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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사주 Oct 19. 2017

2000년대 악전고투 ①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김은희

1990년대 중반, 만화/잡지 시장은 짧은 호황을 맞습니다. 하지만 한정된 시장에 매달 서른다섯 종의 비슷비슷한 잡지가 쏟아져나오면서 잡지사들은 슬슬 적자에 시달리게 됩니다.  상황에서 IMF 금융위기가 닥치고, 정부의 장려로 실직자들이 대거 도서대여점 사업에 뛰어들고, 우후죽순 들어선 대여점이 ‘만화책은 사는 게 아니라 빌려보는 책’이라는 개념을 심고, 독자들이 만화책을 스캔 떠 파일을 불법으로 공유하고, 와중에 청소년보호법까지 발효되면서 산업 전반은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습니다. 쪼그라든 시장, 그보다 더 줄어든 잡지 종류와 수, 독자의 취향과 요구(=판매)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 속에서 작가들은 하고 싶은 만화와 해야 하는 만화 사이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그 결과 수많은 작가들이 업계와 멀어지는데, 선 굵은 그림과 이국적인 서사, 화려한 일러스트로 데뷔 때부터 시선을 모았던 김은희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데뷔작| 1990년 <날개 달아주기> 
대표작| 《M&M》(미완), 《소년별곡》 《Guyz》 《히치하이킹에 관한 찬반양론》 《더 칸》(미완), 《불과 황금의 달》 



아름다운 그림과 화려한 색감으로 선 굵은 이야기를 시각화한 컬러 삽화의 제왕. 스크린톤조차 용납하지 않은 수작업의 장인, 대충이란 말은 사전에 없는 완벽주의자. 방망이 깎던 노인처럼 더디고 치밀하게 자기 세계를 구축했으며 대개는 은밀하게, 가끔은 대놓고 퀴어 분위기를 깔고 상처 입은 남성들의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KGB 출신 만화가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얌전하게 자랐다. 다소 소심했던 성격이 만화를 만나며 해방구를 얻었고, 고등학생 때 아마추어 만화동호회 ‘KGB(Kingdom of Great Babo)’를 결성하며 만화가로 좌표를 설정했다. 


데뷔는 1990년 『르네상스』에 <날개 달아주기>로 했다. 그 후 다른 많은 신인들처럼 단편을 좀 그리다가 1991년 『요요』에 첫 장편 《M&M》 연재를 시도했다. 북아프리카의 '모샤크'라는 가상 국가를 배경으로 천재 록 뮤지션 ‘마리아’와 CIA요원 ‘마고’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이국적인 풍광, 뮤직비디오 같은 연출, 두 남자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 과단성이 돋보였다. 그러나 『요요』부터 『마인』까지 연재하던 잡지가 잇따라 폐간되며 단행본 6권, 마리아와 마고의 베드씬을 마지막으로 멈춰 서고 말았다. 



'인기가 없다'며 잡지사가 《더 칸》의 연재 중단을 일방 통보하면서 작가와 독자, 에디터들 간에 대설전이 벌어졌다. 이로써 여성/만화/작가의 열악한 지위가 폭로됐다. 


그로부터 한동안 《소년별곡》 《히치하이킹에 관한 찬반양론》 《Street Generation》 등 음악+(학교)+소년+질풍노도의 작품들을 했다. 전반적인 평가는 ‘새롭고 신선하다’와 ‘연출과 데생이 어설프고 허세가 가득하다’로 엇갈렸다. 2000년에는 컬러 삽화집 《Indian Summer》를 냈고, 고양이에 대한 특별한 애정으로 《나비가 있는 세상》을 그렸다. 말 많고 탈 많았던 《더 칸》은 2004년 『윙크』에 연재했다. 



단행본 판매가 너무 저조해서 고료와 제작비를 댈 수 없다


당시 《더 칸》 연재 결정은 잡지사에게나 작가에게나 모험이었다. 현대물만 해왔던 김은희로서는 처음으로 시도하는 대하사극이었다. (애초의 기획은 원 세조 쿠빌라이칸의 외손자이자 고려 충렬왕의 아들인 ‘류가’와, 쿠빌라이칸의 증손자이자 훗날 원 무종이 되는 ‘카이샨’의 우정과 시련을 그리는 것이었다). 『윙크』로서는 이성애/학원/로맨스물이라는 안전한 선택지를 포기하고 검증 안 된 장르를 선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모험의 결과는 참담했다. 2005년 『윙크』는 ‘단행본 판매가 너무 저조해서 고료와 제작비를 댈 수 없다’며 《더 칸》의 연재 중단을 일방 통보했다. 


2008년 '코믹뱅'에 연재한 작품. 김은희는 어시스트도 없이 혼자 올 컬러로  연재하며 활동 재개를 알렸다. 


이후 김은희는 자의 반 타의 반 만화와 멀어졌다. 2006년 ‘MBC창작동화공모전’에 <종이고등어>를 출품해 가작에 당선되었다. 아는 사람 소개로 신문사 취재기자로 일했다. 2008년  월간지 『참 소중한 당신』에 소설 《돈 까밀로와 뻬뽀네》를 만화로 옮겼다. 그러다 그해 ‘코믹뱅’에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의 사랑이야기 《불과 황금의 달》을 어시스트도 없이 올 컬러로 연재하며 활동 재개를 알렸다. 근작은 2014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비활성 장르만화 연재 지원'을 받아 '카카오페이지'에 선보인 《아쿠아마린》이다.  



2000년대 악전고투 ②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김강원, 양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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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악전고투 ④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김민희, 박소희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여성/만화/작가 중심의 한국 만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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