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린 겨울바람이 파고들 때면 봄이 빨리 오길 바라면서도 푸바오를 생각하면 시간이 더디게 가길 바랐다. 2월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결국 와버린 3월.
가장 맞이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2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푸바오의 마지막 퇴근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푸바오가 에버랜드를 떠나는 날 배웅하는 순간이었다.
결국 그날이 와버렸다. 푸바오의 마지막 출근. 사실 3월 3일은 의미가 있는 날이다. 아빠 판다 러바오와 엄마 판다 아이바오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온 날이기도 하다. 아침부터 강철원 사육사님은 유채꽃으로 만든 꽃다발을, 송영관 사육사님은 대나무로 만든 바오가족 인형을 푸바오에게 선물로 주셨다. 오늘 종일 시계를 볼 때마다 시간이 더디게 가길 바랐다.
그리고 좀 전에 푸바오의 마지막 퇴근길을 배웅했다. 5만 명이 넘는 팬들이 유튜브 라이브에 동시접속 했다. 푸바오는 대나무를 열심히 먹다가 5시가 되자 똑순이답게 방사장 문 앞에 가서 기다리더니 문이 열리지 않자 여기저기 방사장내를 돌아다니다가 냄새를 맡고 마킹을 하기도 하더니 다시 자리로 돌아와 대나무를 먹었다. 강바오, 송바오 할부지들의 인사와 푸바오의 모습들을 편집한 영상을 끝으로 1시간 가량의 라이브는 종료되었다. 이제 진짜 끝이구나...푸바오
지난 몇 주 동안 푸바오를 생각하면 양치질을 하다가도,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도 왈칵 눈물이 났다. 여전히 해맑은 표정으로 방사장을 산책하고 대나무 잎사귀를 야무지게 모아쥐어 먹는 모습 그리고 푸바오가 떠날 날이 다가올수록 사육사님들의 어두워진 표정들… 푸바오에게 유채꽃을 보여주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심었다는 소식, 손재주 좋은 송바오님이 잔뜩 만들어준 뚠칫솔과 대나무 안경을 보며 더 그랬다. 후회하시지 않으려고 모든 사랑을 표현하고 계시구나 생각이 들었다.
지난가을부터 푸바오와의 이별을 이야기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푸바오가 한국에 있을 시간이 남아있었고, 있는 동안 잘 있다가 이별은 아주 짧게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 번도 푸바오를 실물로 만나지 못했다. 2018년에 에버랜드에 놀러 갔을 때 판다 2마리를 보았고, 한 마리는 쉘터 끝에서 희한하게 엎드려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귀엽다고 웃으며 판다 월드를 빠르게 둘러보고 나왔을 뿐이었다. (그 희한하게 엎드려 자던 판다는 러바오였다.)
작년 여름부터 'TV 동물농장'과 사육사님들이 올려주시는 ‘전지적 할부지 시점’, ‘판다와쏭’ 예전 영상을 정주행하며 바오 가족에 빠져들었다. 사육사님들의 바램처럼 그냥 ‘판다들’이 아닌 러바오, 아이바오, 푸바오, 루이바오, 후이바오로 인지하게 되었다. 사육사님들이 직업을 뛰어넘는 애정과 헌신을 보며 사육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지난 며칠간 판다 월드 입장 대기시간은 5시간이 넘었다고 한다. 나는 엄두도 나지 않아 찾아가 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아리다.
아이바오가 등에 염증이 생기도록 품에서 놓지 않고 키운 귀한 첫아기. 방사장 나무를 오를 때면 전전긍긍하며 쫓아다니기 바빴고, 귀한 죽순을 나눠 먹고, 아직 먹을 때가 되지 않았는데도 워토우를 나눠주며 마주 보며 먹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엄마와 딸 그리고 친구처럼.
육중하게 커버린 딸내미를 아기 판다 다루듯 비행기를 태워주고 독립 훈련 중에 떨어져 있다 만났을 때 숨을 몰아쉬며 푸바오를 한참 동안 안고 있던 아이바오.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첫 아이를 먼저 독립시킨 아이바오에게 우리는 헤어짐을 배워야 할 때인 것 같다.
어느날부턴가 방사장 나무 기둥에 더 이상 푸바오가 써놓은 편지(마킹)가 없으면 아이바오도 푸바오가 이곳을 떠났다는 것을 알까? 아이바오와 사육사 할부지들이 푸바오에게 준 큰 사랑을 보며 우리 모두도 누군가의 푸바오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도 넘치도록 사랑받은 소중한 존재였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 휴지 반 통을 썼다. 헤어짐은 아쉽고 어쩔 수 없이 너무 슬프지만 우리 푸바오가 너무 인기가 많아서 중국으로 데뷔하러 가는 것이라고 바꿔서 생각하니 조금은 이별한다는 생각이 덜 들어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더 큰 사랑을 받을 것이기를 알기에.
할부지의 바람대로 쓰촨성에 너른 유채꽃밭을 볼 때면 할부지들, 엄마와 함께했던 추억들 잊지 말고 기억해 줘. 삭막한 일상에 행복을 줘서 고마웠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영원한 아기 판다 푸바오. 언제나 건강하고 명랑하게 행복한 판생을 살길 응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