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사주 Oct 30. 2017

2000년대 악전고투 ④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김민희, 박소희

1990년대 중후반 만화계의 대변화로 인해 성인 타깃의 잡지들이 대거 고사하고 ‘아동지’만 살아남습니다. 쪼그라든 시장, 그보다 더 줄어든 잡지 종류와 수, 나이 어린 독자의 취향과 요구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 속에서, 이른바 ‘성인 취향’ 작가들은 자의반 타의반 업계 밖으로 밀려납니다. 와중에 종이에서 웹으로 헤게모니가 이동하며 작가들을 더욱 곤경에 빠트리지만, 그 틈바구니에서도 재능 있는 신예들은 꾸준히 등장했습니다. 엉뚱한 캐릭터와 차분한 스토리 전개가 돋보이는 김민희와, 코믹 하이틴 로맨스사에 한 획을 그은 박소희 작가를 소개합니다.  



김민희


데뷔작| 2002년 <그 형에 그 아우>

대표작|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 《강특고 아이들》 《풀의 꽃》 《젤리장수 다로》



독특한 설정, 개성 있는 그림체, 시크한 유머감각, 쫀쫀한 연출력, 아이러닉한 캐릭터와 스토리라인의 작가. 어릴 때부터 만화를 봤고, 아마추어 만화동호회 ‘만화광’에서 실력을 쌓았다. 하지만 공모전에서는 번번이 떨어졌는데, 낙선작을 좋게 본 『슈가』 편집부가 단편을 의뢰하면서 2002년 데뷔했다. 


첫 장편 연재작은 2003년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 무작정 콘티를 만들어 찾아갔더니, 때마침 학원물이 많아 고심하던 『슈가』 편집부가 순순히(!) 연재를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몰락한 가상 왕국 르브바하프의 셋째 왕자 ‘반’이 조력자들과 함께 왕국 재건을 도모한다는 내용인데, 거창한 목표와 달리 유유자적하는 주인공, 가냘픈 외모에 괴력을 장착한 시녀랄지 징징대는 꼬마가 알고 보니 마법에 걸린 위대한 사상가랄지 하는 반전 있는 캐릭터, 심각한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유머, 그럼에도 진득하게 진행되는 스토리 등 향후 ‘김민희 세계’를 구축하는 대부분의 장치를 확인할 수 있다. 유쾌하고 따뜻한 매력으로 연재 내내 호평 받았으며, 2007년 동명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MBC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데뷔작서부터 김민희는 반전 있는 캐릭터, 심각한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유머감각과 진득한 스토리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첫 연재를 성공적으로 마치자 후속작들은 비교적 쉽게 지면을 얻었다. 2005년 웹진『슈가』에 《풀의 꽃》을 연재했고, 2007년 『윙크』에 《강특고 아이들》을 실었다. 강원도 산기슭의 초능력자 양성학교에 전국 각지에서 차출 된 아이들이 모여 살면서 매일처럼 벌이는 왁자지껄한 소동을 특유의 코미디 감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강특고 아이들》이 끝나자마자 《젤리장수 다로》를, 《젤리장수 다로》를 마치자마자 《미드나잇 파트너》를 시작했다. 다리에 장애가 있는 여학생이 담임선생과 함께 이인일조로 밤마다 악령(?)을 퇴치하는 퇴마물로, 2014년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되었다. 하지만 너무 정신없이 달려온 탓일까. 연재 중 건강이 크게 나빠져 휴재를 거듭하다가 2017년 초에 간신히 끝맺었다. 



박소희


데뷔작| 2000년 <영혼결혼식>

대표작| 《궁》 《리얼퍼플》 



특색 있는 소재, 예쁜 그림체, 공들인 배경, 화사한 패션 센스로 만화계에 자기 영역을 구축한 작가. 경남 김해 출신으로 왕릉 및 고궁을 지근거리에 두고 자라며 훗날의 자양분을 얻었다. 어릴 때부터 만화를 봤지만 만화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다가, 고3때 진로를 결정하면서 공주대 만화예술학과에 진학했다. 


데뷔는 2000년 『나인』에서 했다. 잡지 성향이 성향인 만큼 첫 장편 연재작 《리얼퍼플》까지는 무겁고 진지한 소재와 분위기의 작품이 많았다. 그러나 연재매체를 『윙크』로 옮긴 후 ‘한국이 만약 입헌군주국이라면?’이라는 가정 하에, 명랑 쾌활한 평민 ‘채경’과 까칠한 왕세자 ‘신’의 학원 러브스토리 《궁》을 그리면서 억눌러두었던(?) 개그 욕망을 마음껏 발산했다. 참신한 설정, 안전한 이야기, 시도 때도 없이 치고 들어오는 유머로 박소희는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고, 만화는 자체로 일본, 대만, 베트남 등지로 수출되는 등 인기를 모았다. 그 힘으로 2004년 윤은혜, 주지훈 주연의 동명 드라마가 제작되었고, 드라마가 초히트하면서 국내에서는 (심지어) 뮤지컬이, 베트남에서는 자체 드라마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만약 한국이 입헌군주국이라면? 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학원 로맨스물로, 국내외에서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편집부의 요구 때문에 끝내고 싶어도 못 끝낸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장기 연재했던 《궁》은 2011년 대장정을 마쳤다. 오랜 연재로 지쳤는지, 높은 인지도 탓인지 한동안 박소희는 《살롱H》 《궁 외전-별신의 밤》 등 브랜드 기획만화를 웹툰으로 선보이다, 2015년 “네이버 한국만화거장전: 순정만화특집”에 <너를, 담다>를 게재했다. 간만에 『나인』 시절 정서로 되돌아가 개그컷 없이 그린 창작만화였다. 2017년 현재 저주로 얽힌 세 가문의 이야기 《공방의 마녀》를 ‘다음웹툰’에 연재 중이다. 



2000년대 악전고투 ①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김은희


2000년대 악전고투 ②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김강원, 양여진


2000년대 악전고투 ③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조주희, 한승희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여성/만화/작가 중심의 한국 만화사

작가의 이전글 2000년대 악전고투 ③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