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ll Jan 18. 2020

쇼호우 언덕의 청소부

바람이 불지 않는 밤에는 언덕 아래 집들은 창문을 꼭꼭 닫았다. 덧창까지 꼭꼭 닫은 앞에 두꺼운 커튼을 길게 드리우고도 사람들은 이불을 귀까지 덮어쓰고 잠이 들었다. 행여 매트리스 저 아래에서 쿵 쿵  땅이 울리는 소리가 울리거나 찬장 위의 그릇들이 절그럭 절그럭 서로 부딪으며 흔들리면 뒤척이며 돌아눕곤 했다.


하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쿵 쿵 덜컥덜컥


그럴때면 어둡지 않은 밤에도 더듬더듬 손으로 세상을 만지는 노인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잠과 잠 사이를 건넜다.


쿵 쿵 쓰억쓰억


덜 닫힌 커튼 사이로 천개의 나뭇잎이 부벼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면 설피 잠이 깨려던 아들도 고른 숨을 되찾았다.


드물지만 잊히지 않을만큼 자주,

바람이 없는 밤에 쇼호우 언덕은 쿵 쿵 흔들리고 쓰억쓰억 커다란 빗자루로 훑어졌다.


언덕은 세상의 모든 바람이 모든 곳으로부터 불어와 머무는 곳이다.

바람들은 온갖 곳의 먼지를 실어왔다.


일년 내내 눈이 쌓인 산봉우리 사이로 지나는 열차 뒤로 일어난 바람은 검고 흰 연기를 실어왔다.

벌목장의 앳된 톱밥과 미처 열차 지붕에 매달리지 못한 새똥냄새도 섞여있었다.


파도가 일지않는 좁은 바다에서 늘 동쪽 도시와 서쪽 해안만 오가는 배는 바람에 푸념을 늘어놓았다.

요리장이 하루에도 꼬박 세번 수십가지 요리를 차려낼 때마다 잊지않고 바람은 메추라기 구운 버터향을 담아왔다.


새벽 세 시에도 차들이 줄창 오고 가는 커다란 도시에서 바람은 고층빌딩 사이사이를 휘돌아 나오며 벽에 갈긴 오줌 냄새와 철가루 묻은 피냄새를 실어왔다.

아침저녁 노동자들이 피우는 담배연기도 가득 담았다.


한시간마다 생명 없는 빈 달걀들이 쏟아지는 닭장과 화가 잔뜩 난 채로 다닥다닥 붙은 궁둥이를 서로 밀어대는 돼지들 틈에도 간신히 바람이 불었다.

깃털과 사료와 서글픔이 잔뜩 실린 바람은 쇼호우 언덕 위로 뭉텅뭉텅 내려앉았다.


커리가루와 강 모래, 싸구려 화장품과 집먼지진드기가 켜켜이 쌓였다.

면도기에서 털어낸 잘게 깎인 수염과 분필가루, 송화가루, 의자가 바닥에 끌리며 카페트를 갈아댄 보푸라기도 한몫 했다.


그리고 마침내 바람이 없는 밤이면 청소부는 커다란 빗자루를 들고 와 조심조심 먼지를 쓸어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언덕은 석양이 보이지 않을만큼 높아졌다가 게으른 아가씨들도 폴짝 넘을만큼 낮아졌다.


청소부는 쿵 쿵 걸음을 옮기며 쓰억쓰억 먼지를 몰아갔다.

비질에 밀릴 때마다 먼지는 반짝이듯 사라졌다.


먼지는 한데 모였다 흩어지고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부서졌다.


청소를 마치고 동이 터올 무렵이면

빗자루를 쥔 굵고 커다란 손 위로 땀방울이 눈물처럼 뚝 뚝 떨어졌다.

그리고 청소부는 올 때처럼 간 곳없이 떠났다.


다시 바람이 불어왔다.



작가의 이전글 피터의 작은 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