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시청역에서 엄청 큰 사고 있었잖아. 회사 근처라 자주 지나다니는 곳인데 그런 일이 생긴 거 있지. 죽은 사람들 어떡해. 불쌍해서... 한순간에 그게 무슨 일이야.”
“그 사람들 보험금 엄청 많이 나올 거라던데?”
“엄마. 사람이 죽었다는데 보험금 얘기가 왜 나와.”
“그냥 그렇다고 말도 못 하니?”
간만에 고향 집에 내려가 부모님과 외식을 하려고 가까운 식당으로 걸어가던 길이었다. 가던 길목이 얼마 전 시청역에서 있었던 사고 자리와 비슷하게 생긴 곳이 있어서 이야기를 꺼냈는데, 엄마는 한치의 표정 변화 없이 보험금이 많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검색 포털 뉴스 댓글에서 그런 인간들을 보면 치를 떨었는데 내 부모가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 힘이 쭉 빠졌다. 아마 내가 죽어도 슬픔은 잠시, 보험금이 얼마 나올지 계산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혹여 내가 불의의 사고로 떠나게 된다면 '얘가 그래도 살림에 보탬은 주고 갔다'며 이런저런 보험증서를 꺼내보지 않을까? 그러면서 신나 하지 않을까? 미리 유서라도 써놓을까? 얼마 되지도 않는 재산이지만 사회에 환원한다고. 아니면 우리 두 조카가 성인 될 때 주라며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우리 엄마는 전세사기를 당해 자살했다는 뉴스를 들은 첫마디가 ‘그럼 죽은 사람 대출금은 누가 갚아?’라고 했던 사람이다. 도대체 무엇이 엄마를 이다지도 무섭게 만든 것일까? 안타까운 사고에도, 막막함에 스스로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까지 아무런 연민을 느끼지 못하고 오로지 돈. 돈. 돈.
우리 집 경제 사정이 풍족한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가난하지도 않았다. 아빠는 직업군인이었기 때문에 내가 어렸을 때는 박봉이라 많이 쪼들렸지만, 중학교 이후에는 그래도 평범하게 살았다. 도대체 무엇이 엄마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
나는 30대 중반에 백수로 긴 시간과 돈을 허비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울증이었는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무기력하게 누워서 두문불출하며 어제가 오늘인지, 오늘이 어제인지 구분도 못 하고 살았다. 어느날 부턴가 시작된 부정 출혈은 하혈로 바뀌었다. 산부인과에 가보니 1.8cm짜리 혹이 있다고 했다. 자궁폴립.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실비보험이 있어서 치료 비용을 부담 없이 처리할 수 있었다. 나는 당시 실비보험과 CI보험 이렇게 두 개를 가지고 있었다. CI보험이라는 것이 중대암에 대해서 보장한다는데 그 중대함의 기준이 무엇인지 애매하다며 그리 평이 좋지 않았다. 10년을 넘게 부었어도 수술을 받거나 크게 아픈 적이 없어서 한 번도 보험 혜택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말 그대로 보험이었다. 혹시나 해서 약관을 뒤져보니 내가 받은 수술로 100만 원을 받을 수가 있었다. 가뜩이나 돈 때문에 고민이었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회복이 되고 시간이 지난 후에 친하게 지내던 언니를 만났다. 그간 안부를 묻다가 수술받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래도 보험에서 100만 원이 나와서 이번 달은 어찌어찌 살 것 같아요.”
“자해 공갈단이야 뭐야.”
“뭐라구요? 자해 공갈단?“
발끈하는 나를 보며 그녀는 씩 웃고 있었다.
”저 그 보험 10년 넘게 부었는데 이번에 처음 탄 거거든요!!!”
마네킹처럼 활짝 웃고 있는 모습에 소름이 끼쳤다. 그 표정에는 일말의 미안함이나, 겸연쩍음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다리가 이끄는 대로 갔더니 어느덧 집에 도착해 있었다. 내 머릿속엔 온통 하나만 가득 차 있었다.
‘자해 공갈단... 자해 공갈단... 자해 공갈단......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아파서 수술받은 사람한테 괜찮은지 수술은 잘됐는지는 물어보지도 않고 자해 공갈단이라니. 쫓아도 쫓아도 계속 달려드는 날파리 처럼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녀가 이전처럼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나의 마음을 들켜버린 것이 이유였다. 그래서 그렇게 화가 난 것이었다. 수치스러웠다. 긴 백수로 쪼들리는데 돈 벌 생각은 안 하고 이렇게라도 돈이 생겨 다행이라는 마음 말이다. 내가 닮고 싶지 않은 엄마의 모습. 나는 어쩔 수 없는 엄마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