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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예원 Jul 07. 2020

나를 해치던 위로

위로에 관하여


우울, 이란 게 사람을 삼켜버리는 걸 여기저기서 자꾸 마주하다 보니 우울이라는 게 참 무서운 거란 걸 깨닫곤 했다. 마음이 걸릴 수 있는 병 중 가장 위험하고 치명적인 병. 그리고 언젠가 나도 직접 그 속에 들어가 그 단어를 그대로 뒤집어 쓴 채 그 두려움을 마주한 적이 있다. 우울이 가장 무서운 것은 더 이상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의욕 상실에서 오는 깊은 포기였다. 너무나 힘이 들어 나 이외에 다른 것들은 신경을 쓸 수가 없고, 그래서 또 퍽 이기적으로 변해간다. 나는 그 때 알았다. 모든 배려와 상냥함들은 마음의 여유에서 나오는 거란 걸.

그 때 나를 힘들게 한 요소는 굉장히 많았지만, 그 중 가장 의외인 요소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위로였다. 내가 너무 힘이 드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 친구나 지인을 만나면 그게 무례한 거라는 생각조차 거치지 않은 채 그냥 퉁명스럽게 힘들고 다 놓아버리고 싶다는 투정만 계속 계속 늘어 놓게 된다. 그리고 살고 싶지 않다는 무서운 말들도 계속 반복해서 그들을 자꾸 걱정하게 만든다. 가끔 우울이 심한 사람 옆에 멀쩡한 사람이 계속 붙어 있다가 결국 그 우울이 전염되고 말았다는 얘기를 듣곤 했는데, 그게 바로 그런 이유에서인 것 같다. 정말 우울한 사람은 모든 것이 다 의미가 없고 귀찮은 상태이기에 결국 어떤 말을 건네도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어 버려서.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모두 구조요청이었던 것 같다.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면서도 나를 우울의 구렁텅이로 떠민 이 상황에서, 다들 그렇게 뻔한 위로만 건네지 말고 누구라도 내 손을 잡고 끄집어내 달라고, 내가 이렇게 죽을 것 같은데 발 벗고 나서서 나 좀 구해달라는 그러한 신호.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함을 알고 있는 속상한 SOS. 그리고 나는 그러한 신호를 띄웠을 때 아무렇지 않게 돌아오는 너무 뻔한 위로의 말들이 너무나 괴로웠다. 힘내라는 말, 언젠간 괜찮아 질 거니까 조금만 더 버티라는 말, 너무 안 좋게만 생각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 이런 류의 말들은 어쩌면 지금의 나도 아무렇지 않게 쓸 당연한 위로의 말이지만, 사실 그 당시의 나에겐 가장 무책임한 위로의 말, 지금 당장이 힘든 내게 가장 필요없는 말로 들렸던 것 같다. 물론, 그 말을 건넨 그들에겐 진심으로 내가 괜찮아지길 바라는 마음에 했겠지만 그 말들을 하고 정작 내가 가장 괴로워하는 순간엔 내 옆에 없을 그들을 알고 있기에 더 쓸모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 몇 년 뒤, 그 지옥 같은 우울에선 벗어나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 삶 조차 버거운 적이 있었다. 우울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알고 있던 나는 최대한 괜찮다고, 그 때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최면을 걸며 버티던 때. 그런데 그 때 누군가가 툭 하고 내뱉은 말에 나는 정말 1초만에 눈물이 터졌다. “그럼 너는 어떻게 해? 너 너무 힘들 것 같은데 그걸 버티고 있었어? 너 버겁지 않아? 나라면 그렇게 못 해.” 라는 말. 그 말을 들은 순간, 내가 애써 최면을 걸어 둔 괜찮다는 주문은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랬다, 나는 힘들고 버거웠다. 애써 버티고 있는 거였는데 이 정도는 그 때에 비하면 양반이라며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상대의 눈에도 내가 힘든 게 보였던 거다. 카페에서 평온히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터진 눈물이라, 눈물이 눈에 그득히 차오르는 걸 수습하는데 진땀을 뺐다. 그 말을 건넨 상대도 적잖이 당황한 것 같았는데 왠지 자꾸만 너 너무 힘들 것 같다는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고 그 말에 자꾸만 눈물이 차올랐다. 이렇듯, 결국 내가 듣고 싶었던 것은 인정이었다. 내가 현재 힘들고 지쳤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알아주고 공감해주고 인정해주는 말. 네가 힘든 건 당연한 거고, 너의 힘듦과 우울은 네 탓이 아니라 지금 너의 주위 상황이 널 그렇게 만든 거라고. 그런 말들.

우는 나에게 굳이 고개를 들게 해서 저 먼 산을 바라보라고, 저 앞에는 괜찮을 거니까 저 앞까지만 어떻게든 가보라고 밀어준 후 자신의 길을 가버리는 것보다, 고개 숙인 내 옆에 잠자코 앉아 등을 토닥여주고 울고 싶은 만큼 울라고 나 시간 많으니 천천히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기다려주겠다고. 여기까지 걸어오느라 넌 얼마나 힘들었겠냐고 하는 게 내게는 깊숙한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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