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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chic Aug 25. 2022

나의 첫 워케이션

일하는 내가 괜찮길 바라며

망했다.

작년 여름, 회사를 다니기 위해 일하고 싶지 않고, 일하기 위한 회사를 다니고 싶다며 호기롭게 옮긴 스타트업이 망해버렸다. 최소 3년은 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만 1년 만에 좋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우리 회사의 사업과 전혀 무관한 사업을 하는 곳에서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했고, 그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약 두 달 정도, 인수될 회사의 일을 하다가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찌든 뇌를 세척할 쉼과 어떻게 살지, 무엇을 하며 살지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직처도 없고, 사유가 뚜렷하지 않은 퇴사의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결국 마지막 근무일을 정했다.


회사의 배려로 업무 종료 전 2일간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달걀흰자, 경기도민이라면 빨간 버스를 타고 잡월드로 들어가는 그 울적한 기분을 알 것이다. 단 이틀이지만 그 쿰쿰한 기분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며, 요즘 트렌드인 워케이션을 체험해보기로 했다. 워크와 베케이션의 합성어인 워케이션. 도저히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단어들이 합쳐진 이 합성어는 여행지에서 일하고, 휴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글로벌 기업에 다니며 풀 재택을 할 수 있는 친구와 강릉의 코워킹 스페이스와 근처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새벽녘 열심히 운전해 출근시간 전 코워킹 스페이스에 도착했다. 드디어 워케이션의 시작. 코워킹 스페이스는 쾌적한 공간과 책상, 프린터, 냉장고, 커피머신 등이 잘 갖춰져 있었고, 업무 후 방문하기 좋은 강릉의 음식점이나 관광지를 알려주는 콘텐츠도 제공되고 있었다. 우리는 집중해서 일하고 근처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는 바다나 지역 명소를 들렀다. 그날의 할 일을 다 정리해놓아야 다음날의 미니 여행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무척 강한 집중력을 발휘하며 업무를 처리했다.


같은 업무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사무실 환경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100이라고 한다면, 워케이션에서의 스트레스는 40 정도로 느껴졌다. 업무에 대한 압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금방 해소할 수 있었고, 쉽게 마음을 환기할 수 있었다. 익숙한 업무와 새로운 자극들이 만나 마음속 뭔가의 균형이 맞춰졌다. 일에서의 변화도 컸지만 여행에서의 변화도 컸다. 낮에는 정갈하게 정신을 일에 집중하고 늦은 오후부터 즐기는 여행의 즐거움은 A에서 B로 B에서 C로 점처럼 이동하는 여행의 표면적인 쾌락보다 좀 더 깊이가 있었다.


물론,  자체에 대한 만족도와 기쁨이 가장 본질이라는 점은 변함없다. 나는   부분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그래서 역동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소모시키고 지치게 했다. 이번 짧은 워케이션은 나를 비우기보다는 채우며 일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게 했다.  자신의 내면적인 생태계 균형을 맞추며 일할  있는 환경, 짧고 굵게 화르륵 열정을 태우기보다는 오랫동안 은은히 의욕을 데우며 일하는 방법, 도전과 성취의 기쁨을 얻을  있는 해볼 만한 .  세가지의 균형점이 내가 앞으로 찾아야하는 문제임에 틀림 없다.


궁극적으로는 일하는 내가 괜찮았으면 좋겠다. 일과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괴로워 '인간이란 무엇인가. 일이란 무엇인가. 돈이란 무엇인가'라는 공허한 외침을 반복하는 나에게서 벗어나 일하는 내가 꽤 괜찮다고 느끼는 내가 되길. 인생은 참으로 고행이다. 그러나 삶이 뒤죽박죽 엉망진창 버무려져 무엇이 되든 잘 끝까지 살아보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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