에 필요한 경비도 현지에서 일을 해서 벌 수도 있고, 해외에서 장기간 살아본다는 것이 어딘가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었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되었다.
나중에 후회하는 건 아닐까..?
현생, 아니 혐생을 살다 보면 버킷리스트가 쌓이기만 할 뿐 실제로 이뤄내기는 어렵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죽기 전에 하나는 해볼 수는 있는 걸까?’로 바뀌어간다.
오랜 시간 머릿속을 맴돌았던 일본으로의 워킹홀리데이도 그랬다. 나의 한 몸을 먹이고 살기 바쁘다 보니 어느새 만 서른이 되었다. 생일까지도 몇 달 남지 않아 워킹홀리데이에 지원이 가능한 나이로는 최고령이 되었다.
더구나 일본의 경우엔 몇 년 전 생겼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지원 가능한 나이도 만 스물다섯으로 낮추었다. 그래서 '이젠 지원자격 조차 안 되겠네..'라며 버킷리스트에서 빼려다가 ‘그래도 혹시나...’하는 마음이 들어 구글링을 하기 시작했다.
드물지만, 만 서른에 합격한 사람이 있긴 했다. 비자 발급 요건 중에 부득이한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엔 만 서른 살까지 지원해도 된다는 조건이 있긴 했지만, 부득이한 사정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나와있진 않았다.
나와 동일한 조건의 합격 사례는 딱 한건(실제로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그 포스팅을 읽고는 '나중에 도전 조차 하지 않은걸 후회 할바엔..’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조만간 회사도 그만둘 거라 시간도 많겠다, 지원하는데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니 어찌 보면 손해 볼 게 없었다.
그리고 합격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여행으로는 갈 수 있으니까.
워킹홀리데이에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들자마자 곧장 필요한 서류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블로그를 검색해 보니 일본 워킹홀리데이의 합격을 결정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제출하는 서류에 문제가 없다면) 사유서와 계획서 같아 보였다.
먼저 사유서는 '왜 나는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야 하는가?'와 '뒤늦게 지원하게 된 부득이한 사정이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일본에 가서 불미스러운 일을 하지 않을 성실한 사람이다'라는 내용을 적어 서류를 심사할 사람을 설득해야 할 것 같았다.
내용을 대략적으로 해석하면, 어릴 때부터 일본의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았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해서 일본의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아서 일본어를 독학으로 공부해왔고, 여행도 자주 갔다. 그러나 지원이 늦어진 이유는 그동안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있었고, 아무런 준비 없이 워킹홀리데이를 갈 수는 없어서였다. 만약 뽑아준다면 그동안 한국에서 일을 한 경험을 살려 영상과 글을 통해 일본의 문화를 소개할 것이다. 그리고 워킹홀리데이 기간 종료 후엔 반드시 한국으로 돌아가 일본에서의 경험을 책과 디자인으로 풀어낼 것이고, 원래 일했던 분야로 재취업을 할 생각이다. 그러니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워킹홀리데이를 허락해달라.
나의 워홀의 목적인 일본에 오랫동안 머물며 여행을 하고 싶은 것과 디자이너로 일을 한 경력이 있어서 일본에서 불법적인 일을 할 사람이 아니며, 부득이한 사정으로 늦어졌지만 기간 종료 후엔 반/드/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반복적으로 넣었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워홀이 될 것이라는 것도 강조했다.
계획서는 합격 포스팅을 찾아보니 대부분 주요 대도시(도쿄, 나고야, 오사카, 후쿠오카, 홋카이도)에 두세 달씩 머무르며 이동하는 경로였다(실제로 하기는 힘든 계획..).
워킹홀리데이의 테마가 있어야 계획을 짜기 쉬울 듯해서 '일본의 문화와 디자인을 배우는 시간'이라고 정해 보았다.
사유서에 적었던 전공이나 하는 일에 맞춰 미술관과 디자인 페스티벌 관람을 주요 일정으로 추가했다. 평소에도 미술관이나 페스티벌에 관심이 많아서 계획하면서도 공부가 되었다.
그리고 일본 문화를 즐길만한 마쯔리나 하나미등의 일정과 나의 최애 드라마인 '고독한 미식가'에 나왔던 맛집 투어도 추가했다.
사유서는 타당한 이유를 만들어 내느라 힘들었는데, 계획서는 일본에 가서 여행 다닐 생각을 하며 알아보니 즐겁게 작성했다.
워킹홀리데이 준비하기 전, 1년 넘게 다니고 있던 일터를 계속 다니느냐 마느냐로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흔한 퇴사의 이유 중 하나인 사람 때문이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는 너무나 좋고 일 자체도 무척이나 즐거웠다.
그런데 딱 한 사람, 팀장의 얼굴만 보면 울화가 치밀 정도로 싫어하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마음이 넓고 다정하게 팀을 챙기는 것 같아 보였다. 팀을 키우고 싶은 욕심도 있어서 배울게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이직을 잘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소속감에 동기부여도 되었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그동안 숨겨왔던 팀장의 본색을 마주하게 되었다.
사실 그는 자신 하나만으로 팀이 잘 굴러간다고 믿고 있었고, 나를 비롯한 동료들은 팀원이 아닌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기계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누군가 의견을 제시하면 자신을 무시하고 대든다고 생각해 따로 불러 폭언을 일삼았다. 의견 조차 낼 수 없는 곳에서 그저 기계처럼 아무 말도 생각도 없이 참고 일을 해야 했다.
5년을 다녔던 지난 회사에는 반복되는 업무를 벗어나 다양한 것을 경험해 보고 싶다며 퇴사를 했지만,
결국엔 또 제자리였다.
이렇게 살다가는 평생을 기계처럼
묵묵히 견디며 일만 하며 살다가 죽을 것 같았다
이제 겨우 30대 초반, 무언가를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을 나이였다.
아직 남아있는 도전의 기회를 흘려보내고 싶진 않았다.
깊은 고민을 하는 시간도 아깝다는 생각에 과감히 사직서를 냈다.
결론은 만 서른한 살이 되는 생일을 맞이하기 일주일 전에 합격해 죽기 전에는 워킹홀리데이란 것을 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모든 일을 놓고 할까 말까 망설이기만 해왔다.
이러한 망설임이 신중한 선택을 하도록 돕기도 하지만, 도전에 있어서는 달랐다. 분명히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데도 애초에 시작도 못하고 기회를 그냥 보내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만 서른한 살의 워킹홀리데이 도전은 삶을 사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망설임을 멈추고 도전해야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이 도전에 있어서 나이는 사실상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여러 이유들을 핑계로 대며 도전을 망설이던 나의 마음이 가장 큰 문제였을 뿐.
그렇게 이듬해 여름 나는 도쿄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