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되는 시간의 소회
상하이에서 김포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사업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내 돈 들여 해외전시에 참가하고 다녀오는 길이다.
중국어를 못하고 위챗페이도 없는 내가, 구글맵도 열리지 않는 그 곳에서 5일간 고군분투하다 국적기를 타니 한없이 상냥한 미소를 짓는 승무원이 담요를 가져다 준다. 기내식을 먹은 다음 잔을 만지작거리니 얼른 커피를 따라준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너 좀 부드러워진 것 같아.”
10 년만에 상하이에서 만난 친구가 내게 그랬다. 20대에는 조금 까칠했었다는 것이다. ‘어릴 때는 다 그런거 아냐’ 하고 넘기려다 문득 변한 내 자신이 느껴졌다. 가보고 싶었던 Shang Xia 플래그쉽 스토어 앞에서 찍은 사진을 프로필사진으로 바꾼다. 이럴 때 입으려고 오래전에 마련해 둔 상하이탕 청삼을 입은 나는 정말 부드러워 보인다.
정말 그렇다.
나는 여기서 먹는 음식이 다 맛있었다. 밥 때 되면 맞춰서 남이 해 주는 음식을 동료들과 먹으니 말이다. 사실, 둘째가 태어나고 지난 2년간, 혼자 있을 떄는 밥을 거의 챙겨 먹지 않았다. 아이가 돌아오기 전에 빨리 일을 처리하려 운전중 이거나,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넷플릭스라도 한 편 보거나 하려면 점심시간을 아껴야 한다.
또한,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혼자가 되어보니 그동안의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박람회장에서 호텔로 걸어오는 길에 동네슈퍼에서 신기하게 생긴 열대과일을 사려다 그간의 실패가 생각나 밀감만 몇 개 사서 아무도 없는 그러나 깨끗하게 정리된 방에 들어선다. TV를 켜니 알아들을 수는 없으나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장면들이 지나간다.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혼자 있을 일이 없는. 두 돌아이를 둔 엄마이니 이 혼자있음이 새삼 감격스럽다.
이왕 시작한 김에 계속 감사할 일이 생각난다.
이 일을 하면 늘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다.
계절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쏟아내는 새로움들에 취한다. 아트페어, 디자인박람회에서 집중적으로 새로운 것들을 접하면, 개별적인 정보보다는 전체 트렌드를 내 나름대로 해석하고 큰 흐름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 흙 속에 묻힌 진주 같은 예술작품을 알아보고 일을 추진할 수 있는 확신을 장착하게 된다.
물론, 사업을 하고는 예산의 제약에 그전처럼 스케일 큰 일을 마음대로 벌이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직장다닐 때 회사돈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올 때는 돈 걱정없이 일만 열심히 하면 되어 몸이 힘들어도 마음은 편했다. 내 주머니에서 모든 비용이 나가는 이번 해외출장은 계획부터 나를 옥죄여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다행히 본전은 치고 경험을 얻어 돌아가는 길이니 이 아니 행복한가.
정말 나는 쉽게 감사해하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