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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 술 한잔 할까 Nov 16. 2016

사실은 나만 알고 싶은 곳, '옳은'

누구보다도 전통주를 섹시하게 마시고 싶은 세 여자의 술 투어, 네 번째

"장 기자는 어떤 술을 가장 좋아해?"


이런 질문을 들을 때면 정말이지 할 말이 없어진다. 자신만의 확고한 술 취향이라 할 것도 없으니까. 물론, [우리_술 한잔 할까?]를 시작하면서 최근에는 전통주를 주로 마시지만. 사실… 나란 여자, 참 분위기에 약한 터라 그때그때 기분 내키는 대로 술을 고르는 편이다. 분위기에 따라 프랑스 와인을 마시다가도 곧바로 송명섭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켤 수도 있는 그런 사람.

좌측부터 박언니, 장기자, 신쏘

장소 선정에 있어서도 별반 다를 게 없지. 어떤 날은 시끌벅적한 삼겹살 가게에서 희석식 소주를 냅다 마시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허름한 파전 가게에서 막걸리 한잔 들이키며 친구들과 진탕 수다를 풀어내기도 한다. 즉, 그날의 기분에 따라 어디서, 무엇을 마실지가 크게 좌지우지되는 편이다. 이렇다 보니 주종이 다양한 곳을 선호하고, 가게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중요하게 여긴다.


"무엇이라도 다 옳은 '옳은'"


이번에 소개할 '옳은'은 익선동에 위치한 작고, 소박한 펍이다. 우리의 드링킹 요정 신쏘의 비밀 아지트이기도 한데, 규모는 작지만 다양한 주류가 탄탄하게 준비되어 있고, 그때그때 바로 만든 맛깔나는 안주를 내는 멋진 곳이다.

대로에서 떨어져 골목으로 들어서야 발견할 수 있는 작은 가게

이곳에서는 전통주를 비롯해 포트와인, 수제 맥주, 위스키 등 다양한 주종을 판매하고 있다. 일전에 '월향'이 전통주의 멋과 맛을 알려준 완벽했던 첫사랑이라면, '옳은'은 부족하지만 이상하게 눈길이 가는 남자 사람 친구(이하 남사친)랄까? 섹시하거나, 근사한 멋은 없지만 꾸준히 발길을 끈다.


"셰프를 사로잡은 치명적인 매력, 진양주'


와인, 위스키, 맥주 등… 다양한 술을 파는 '옳은'이지만, 이곳에 왔다면 꼭 마셔봐야 할 술이 바로 '진양주'이다. 이 술에 반한 송방주 오너 셰프가 지금의 옳은을 꾸리게 됐으니까. 진양주는 쌀과 누룩 그리고 물로만 빚은 술이다. 이외에는 어떠한 첨가물도 들어가지 않는단다. 사용한 재료만 살펴보면 청순하기 그지없는데, 훈남 셰프를 단번에 사로잡은 술이라니… 당연히 일 잔 하는 게 예의지.

진양주와 해물떡 알리오 에 올리오

잔에 졸졸졸 따라보니 약주 특유의 맑은 황금빛. 색깔마저도 화사하고 청순하다. 입에 갖다 대는 순간 향긋한 과실향과 꽃향이 물씬. 꿀이라도 찍어 먹은 듯이 입 안 가득 달콤함이 뚝뚝 떨어진다. 이건 그냥 차원이 다르다. 마냥 가볍고, 청초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묵직하게 가라앉아 서서히 온몸을 달콤하게 채워 나간다. 촘촘하고 부드럽다.


입가심은 '해물떡 알리오 에 올리오'. 각종 해물과 떡에 마늘과 올리브 오일을 곁들인 이탈리아 요리이다. 향이나 맛이 강한 재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담백하고, 부담이 없는 편. 묵직하니 길게 여운을 남기는 진양주와 밸런스가 제대로다. 아무튼 나는 진양주에 취향 저격. 탕탕. 부드러운 단맛 덕분에 술을 잘 못하거나, 가볍게 취하고 싶은 여자들에게 추천할만하다.


"오빠라고 부르고 싶어, 이강주" 


진양주만 마시고 떠나기엔 아쉬우니까. 고민 끝에 겨우 고른 술이 바로 '이강주'. 박 언니가 만날 때마다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 술로, 전통주 중에서는 꽤나 널리 알려진 유명인사다. 누룩과 멥쌀로 빚은 약주를 증류해서 만드는데, 소주에 배와 생강, 울금, 계피를 넣는다.  

이강주와 꿔바로우

이강주는 뭐든지 잘 하는 부잣집 도련님 같은 데가 있다. 족보 탄탄한 고급 약소주이니 출신도 훌륭한 데다가, 톡 쏘는 생강과 시원하게 퍼지는 계피 향은 어쩐지 시크하다. 이날 우리가 마신 이강주는 알코올 도수 19도짜리. 희석식 소주를 생각하면 엄청 독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겠지만, 막상 마셔보면 미각 세포 하나하나 살살 달래 가면서 부드럽게 쏟아져 들어온다. 고급이 괜히 고급이 아니다.


이강주에는 돼지고기를 쫀득하게 튀겨낸 '꿔바로우'를 준비했다. 특히 박 언니가 유난히 좋아했던 메뉴 구성인데, 박 언니에 따르면 이강주는 돼지고기랑 먹어야 제대로 마시는 거란다. 옳은의 꿔바로우는 달콤한 소스에 고소한 아몬드 슬라이스가 듬뿍. 게다가 쫀득하고 바삭바삭한 식감이다. 분명 맛은 있지만 계속해서 먹기엔 조금 물릴 수도 있는데, 이때 이강주로 말끔하게 싹~ 궁합이 예술이다.

한바탕 먹고, 마시고 나니 박 언니도 신쏘도 배가 부르단다.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수다를 떨어 볼 시간. 술 한잔 기울이며, 일상에 지친 하소연 한 자락 해야 제맛이지. 아, 오늘도 일찍 집에 들어가긴 글렀다.




<세 여자는 누구?>

장기자: 양조장 취재 몇 번 다녀온 거로 '나 술 좀 알아.' 폼 좀 잡다가 큰코다친 애송이 기자이다. 목표는 프로 애주가! 전통주 공부를 핑계로, 두 여자를 살살 꼬셔 신나게 술 투어를 다니고 있다.

신쏘: 듣기에도 생소한 전통주 소믈리에이다. 맨날 전통주만 마실 것 같지만, 주량에 대해 물어보니 '맥주 다섯 잔'이라고 얘기하는 우리의 드링킹 요정. 단순히 술이 좋아 시작한 게 눈 떠보니 업으로 삼고 있다.

박언니: 자타공인 애주가. 술 좋아하는 고주망태 집안에서 태어나 '난 절대 술은 안 마실 거야'라며 주문처럼 다짐했다지만, 막상 성인이 되어서 가장 먼저 사랑하게 된 것이 술이었단다. 느지막하게 열공모드에 돌입, 얼마 전에는 직접 일본으로 날아가 사케 소믈리에 자격증도 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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