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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선 Jul 17. 2023

우붓에 온 판교엄마03

옵션이 있는 삶

나는 여기에 왜 왔던가.


우붓에 온 지 몇 주가 휙 지나갔다.

마지막 주가 되자 마음이 다급해진다.

아이 둘이 번갈아가면서 아프니 매일 학교에 불려가서

하교전에 달콤한 자유시간은 정말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


아쉽다.

동네에서 내가 처음 온 날 아시바를 세우기 시작했던 이름 모를 조형물도 점점 완성되어 가는 중이다.

집 앞 점빵에서 저녁마다 전통 춤을 배우는  동네 아이들의 실력도 날로 늘어간다.

축제가 다가오는지 마을 전체의 분위기도 고조된다.


우붓의 모든 것이 벌써 그리워 지려한다.

바이크를 달리며 우거진 밀림과 협곡의 서늘한 바람을 맞고 습기 가득한 공기를 음미하고 있자면

어느새  추수를 앞둔 논이 펼쳐져 이상하게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제까지는 집을 점점 잠식하는 개미들과 도마뱀, 매일 한 번씩 억수같이 내리는 비 모두 지겨워지려 했는데 도시의 밝은 밤이 그리워졌는데 말이다.



바람을 맞으며 숲길을 지나가다

나는 여기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노마드로 커리어를 이어가며 한국에 있는 집은 세를 주고 여기에서 살 수 있을 수도.


곧 중학생, 초등학생이 될 두 아이는 선행학습과 그보다 더 할 바뀐 입시제도를 향한 질주를 멈추고 새로운 세계관을 장착하고 여기 학교 티셔츠 문구처럼 “Future Leader” “Game Changer” 가 될 수도.

아니 최소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한동안은 남과 자신을 비교할 필요가 적어질지도 모른다.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으리라는
내가 보낼 일상의 다른 선택지를 열어 놓는 그 한 번의 마음만으로 신선한 바깥공기를 마신 듯 숨이 트인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나를 기다리는 클라이언트들, 아티스트들에게 돌아가고 수많은 안부와 정기적인 시간투자가 동반되는 관계들과 분초를 다투는 아이 픽업, 밤이면 최저가 검색에 다시 매몰될 터이지만.

세상 밖을 구경한 나는 더 이상 그전의 나와 같지 않을 터이다.


원하면 다른 곳에서 살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내 인생의 옵션은 내가 만들 수 있다는 이 당연한 사실을 깨닫기 위해 나는 이 곳에 온 것 같다.

두 아이 손을 잡고 비행기를 타고 햇반과 누룽지를 싸들고 여기 온 이유는 아마 그것이리라.


이미 충분하다.

마사지는 3번밖에, 요가클래스는 문턱도 못 넘고 혹 학교에서 아이가 아프다는 전화가 올까 봐 마음 졸였지만,

디지털 노마드 흉내만 내다 벌써 돌아갈 시간이 다 되었지만 말이다.



내가 자꾸 해외를 들락거리자 주변 사람들은 곧 중학생이 될 아이가 헛바람이 들어 이제 시작될 입시의 고난에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해 주었다. 많은 학습량을 소화하기 위한 엉덩이 힘 기르는 훈련을 미취학 아동의 필수코스로 여기는 한국교육에서 백번 지당한 말이다.

잘 견디는 아이, 포기할 줄 아는 아이로 훈련되는 과정에 반하는 행동이다.

그렇다고 교육의 판을 아예 바꾸어줄 재력도 자신도 내겐 없기에 이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엄마는 이렇게  가보련다.

길이 하나밖에 없다는 생각은 어쩌면 도달하지도 않은 미래에 스스로 한계선을 긋는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철이 들고 나서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고 포기한 일들을 지금 돌이켜보면 거의 근거 없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지금 트랙을 놓치면 대안이 없다는 생각, 대안이 있더라도 최선보다는 하등 한 대안일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긴 시간, 사로잡혀 있었다.


여섯 살, 열한 살 아이는 어떨까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는지 다 알지 못하지만 나도 모르는 길을 미리 정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저 살다가 새로운 일이 닥쳤을 때 상냥하게 인사부터 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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