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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사주 Oct 15. 2017

1990년대 뉴웨이브 ④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권교정

나예리와 박희정, 천계영에 비하면 확실히 대중적인 존재감은 떨어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1990년대 '새로운 감성과 스타일'을 말할 때 절대로 그 이름의 무게를 간과할 수 없는 작가가 있습니다. 누군가 감히 '한국 SF의 명맥이 끊겼다'고 말하는 그 시기에 대체 불가능한 감성과 유머 감각으로 꾸준히 자기만의 SF 세계를 펼쳐 보인 작가, 바로 권교정입니다. 



데뷔작| 1996년 《헬무트》(미완)

대표작|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미완) 《어색해도 괜찮아》 《정말로 진짜》 《셜록》(미완)



독특한 SF 설계자. 담백하니 섬세한 심리묘사의 대가. 독보적인 유머 감각의 소유자. 어시스트 없이 홀로 작업하는 솔리스트. 여전히 손수 스크린톤을 붙이는 낭만 카투니스트. 작가 후기에 자기 자신을 늘 나체로 등장시키는 노출증자(?)이자, 긴 하관과 처진 입꼬리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그림체를 일단 극복하고 나면 출구 없는 매력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마성의 작가. 홈페이지 ‘교월드’를 운영하여 ‘킹교’ ‘폐하’로 불리며, 자기 작품 및 관련 팬시 제품을 그 누구보다 적극 홍보한다하여 ‘세일즈교’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교월드 비긴즈 


1974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고, 대학에서는 수학교육을 전공했다. 남들이 ‘아마추어 만화동호회->잡지 데뷔’ 루트를 타는 동안, 짬짬이 그린 원고를 출판사 ‘대화기획’에 들고 가 단행본으로 데뷔했다. 그렇게 나온 작품이 1996년 중세를 배경으로 신과 인간과 종교에 관해 심도 깊은 토론을 전개한 《헬무트》다. 그러나 인세를 제대로 못 받는 바람에 단행본 4권 이후 원고작업을 중단했고, 그 상황에서 출판사가 IMF 금융위기 때 부도를 맞으며 기왕의 책마저 절판되었다. 물론 이 책들은 3년 후 ‘대원아이씨’에서 재발행되지만, 원고작업은 끝내 재개되지 않았다. 


중세를 배경으로 신과 인간과 종교에 관한 심도 깊은 토론을 전개했던 《헬무트》는 향후 권교정의 작품/인생 전반을 예고하고 있었다.  


만화/잡지/산업의 격변기에 발행된 《헬무트》의 운명은 향후 권교정 작품들이 맞는 운명의 예고편과 같았다. 1997년작 《어색해도 괜찮아》를 한번 보자. 호되게 입사식을 치른 뒤 권교정은 1997년 <메르헨, 백설공주의 계모에 관한>을 『이슈』『화이트』슈퍼만화대상에 출품, 가작에 당선된다. 이미 단행본을 냈는데도 공모전에 참여한 이유는, 큰 회사라면 상금과 고료를 잘 주겠지 싶어서였다. 이로써 활동방향을 잡지로 돌리나 싶었는데 웬걸. 그해 권교정은 《어색해도 괜찮아》를 대화기획에서 (또!) 낸다. 그래서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동화를 자기 식으로 해석한 단편들을 잡지에 내는 ‘동시에’ 《어색해도 괜찮아》를 작업한다. 하지만 단행본 1권이 나왔을 때 출판사는 부도가 나고, 책은 또다시 절판된다. 이듬해 ‘만화세상’이 재발행하지만 3권까지 내고 다시금 중단. 결국 《어색해도 괜찮아》는 2001년 『쥬티』에 연재를 재개하면서 간신히 갈무리된다. 


                          

                                   전대미문의 SF 세계를 열다


나머지 작품들도 비슷하다. 2000년 권교정은 SF《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를 『화이트』에 연재한다. ‘디오티마’는 인류 최초의 우주 함선이자 최신형 우주정거장으로, 플라톤의 『향연』에 등장하는 지혜로운 여인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함장은 죽음과 부활을 거듭하며 영혼을 진화시켜온 미스터리한 존재 ‘나머 준.’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는 나머 준과 제각각의 개성과 사연을 지닌 승조원 및 방문객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경유해 존재, 고독, 삶, 죽음, 사랑, 지혜 등 철학적인 질문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2001년 『화이트』 폐간-> 2005년 『허브』 재연재-> 2006년 『허브』 폐간-> 2007년 『판타스틱』 재연재-> 2009년 『판타스틱』 폐간을 거치며 단행본 4권까지만 낸 상태로 운항을 멈췄다. 2003년 『오후』에 연재한 『마담 베리의 살롱』, 2006년 만화전문 포털 ‘코믹뱅’에 연재한 《청년 데트의 모험》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미스터리한 함장 '나머 준'을 따라 인간, 존재, 고독, 삶, 죽음, 사랑 등 철학적인 질문으로 나아가던 함선 디모티마는, 적절한 연재처를 찾지 못하고 끝내 운항을 멈췄다. 


작품을 하는 족족 엎어지는 통에 권교정은 결국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작품(수입) 활동을 지속할 통로를 확보하려 애쓴 끝에, 2010년 『파티』에 《셜록》 연재를 확정했다. 앤솔로지 《순애보3》에도 참여했다. 개인지를 만들어 못다 맺은 작품들을 끝내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2011년 대장암 판정을 받으면서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되었다. 


고통스런 항암치료를 마치고 2013년 『파티』에 판타지소설 연재를 시작했으나, 이듬해 암세포가 폐로 전이돼 항암치료를 재개했다. 그 상황에서 기어코 완성해 낸 소설이 2015년 출간된 《더 킹》이다.  


1990년대 뉴웨이브 ①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나예리, 박희정


1990년대 뉴웨이브 ②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유시진


1990년대 뉴웨이브 ③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천계영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여성/만화/작가 중심의 한국 만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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