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억하고 싶어 그런데 <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 2017
‘너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
다른 사람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와 인연을 맺는 첫 단추입니다. 김춘수 시인은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 마음에 새기는 것을 ‘꽃이 되었다’라고 치환한 바 있습니다. 이름은 곧 상대와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윤곽선이며, 이름을 기억하고 관계를 쌓아가면서 그 윤곽선 안을 채색하게 됩니다. 그렇게 각인된 서로의 존재를 자신의 마음속에 다채롭게 그려가며 한 편의 초상화를 완성해 갑니다. 그 초상화는 서로에 대한 의지와 관심을 잃지 않는 한, 희미해지지 않고 남을 겁니다. 한데 무언가가(혹은 어떤 요인이) 그의 이름과 초상화를 억지로 지워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은 누군가 지워버린 ‘너의 이름’을 감동적인 서사로 재발견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더불어 영화 제목에 찍힌 마침표를 느낌표로 바꾸어가는 영화입니다.
도시에 사는 소년 ‘타키’와 시골 마을의 소녀 ‘미츠하’는 어느 날 알 수 없는 이유로 몸이 뒤바뀌게 됩니다. 처음에 두 사람은 이 갑작스러운 사건이 그저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꿈을 넘어선 특별한 경험임을 자각하고서, 그들은 메모를 통해 서로에게 묻습니다.
“너는 누구야?”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고, 그들은 나름의 규칙들을 만들면서 이 기묘한 ‘교환 생활’을 능동적으로 이루어 나갑니다. 교환된 생활을 영위하면서 그들의 마음도 서서히 가까워지는데요.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마음에 그려진 윤곽선을 애틋한 빛깔로 채우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두 사람의 몸은 더 이상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타키’는 그들이 특별하게 연결된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그는 기억을 더듬어 ‘미츠하’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나지만, 어째선지 그녀의 이름이 자꾸 머릿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것을 느낍니다.
그들은 대체 어떤 이유로 인연을 맺게 된 것일까요. 그리고 서로의 이름을 지워버린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다시 기억하게 될까요.
이 영화는 어떤 이유로 맺게 된 특별한 인연과 그 인연을 다시 기억하려는 의지의 소중함을 그립니다. 서로의 이름은 지워졌지만, 그 이름을 남기기 위해 꾹꾹 눌러썼던 연필 자국만은 남아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서로의 마음에 남아 있는, 이름의 다른 흔적이 되는 것이겠지요.
전작 <언어의 정원>이 그랬듯 <너의 이름은.>에서도 감독 특유의 유려한 작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사람이 그려낸 그림이란 것이 이토록 찬연할 수 있을까 생각할 만큼 고운 작화를 보여줍니다.
도시와 전원의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별과 구름이 쏟아질 듯 섬세하게 그려낸 하늘, 그리고 소년과 소녀의 애틋하고 간절한 인연까지. 누선을 따스하게 자극할 영화를 찾는다면 한 번쯤 선택할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