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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Feb 04. 2024

아웃소싱 계약직 디자이너의 자존감

백수 기간은 길어지고, 근심은 더 깊어져갈 때쯤 웹에이전시에서 같이 일했던 언니로부터 갑자기 연락을 받았다. 자기가 아는 기획자가 금융권에서 일하고 있는데 거기 디자이너를 구하고 있다고 혹시 지원해 볼 생각이 있느냐고. 나는 평소와 다르게 바로 알겠다고 하고 지원 메일을 보냈다.


이전에 일했듯이 대기업 소속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웃소싱 회사 소속으로 일하는 것이었다. 아웃소싱 매니저는 면접 장소와 시간만 알려줬을 뿐,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정보도 주지 않아 면접 자리에서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긴 공백으로 생활비가 급했고, 이전에 했던 일과 비슷했기에 순조롭게 면접을 보고 일사천리 출근으로 이어졌다.




금융사에서 운영하는 앱 중에 하나를 운영하는 것이었다. 현업은 8명, 나를 포함해 계약직 디자이너는 2명. 내가 알기로는 파견법 때문에 현업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곳은 부서에서 고용한 것이라 그런지 여전히 현업과 같은 공간, 심지어 옆자리에서 일을 했다. 파티션도 없이 말이다. 그래서 현업 중 막내인 남자 사원이 옆자리였는데 종일 힐끔대며 내 일에 참견하곤 했다. 초반에 긴장이 되어 화장실에 자주 들락거렸는데 그걸 가지고도 자기들끼리 쑥덕대는 것을 보고 눈치가 보였다.


내 업무는 이 서비스에 대한 전반적인 운영, 유지보수 디자인 업무였다. 의외로 iMac을 지원해 주었는데 디자인은 iMac으로 하고, 회사 내부망 접속을 위한 윈도우 PC도 함께 놓여있었다. 앱이 가장 기본이었고, 웹, 모바일 웹 이렇게 3가지 채널을 관리해야 했다. 그런데 게재되는 위치나 이미지 사이즈가 다 달라서 이벤트 하나만 해도 만들어야 할 배너가 많았다. 현업들이 기획서를 주면 상단 이미지를 디자인하고, 하단 내용은 어드민 페이지에서 코딩으로 넣고, 배너들을 등록하고, 이벤트 시작/종료 날짜 시간 같은 것들까지 입력하고 게시하는 것까지가 내 업무였다. 


부서에서 운영하다 보니 이미지 사이트도 결제되어 있는 곳이 없어 매번 무료 이미지 사이트에서 소스를 다운받아 변형시켜서 사용했다. 제대로 된 기획서를 주기도 했지만, 현업들이 바로 옆자리, 앞자리에 있다 보니 쪽지로 대충 준다든지, 수정은 자리로 와서 바로 얘기하는 식이었다. 이벤트 종료일이 월말에 몰려있어서 일은 중순에 거의 바빴고 월초엔 일이 없는 날도 있었다. 그외에는 가끔 제휴사에서 요청한 디자인을 하기도 하고 오프라인에서 배포하는 지류 쿠폰, 행사에서 배포할 홍보물, 편의점 계산대 화면에 들어가는 홍보 배너까지… 갖가지 디자인을 했다. 다행히 나는 웹디자인을 하기 전에 편집 디자인을 했기 때문에 별 어려움 없이 업무를 진행할 수 있었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금융사의 분위기… 생각보다 별로였다. 이전에 일했던 금융사는 8이 일개미고 2가 배짱이었다면, 이곳은 8이 배짱이, 2가 일개미였다. 이전 회사는 업무 중심으로 매일 신속하게 돌아갔는데, 이곳은 일보다는 직원들 개인사가 중심으로 보였다. 휴가를 가느라 팀원 전체가 회의에 참석하는 날이 손에 꼽혔고, 문제를 발견해도 쉬쉬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걸 말하면 자기 일이 되니까. 그래도 그 큰 회사가 돌아간다니 고객으로서 별로였다. 직원들은 좋겠지만.

 

기업문화도 좀 아이러니했다. 고인물과 젊은 세대가 공존하는데 회사 차원에서는 자유로운 외국 회사 분위기를 정착시키려고 하는 방향이었지만, 우습게도 같은 공간에 있는 전무가 방에서 담배를 피워서 사무실 전체에서 담배 냄새가 나는 그런 곳이었다.


팀장 이상의 사람들은 그저 자리보전하는 것이나 퇴근 후에 술 마시러 가는 것, 퇴사하고 무슨 사업을 할까 고심하는 것 같았고, 아래 직원들은 몇 안 되는 열정적인 직원이 하는 프로젝트에 티 안 나게 묻어가길 바라는 듯해 보였다. 사원이 작성한 보고서를 과장이 자신이 했다고 뻔뻔하게 이름을 고쳐서 제출하는 것도 봤다. 20년 넘게 그 회사에 다녔다는 사람이 메일 하나를 제대로 못 보내서 매번 옆 사원을 들들 볶았다. 알고 보면 첨부파일 이름을 잘못 넣었다던가 아주 말도 안 되는 실수였는데 말이다. 이런저런 때가 되면 나오는 보너스, 학비 지원, 월세도 지원이 되니 도대체 저 사람들은 돈을 밥 사 먹을 때만 쓰나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보면 다들 착한 사람들 같은데 그곳을 다닐 때가 심적으로 가장 힘들었다. 먼저 일하고 있던 디자이너는 나보다 3~4살이 어렸는데 처음부터 본인을 무시할까 봐 그랬는지 기세를 펼치느라 나를 업신여기고 말도 아주 못되게 했다. 현업들과도 반말하며 지내고 나에게 직급을 붙여 부르지도 않고, 심지어 언니도 아니고 별명을 불러대고. 한번은 대대적인 이벤트 때문에 팀장까지 모두 참석한 자리에서는 이벤트 제작을 반반 나눠서 하겠다고 하더니 막상 담당자 현업과 넷이 회의 할 때는 말을 바꿔 "내가 왜 해?"라고 화를 내는 이중적인 모습이었다. 나도 짬밥이 있으니 전혀 동요하지 않고 흔쾌히 내가 다 하겠다고 해서 그 많은 이벤트를 모두 혼자 디자인하고 결국 팀장의 신임을 얻게 되는 일로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나와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현업 사원, 대리들이 나보다 훨씬 어렸는데 이 회사 계약직도 아니고 아웃소싱 소속으로 고용된 것이다 보니 은근히 무시하는 말이 깔려있었다. 옆자리 남자 사원이 이곳에 공채로 들어오기 전에 자기도 다른 곳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이런저런 설움을 겪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겪어본 놈이 더하다고 그놈이 제일 악질이었다. 계속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보고, 참견하니 매 순간 곤두서 있고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누가 계속 내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해 봐라. 정말 스트레스받는다. 한번은 제휴사에 보낼 배너를 디자인하고 있는데 생소한 디자인인 것을 보고 알바해요?”라고 말을 할 정도였으니. 베트남 여행을 간다고 했더니 자기가 지난 여행 때 쓰고 남은 돈이 있다면서 갖다줬는데 한국 돈으로 1,500원이었다. 쌀국수 한 그릇도 못 사 먹는 돈이었다. 처음엔 고맙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닌 현업 동료가 베트남 간다고 그 돈을 갖다줬을까? 아니라고 본다.


현업들은 1년에 휴가가 25개가 넘어서 2, 3달에 한 번씩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래서 탕비실에는 항상 각국의 초콜릿이 떨어지는 날이 없었다. 차라리 웹에이전시 소속으로 파견 나가는 것이 낫지, 아웃소싱은 소속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부당한 일은 당해도, 필요한 것이 있어도 나를 보호해 줄 울타리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계약만 있을 뿐. 차라리 프리랜서로 계약해서 일을 한다면 돈이라도 많이 받겠지만 이건 이도 저도 아니다. 휴가를 갈 때도 서류를 출력해서 현업 팀장에게 굽신굽신 가서 허락과 사인을 받고 그것을 아웃소싱 회사에 팩스로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딱 한 번 베트남 여행을 가기 위해 며칠 휴가를 내기 위해 팀장에게 허락을 받으러 갔더니 사인을 해주며 팀장이 말했다.

“왜, 다들 가니까 너도 가고 싶어?”

말문이 막혔다. 나는 해외여행 가면 안 되나? 계약직 직원은 해외여행도 이런 소리 듣고 가야 하나? 본인 팀원들은 휴가만 냈다 하면 다들 외국 가는데.




새로운 기업문화가 어쩌고 해도 그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는 방법은 아주 쉽다. 술! 술만 잘 마셔주면 된다. 그래서 인사 평가 기간엔 다들 윗사람과 술 약속을 잡느라 혈안이 되어있었다. 평소에 그 사람이 업무를 잘하건 못하건, 윗사람 비위 맞춰주면서 술자리만 잘 따라다니면 됐다. 나도 처음에는 친분 있는 사람들끼리 하는 술자리엔 몇 번 참석했는데 그런 의도로 이곳이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거부감이 들어 더 이상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 속물처럼 보일까 봐회식을 싫어하지만 정말 학을 뗐을 때가 있다. 승진과 인사이동이 있던 달에 무려 6번의 회식이 있었다. 그것도 절반은 당일 통보. 나는 아웃소싱 계약직이니 얼굴에 철판 깔고 선약이 있다고 하고 퇴근해 버렸다. 


최악의 기억은 연말 회식이었다. 30~40명이 한정식집에서 했는데 부장 옆에서 항상 수족처럼 굴던 차장이 부서에서 가장 예쁘장하고 발랄한 여사원을 부장 옆자리에 앉혔다. 나는 다른 계약직 친구와 제일 끄트머리 자리에 앉아서 음식과 술을 먹고 있었다.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일어나 건배사를 해야 했다. 그것도 끔찍했는데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쯤 갑자기 부장에게 설설 기는 그 차장이 나에게 오더니 자리를 옮기라고 했다. 아까 부장 옆 여직원이 앉아있던 자리로 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얼떨떨하게 부장 옆자리에 앉았는데 내내 어이가 없었다. 부장은 실실 웃으며 시든 때도 없이 나에게 계속 하이 파이브를 하자고 하고, 건배를 하자고 하며 술잔을 부딪쳤다. 술집 여자 취급하는 것 같아 기분이 더러웠다. 내가 무슨 현업 직원도 아니고 부장 옆에 앉을 필요가 뭐가 있냔 말이다. 기분이 더럽게 끝나고 나오는데 2차로 노래방에 간다고 했다.


노래방까지는 조금 거리가 있었는데 젊은 사원들과 여직원들 대부분은 이동하는 동안에 다들 집으로 도망가 버렸다. 나도 바로 집으로 가려고 했는데 같이 있던 사람들이 그냥 얼굴만 비추고 가라고 해서 정말 노래방에 도착해서 얼굴만 비추고 나와 집으로 향했다. 그다음 날부터 부장은 무슨 영문인지 나만 투명 인간 취급하기 시작했다. 나만 도망간 것도 아니고, 다른 직원들도 거의 다 집에 가버렸는데 나한테만? 내가 바로 면전에서 인사를 해도 매번 투명 인간 취급을 하고, 일부러 우리 팀 자리 쪽에 와서 한 사람 한 사람 말을 걸면서 나만 건너뛰고... 유치하기에 짝이 없었다. 그렇게 영향력 있는 금융사 부장이 한낱 계약직 직원한테 삐져서 투명 인간 취급하는 것이 너무 우스웠다. 오히려 술집 여자 취급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더러웠다고 내가 화가 내는 거면 모를까! 내 옆자리 사원처럼 그 회사 평생 다닐 생각이면 그게 먹혔겠지만, 나는 팀에서 고용한 계약직 직원이다. 그 사람의 영향력은 나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그래서 나도 그 사람을 무시했다. 자기 회사 사람들에게나 부장이지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회사 디지털 채널 운영이 통합되어 웹에이전시가 운영업체로 선정되어 들어오게 되어 나 그리고 같이 있던 디자이너는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 재계약을 하지 못하고 나오게 되었다. 현업 과장 중 명이 나에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언제, 어디든 이직할 수 있지 않냐고. 그게 부럽다고. 자기는 여기서 평생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고... 그들의 복지와 연봉을 보며 수능 공부 열심히 할 걸 개탄했지만 어찌어찌 들어갔어도 나는 절대 저렇게는 살겠다고 생각하며 결국 인생이 다 조삼모사인가 생각이 들었다. 


긴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아웃소싱 업체와 계약해 가는 파견은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업체로부터 전혀 케어받을 수 없었고, 금전적으로도 큰 매리트가 없었으며, 디자이너라는 직업적 자긍심도 지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포토샵 하는 계약직 회사원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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