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집에 내려갔을 때 외식을 하러 걸어가다가 핸드폰으로 음악을 크게 틀고 지나가는 아저씨를 보았다.
“어휴. 저러는 거 사람들한테 진짜 민폐야. 엄마, 아빠는 길에서 저러고 다니지 마셔.”
“나도 가끔 통장 정리하러 가고 그럴 때 음악 듣고 싶을 때가 있는데 아무도 없으면 슬쩍 작게 틀고 듣고 가다가 사람 오면 껐어.”
“이어폰 끼면 되는데 엄마는 그런 거 싫어하잖아.”
“나도 있으면 길에서 음악 듣고 싶긴 하더라고.”
엄마는 귀에다가 먹먹하게 끼는 것이 싫다면서 밤에 잘 때 유튜브 혼자 들을 때도 우리가 쓰지 않아서 어디 굴러다니던 유선 이어폰을 한쪽만 슬쩍 끼워서 듣는다고 했다. 그래서 이어폰을 싫어하는 줄만 알았다.
집에 내려가면 달갑지 않은 것이 있다. 엄마가 틀어놓는 유튜브 채널이 있는데 배우자나 애인이 바람을 핀 기구한 사연들을 읽어주는 영상을 하루 종일 크게 틀어놓는다. 집안일을 하며 안방, 화장실, 세탁실, 주방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들어야 하니 볼륨을 키워 쩌렁쩌렁 울리게 해놓는다. 좋은 이야기도 아니고, 스트레스로 가득한 이야기들인데 핸드폰 볼륨을 잔뜩 키워서 거슬리는 소리로 들리는 것이 가히 폭력적이다.
여동생도 나에게 스리슬쩍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난 진짜 엄마 저것 좀 안 들으면 좋겠어. 저렇게 틀어놓으면 애들도 듣잖아.”
그렇다. 초등학생 조카들이 저런 이야기 들어봐야 좋을 것이 하나 없다. 이어폰으로 들었으면 좋겠는데 엄마도 마침 바라던 바라고 하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귀가 답답하지 않게 오픈형 모델 중에서 다채로운 기능은 필요 없고, 기본 기능에 충실하면서 잃어버리거나 고장 나도 큰 아쉬움이 없을 가격, 말 그대로 가성비가 좋은 제품을 찾아 주문했다.
어버이날 선물로 용돈과 함께 준비한 이어폰을 드렸다.
“엄마, 이거 블루투스 이어폰인데 그렇게 비싼 건 아니니까 그냥 막 써도 돼.”
엄마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렇게 활짝 웃으며 좋아하는 모습은 간만에 보았다. 핸드폰에 블루투스를 켜서 기기를 연결해 드리고 사용법을 알려드렸다.
”엄마 이렇게 옆을 톡톡 치면 재생이고, 톡톡 치면 멈춤이야. 듣다가 혹시 전화와도 똑같이 톡톡 치면 돼.”
엄마는 어설픈 손놀림으로 왼쪽, 오른쪽 이어폰을 끼우고 소리가 나오니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어! 나온다, 나온다!”
엄마는 그 순간부터 자기 전, 다음 날 점심을 준비하시면서도 이어폰을 끼고 자유롭고 조용히 본일 일에 집중하셨다. 그리고 그날 점심상에 맛있는 음식들은 주로 내 앞에 놓였다.
집에 내려가면 핸드폰 봐 드리는 게 일이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떠도 눌렀다가 고장 나거나 해킹이 될까 봐 안 건드렸다고 했다. 심지어 처음 아빠가 엄마에게 핸드폰을 선물했을 때도 이런 거 없어도 된다고 시큰둥하셨기에 당연히 전자기기라면 질색할 줄 알았다.
이제는 유튜브 프리미엄 구독 중인 데다가, TV에 연결된 스피커에 “지니야~ 넷플릭스 틀어줘”라고 명령해서 넷플릭스 영화도 가족 중 가장 많이 보는 애청자시다. 토스 앱으로 주식거래와 계좌이체 하는 것을 알려드렸더니 이제는 어려움 없이 사용하신다. 그럼에도 여전히 며칠에 한 번씩 통장 정리를 하러 동네 한 바퀴를 돌긴 하지만... 그렇게 엄마도 세상의 변화를 점점 받아들이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