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그리고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소식을 듣고, <채식주의자>와 <작별하지 않는다.> 두 책을 샀다.
나와 같은 마음인 사람들이 많았는지 배송은 오래 걸렸다. 그 와중에 독립 서점에서 대형 서점이 한강 작가의 책으로 횡포를 부리며 자본을 독식한다는 성명서를 보았다. 그리고 SNS를 통해 이 소설들의 방향을 맥락 없이 비판하며 유명세에 편승하려는 어느 작가의 노력도 목격했다. 혹자는 읽을 생각도 없이 굿즈로 책을 사는 사람들을 꾸짖었고, 한 문화 평론가는 문화의 발전은 ‘허영’으로 이루어진다며 이런 세태를 반겼다. 유래없던 한국 문학의 세계 문학상 수상은 이런저런 혼란을 일으켰고, 그렇게 수많은 현상과 사건들을 동반하며 시간은 결국 흘러 우리 집 앞에는 책날개에 작가의 노벨상 수상에 대한 문장이 적힌 두 책이 배송돼 있었다.
채식주의자
총 3부로 이루어진 책을 읽으며 하나의 줄기가 된 것은 ‘고통’이라는 키워드였다. 고통이 글이 된다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싶었다.
참혹하고 비참한 꿈을 꾸고 나서 육식을 하지 않는 영혜. 그런 그녀에게 고기를 먹을 것을 강권하는 가족들. 탕수육을 입에 강제로 넣으려는 그녀는 과도를 들어 결국 자결을 시도한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고기를 씹고, 유두를 가리기 위해 브라를 입는 행위가 그녀에게는 목숨을 저버리고 싶을 정도의 고통이라는 것. 너무 아프다 못해 정신을 놓아버린 영혜와 그러한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해 결국 떠나버린 그녀의 남편으로 1부는 마무리된다.
피투성이가 된 영혜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향했던 그녀의 형부는 처제인 영혜를 보며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을 품는다. 예술과 외설 그리고 욕망. 그 경계에서 그는 고통스러워한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감행한 모든 행위들을 어디까지 이해받을 수 있을까. 하지만 예술가들이 그 욕망을 발산하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존재의 이유가 남아 있을까. 결국 사회 통념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예술을 해버린 그에게 남은 것은 고통스러운 형벌뿐이다.
이 모든 과정을 목격한 영혜의 언니는 책임의 고통을 겪는다.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일까. 남편이 깨버린 금기로 파탄나버린 가정과 본인을 식물로 여기며 식이를 거부하는 동생. 자신의 아이와 동생에 대한 책임감으로 그녀는 겨우겨우 하루를 살아가지만 그녀는 무덤을 생각할 때 오히려 마음이 편안할 정도로 삶은 그녀에게 고통일 뿐이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곱씹을수록 고통스러운 이야기였던 채식주의자. 혼란을 반복하다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왜 이야기가 고통스러우면 안 되는 걸까? 행복과 교훈의 단면만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섬세한 묘사와 표현이 마음을 서늘하게도 냉담하게도, 조마조마하게도 만들었던 책이다. 왜, 도서관에서 몇 차례씩이나 이 책을 들었다 놓았는지 떠올랐다. 다시 읽으려면 용기가 또 필요하겠다.
작별하지 않는다.
죽음은 작별을 의미할까. 책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좌와 우. 그 정치적 허상이 만들어낸 비극은 70년 전 제주에서 수많은 죽음을 만들어냈지만, 그 죽음은 아직도 우리와 작별하지 못했다. 그때의 총살과 수몰은 대를 잇고 내려와 계속해서 고통을 만들어낸다. 마치 잘린 손가락을 봉합한 신경을 자극하는 바늘처럼.
전체 이야기의 10%는 현실, 90%는 현실인지 꿈인지 아니면 죽은 자의 세상인지 모를 어떤 장소로 구성돼 있다. 화자인 ‘나‘가 고립되어 매일 유서를 쓰고, 손가락이 잘린 ’인선‘을 만나는 것은 현실이지만, 돌연 ’인선‘의 새를 돌보기 위해 인선의 제주 중산간 집에 도착한 이후부터의 이야기는 현실인지 아닌지 모를 어떤 세계에서 이어진다. ’나‘는 새떼와 같이 휘날리는 거친 눈발을 헤치고, 건천에서 구르며 가까스로 인선의 집에 도착했지만, 인선의 새는 죽어있었다. 그러나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인선의 새는 살아난다. 그리고 서울 병원에서 손가락 봉합수술을 받은 인선도 멀쩡한 손가락으로 등장해 ’나‘에게 하나씩 하나씩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 지금은 사라져 버린 동네에 대한 자료를 공급한다.
인선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겪은 그 모든 죽음은 촛불로 밝혀져 ’인선‘에게 그리고 ’나‘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어쩌면 이 책을 읽은 나에게 까지 전해졌을지도 모른다. 구덩이 앞 오와 열을 맞춘 사람들에게 총을 난사해야만 했던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영 이 죽음들과 작별하지 못할 것이다. 그럴 각오로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이 모든 아픔과 고통을 끌어안고, 대대손손 이 죽음들을 외면한 죗값을 치르면서.
아름답고 섬세한 문체로 문장은 쉽게 읽혔지만, 쉽게 책장이 넘겨지지 않았다. 고통과 참혹함, 슬픔에 가까운 이야기들. 이런 이야기들은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할까. 읽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까. 눈 오는 한라산의 나무들을 보면 이제 나는 더 이상 아름다움만 느낄 수 없게 돼버렸다. 그 땅 위에서 뉘어진 시신의 얼굴에 얼어붙은 눈송이가 떠오를 것만 같다. 책의 마지막 장을 읽고, 폭력을 목격하고도 뒷골목으로 숨어버린 비겁한 겁쟁이가 된 것 같은 마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