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명진 Feb 15. 2020

풀과 나무의 영역 pt.2

몽골 고비를 다녀왔다.


괜찮아. 괜찮아.

마법의 단어 덕분에 고비의 가파른 모래언덕을 숨이 턱턱 막혀가며 기어오르면서도 그들의 주문을 따라 할 수 있었다. ‘주게레’인지 ‘죽을래’인지 모를 말을 입에 머금고서 한참을 올라가니 마치 파도가 치듯 놀라운 모래의 바다를 만나게 되었다. 한참을 사진도 찍고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아름다운 노을이 우리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잊을 수 없는 풍경을 보고 숙소에 돌아오니 또 다른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농담처럼 하는 ‘몽골에 가면 별 이불 덮고 자야지.’그 말을 정말 지킬 수 있게 된다. 어디든 그저 초원의 한 복판에 엉덩이를 깔고 앉으면, 뻗은 내 발끝에서 시작해 머리 위를 지나 등 뒤의 지평선까지 온통 별이다. 그리고 선명한 은하수가 그 가운데를 주욱 가른다. 살면서 여러 곳에서 별을 보아 왔지만 그렇게 아무 방해물 없이 별이 내 주변을 감싸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고비를 떠나 호수가 있는 엉깅강을 향해 가는 길에 바양작이라는 지역을 지난다. 바양은 ‘많은’, 작은 ‘자크’라 부르는 나무를 뜻하는데 해석하면 ‘자크 나무가 많은 곳’이라 한다. 정말 황무지 같은 지역을 지나면서 협곡이 나오고 자그만 나무가 사는 지역이 나왔다. 워낙에 건조한 곳이다 보니 나무는 침엽수처럼 잎이 가늘고 매서운 바람을 견디려니 키가 작아졌다. 설명하기를 1.5m 높이의 나무가 자라려면 반경 50m 주변에 뿌리가 뻗어있단다. 대단한 생에의 의지가 느껴진다. 워낙 건조한 탓에 화석이 많이 남아 공룡 화석 연구도 활발하며 뉴욕의 자연사박물관에 있는 대규모 공룡 화석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발굴되어 옮겨졌다.


내가 본 몽골은 과거의 영광은 많이 퇴색했고, 경제력이 그리 넉넉한 나라도 아니다. 빈부의 격차도 심할 뿐만 아니라 그렇다고 자원이 많거나 교육이 발달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현지의 사람들은 과거 대제국의 자존을 잃지 않았으며 여전히 자연을 숭배하고 전통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들이 마치 넓고 깊이 뿌리박은 그 나무들 같았다.


풀과 나무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나이테의 유무? 크기나 단단한 정도? 아니면 매번 이름을 찾아봐야 하나? 저 넓은 초원에는 키가 큰 풀이 자라고, 키가 작은 나무가 산다. 몽골에도 짧지만 봄이 오면 온 세상이 그들의 것인 것처럼 풀로 뒤덮인다. 여름까지 무성하게도 자란다. 나무는 그저 잎을 틔울 뿐이다. 어떠한 돌림병도, 반대로 대단한 유명세도 그것의 기세를 두려워하거나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겨울이 지나면 나무는 조금 더 자라 있고, 풀은 다시 새싹에 불과할 테니까.

어떤 차디찬 바람도 지나가리라. 어느 벌판의 고요한 짐승 몇 마리처럼 서로에게 코를 박은 채 그저 자연에 수그리며 원망도, 자책도, 무엇도 없이 가만히 가만히. 늘 그렇듯 서로를 끌어안으며, ‘주게레, 주게레’ 찬찬히 되돌려 놓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풀과 나무의 영역 pt.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