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도 전통주를 섹시하게 마시고 싶은 세 여자의 술 투어, 두 번째
우리 술 공부를 빙자한 세 여자의 술 투어 [우리_술 한 잔 할까?]. 그 첫 번째 이야기는 광화문 '월향'에서 시작한다. 첫 주제가 월향이라고 하면 '또?'라고 잔소리 좀 들을 줄 알았더니, 웬일인지 이 두 여자가 조용하다. 광화문점이 생긴 지 반년이 넘었는데. 주구장창 이태원점으로만 가봤지 박 언니도 신쏘도 이번이 처음이란다.
이번 시리즈의 첫 주제를 월향으로 잡은 데에는 나의 지지가 한몫 톡톡히 했다. 세월아 내 월아 막걸리를 퍼부어대던 시절, 그 주 무대(?)가 바로 월향이었으니까. 잘 빠진 레스토랑에서 우리 술이라니, 월향에서 전통주 칵테일 한잔 마셔주는 게 멋이라고 굳게 믿었다.
게다가 최근 어느 기사에서 광화문과 종로 일대의 뜨거운 남자들이 광화문 월향에 모인단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 회사 바로 앞이 그토록 뜨겁다는데 가주는 것이 예의지. 암, 그렇고말고.
잠깐 이곳에 대해 집고 가볼까. 광화문 월향은 조선일보 미술관 건물 맞은편에 위치해있다. 고급스럽고 현대적인 인테리어에 전통 문살, 한국화처럼 전통적 디자인 요소가 배치된 아주 세련된 공간이다. 가게 곳곳에는 다양한 종류의 전통주가 배치되어 있는데, 인테리어 때문인지 막걸리가 와인 못지않게 꽤나 관능적이게 느껴진다.
월향은 우리 술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베이직 코스로 추천할만하다. 마시기 어려운 술보다는 보편적으로 인기가 높고, 쉬운 지역 막걸리를 판매하고 있기 때문. 이 중에서 아무거나 시켜도 무조건 성공일 테지만, 결정 장애를 겪고 있더라도 괜찮다. 우리 술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춘 직원들이 잔뜩 주둔하고 있으니까.
술을 앞에 두고, 주저리 말이 많았다. 힘주고 있던 복부를 달래주고, 옴팡지게 즐겨나 볼까.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 쭈욱.
채소 막걸리라… 월향에서는 지역 막걸리 외에도 월향이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하고 있는 막걸리가 있다. 채소 막걸리도 월향 막걸리 시리즈 중 하나. 그것도 최근에 나온 막둥이란다. 젊은 여성들을 위해 만들었다는데, 살 걱정 안 하고 원 없이 마셔도 될 것 같은 이름이다. 열혈 다이어터의 마음에 불을 지핀다. 활활.
채소 막걸리는 정선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곤드레를 가지고 만들었다. 푸르스름한 빛이 돌면서 단맛이 적고, 곤드레 특유의 쌉싸름한 맛이 강한 편. 막걸리 군내가 거의 느껴지지 않고 깔끔하다. 특히 탄산이 적다는 점이 제일 마음에 든다. 때문에 목 넘김도 부드러워 자꾸자꾸 들어가는 데다가, 무엇보다도 남자를 앞에 두고 마셔도 트림 걱정이 없다는 게 핵심!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도 산뜻한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는 고마운 술이다.
안주는 월향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호감전' 한입. 누가 지었는지 참 이름 하나 기가 막힌다. 특히 초록색 라벨의 채소 막걸리와 함께 있으니, 이거 원. 맘에 드는 사람에게 '나 너에게 그린라이트예요'라고 보내는 은근한 신호 같잖아. 그래서 박 언니도 신쏘도 호감전과 채소 막걸리, 이 조합이 특히 마음에 드는 이유란다.
호감전은 튀긴 것 마냥 바삭바삭하다. 감자와 애호박을 채 썰어 만들었는데, 재료가 그득그득하게 들어가 씹는 맛이 죽여준다. 여기에 중간중간에 박혀있는 새우는 새우 살 특유의 톡톡 씹히는 식감을 느낄 수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매운 새우깡이랑 비슷한데, 이게 딱 막걸리를 부르는 맛이다. 아주 꿀꺽꿀꺽 잘도 들어간다.
마지막은 '포천 일동 1932 새싹 땅콩 수제막걸리'로 선택했다. 채소 막걸리만 마시면 너무 섭섭하니까. 게다가 묵직한 막걸리도 마셔보면서 가벼운 채소 막걸리와의 맛 차이를 비교해보고 싶기도 했고. 마음으로는 가라앉은 부분만 숟가락으로 퍼먹고 싶지만, 이 녀석을 위한 막걸리 전용 잔이 있단다. 우린 프로 애주 가니까 품위를 위해 전용 잔에 따라 마시는 것으로.
음, 그래서 포천 일동 1932 새싹 땅콩 수제막걸리가 무슨 맛이냐고? 나의 초딩 입맛에 딱 맞는 맛이다. 우울했던 기분까지 한껏 들뜨게 만드는 달콤한 맛과 입 안 가득 묵직하게 맴도는 마무리. 마치 휘핑크림을 먹는 것처럼 달짝지근하고 부드럽다. 게다가 다 마시고 나면 '딸랑' 방울이 울리는 전용 잔에 마시니까 뭔가 더 고급 지고, 세련된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함께 먹은 김치찜과의 조합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신쏘와 박 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콩국수에 김치를 얹어 먹는 느낌이란다. 꽤 맛있다는데, 나는 글쎄~ 각자는 훌륭하지만 둘을 함께 먹는 건 추천하고 싶지 않다. 특히 고기와는 더더욱. 부드럽다고 생각했던 막걸리가 고기를 더하니 이거 참 부담스럽다.
분명 해가 쨍쨍한 오후에 시작했는데, 새싹 땅콩 수제막걸리까지 마시고 나니 어느덧 해가 슬금슬금 지고 있다. 막걸리 두병도 마셨겠다. 이제 제법 흥도 올랐을 테고, 촬영이고 뭐고, 다 내려 둔 채 본격적으로 즐겨야지. 지화자 좋다.
장기자: 양조장 취재 몇 번 다녀온 거로 '나 술 좀 알아.' 폼 좀 잡다가 큰코다친 애송이 기자이다. 목표는 프로 애주가! 전통주 공부를 핑계로, 두 여자를 살살 꼬셔 신나게 술 투어를 다니고 있다.
신쏘: 듣기에도 생소한 전통주 소믈리에이다. 맨날 전통주만 마실 것 같지만, 주량에 대해 물어보니 '맥주 다섯 잔'이라고 얘기하는 우리의 드링킹 요정. 단순히 술이 좋아 시작한 게 눈 떠보니 업으로 삼고 있다.
박언니: 자타공인 애주가. 술 좋아하는 고주망태 집안에서 태어나 '난 절대 술은 안 마실 거야'라며 주문처럼 다짐했다지만, 막상 성인이 되어서 가장 먼저 사랑하게 된 것이 술이었단다. 느지막하게 열공모드에 돌입, 얼마 전에는 직접 일본으로 날아가 사케 소믈리에 자격증도 따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