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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junwon Dec 16. 2022

01. Intro.

휴직을 하게 된 그리고 인도엘 가게 된 이야기

인도에서의 TTC를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정리하는 글입니다. 과거이지만 현재형을 사용하고 시간순으로 작성했습니다.


일상에서 벗어나다

아버지 팔순 생신이다. 아버지는 당신 형제들과의 가족모임 그리고 직계 가족들과의 가족여행을 원하셨다. 11월에는 내가 한국에 없을 것이므로 지금 미리 해야 했다. 아버지 네 형제의 사시는 장소(서울/시흥/제천/포항)와 시간과 참석인원과 선호를 파악하여 식당을 잡았고, 어디든 상관없다고 하시면서도 '한옥이면 좋지', '바다도 보면 좋지' 등의 흘리는 말씀들을 주워 담아 직계 가족 열세 명의 가족 여행은 군산과 경주를 둘러보는 것으로 마쳤다. 큰 아이는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된다. 담임 선생님은 아이의 성향과 성적에 맞게 전략을 세워 고등학교에 지원해야 한다고 한다. 입시설명회를 듣고 학교 별 특징을 파악하고 지원할 고등학교를 정했고, 중등 중심의 학원에서 고등 중심의 학원으로 옮겼다. 회사에서는 프로젝트 오픈이 막바지고 곧 평가가 있다. 평가 시즌 전에 프로젝트는 무사히 오픈했고, 나 대신 팀원들의 평가를 진행할 (입사한 지 1년이 안된) 실장님에게는 팀원들의 평가에 대해서 과장되게 전달했다. 타 조직의 평가 TO를 뺏어오기 위한 컨택 포인트와 논리에 대해 입이 닳도록 당부했다. 그랬다. 늘 그렇듯 분주했고, 격양되어 있었고, 언제 어떤 일이 주어져도 바로 처리할 수 있도록 촉수는 최대한 살아있고 긴장되어 있었다. 어제까지 그랬다. 그리고 오늘은 인도에 있다. 오늘 새벽 집을 나와 공항 리무진을 탔다. 이어서 델리행 비행기와 리시케시행 미니버스를 탔다. 7시간의 비행과 7시간의 미니버스는 마치 나의 목적이 도망이라는 것을 눈치챘다는 듯이 무조건 멀리, 더 멀리로 내달렸다. 지금 나는 누구의 장남도 아니고 가장도 아니고 회사원도 아니다. 나는 그저 나에 불과한 내가 인도에 있다.  리시케시로 오는 미니버스에서 인도를 감상한다. 거지도 많고 팔다리가 성치 않은 사람도 많다. 시야는 뿌옇고 공기는 매 쾌하고 사람, 차, 릭샤, 오토바이 그리고 소가 뒤엉켜있다. 복잡하고 시끄럽다는 단어로는 부족한데 복잡하고 시끄럽다. 이 정도나 멀리 왔으면 어떤 편안함이 있어야 할텐데 불편함이 더 많다. 숙소에 들어와 문을 닫고 간신히 정적을 느끼고 나서 생각이 든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 ... ...'  

너무 생소한 풍경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사진은 찍지도 않게 된다. 더이상 새롭지 않게 적응된다


휴직을 하다

회사생활은 늘 그랬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고 그런 일들을 빠르게 받아들여야만 했다. 억지로 '순응' 해야 했지만 회사에서는 그것을 '능력'이라고 불렀다.  동료들을 돕되 그들과 경쟁해서 이겨야 인정받는 모순이 있다. 그런 순응과 모순이 맞는 것이라고 나 스스로를 속여 인정받을 수는 있었다. 평소 내 성격이 강하지 않은 탓인지는 몰라도 나는 남들보다 빠르게 그러한 억지를 당연한 사실로 잘 받아들였다. 문제는 관리자가 된 이후부터였다. 백번 양보해도 받아들이기 힘든 더 큰 억지를 인정해야만 했고, 나는 둘째치고 팀원들과 타 조직까지 속이기는 힘들었다. 더 큰 문제는 한두번 겪어내면 되는 일이 아니라 이것이 매일이라는 점이 나를 가장 지치게 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속는 나가 진짜 내가 되어갔다. 그런 매일을 어느덧 이년을 보냈고 나는 내가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것이 의미가 있고 어떤 것이 무의미 한지 기준을 잃었고, 바로 잡을 수도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다. 그저 오늘 하루 지금 내 눈앞의 일을 통과시키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고, 부질없고 의미없어 보였다. 지친 정신은 곧 몸으로 번졌다. 몸은 정신과 다르게 겉으로 티가 나기 시작했다. 점점 어두워지는 얼굴색, 불면, 살 빠짐, 두통, 복통, 만성피로, 근육통이 계속되었고 이런 몸은 정신을 더 날카롭고 짜증스럽게 만드는 악순환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졌다. 결국 나는 나에게 진 느낌이고, 계속 가더라도 잠시만 쉬었다 가면 안되겠냐고 백번은 넘게 물었다.

(나중에 접하였지만 정우성님의 퇴사글을 보며 매우 공감하였다. 비록 나는 퇴사는 못하지만.. ㅠㅠ)



요가를 선택하다

불면이 이어지는 밤에는 새로운 다짐이 많았다. 내일은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야지, 내일은 일하는 틈에 독서를 해야지, 내일은 화내지 말아야지. 그리고 어느날의 다짐은 내일은 운동해야지였다. 자연스럽게 어떤 운동을 하면 좋을까로 이어졌다. 예전에 살짝 맛보았던 조깅은 신선하지 못했고, 악을 써야하는 헬스는 나를 진정시켜 주지 못할 것 같았다. 구기 종목은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골프는 조금 다른 카테고리이고 테니스도 좋지만 요즘 유행이라 피하고 싶다. 운동하자는 다짐과 함께 운동 못할 온갖 핑계를 찾았다. 그런 와중에 문득 생소한 요가가 떠올랐고 요가와 명상 뭐 이런 것들이 지금 내게 필요하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이 들어 다음날 바로 집 근처 요가원에 등록했다. 그것이 불과 6주 전이다. 매사 계획적인 나이지만 종종 충동적으로 저지르곤 한다. 지금도 그랬다.

사실 이런 잔근육질의 몸매를 상상하면서 요가원엘 갔지


새로운 일상을 맞는다

도착 후 첫날은 휴식 겸 자유시간이다. 나를 포함한 일행 모두 낯선 환경에 조심스러워하고 잘 적응하기위해 애쓰는 모습들이 보인다. 사람들은 앞으로 진행될 수업계획은 물론 식사, 세탁, 청소, 물, 환전, 주변환경 등등에 관한 질문들을 선생님께 쏟아내고 나는 귀동냥으로 정보들을 얻는다. 숙소에서 내어주는 밥을 먹는다. 지나치게 담백한 짜파티와 낯선맛의 커리, 그리고 유난히 긴 쌀의 모양은 왜이리 징그러운지. 같은 음식을 몇끼 더 먹으면 질려버릴 테지만 첫날이라 그런지 참고 먹을만하다.

첫날 먹은 음식. 그리고 매일 먹게 된 음식. 결국엔 한식만큼 좋아하게 되었다.


식사 후에는 사람들과 외출을 했다. 좁은길에 사람은 많은 많았고, 바퀴달린  모든것들은 미친듯이 경적을 울려대고, 소는 길을 막아선 채 움직이질 않고, 나무 위의 원숭이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모양새로 눈치를 살피고 있다. 그렇게 앞, 뒤, 위를 살피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한걸을 내디딜 때마다 널려있는 소똥을 피해야하니 바닥까지 살펴야 한다. 단지 걷는일일 뿐인데 고작 백미터를 걷기가 너무 피곤하다. 더 이상의 구경은 포기하고 숙소로 들어온다. 문을 열자마자 숨어대는 바퀴벌레부터 밟고, 세면기에서 나오는 물색은 찜찜하다. 그래도 이겨내고 세수를 하면 내려가는 물의 반작용으로 하수구 냄새가 올라온다. 숙소 밖에도 안에도 휴식처가 없는 느낌이다.

5주를 지낸 나의 방 301호 그리고 매일 멍때리며 바라보던 창
옥상에서 바라본 마을. 저녁밥을 짓느라 여기저기 연기가 보인다. 때문에 오후 수련은 맛있는 밥 냄새가 항상 코를 자극했다.



충동적인 선택이 낳은 인도의 첫 느낌

나는 가격비교 사이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다 비슷비슷한 그것들이 알 수 없는 기준으로 나뉘어 몇천원, 몇만원의 차이로 구분되는지 도저히 알기가 어렵다. 결국 어떤 하나를 선택하는데 (말도 안되게) 감으로 물건을 선택하곤 한다. 이번 인도행도 마찬가지였다. 추후 알게 되었지만 다른 수련생들은 사전에 워크숍도 들어보고 대면 상담도 하면서 이곳을 선택했는데, 나는 그저 인터넷 광고 한번, 전화통화 한번 하고 신청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무슨 요가를 얼마나 하겠다고 여기까지 온거지, 한국에도 얼마든지 좋은 선생님이 많은데 왜 이런 결정을 한거지, 결국 5주라는 시간을 이렇게 버려야 (버텨야) 하나, 나중에 복직하고 회사에 돌아가서는 챙피해서 말도 못꺼낼 것 같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허기진 나의 마음을 운동으로 채워보려 했으나 '내가 그렇지' 하는 자책이 가득하다. 이것이 내가 인도에 도착하고 느낀 첫 감정이다.

어쩌다가 내가 이런곳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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