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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chic May 26. 2023

자신과 씨름하고 있는 모든 이에게

한동일 <라틴어 수업>

공부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누군가의 요청을 받고, 데드라인을 맞추고, 목표를 달성하고자 고군분투하며 무엇인가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나의 하루가 이제는 지식을 익히고 외우고 습득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통장에 숫자가 찍히던 생활에서 벗어난 범주를 살고 있다는 것이 가끔은 아득히 두려워지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채우는 이 시간이 매우 소중하다. 자발적인 의지로 공부를 하는 것은 10년 전 대학원을 졸업한 후 처음이다. 지금 내가 하는 공부는 특정한 목표가 없다. 어떤 점수를 만들거나 자격을 얻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그동안 회사를 다니며 시간이 부족해 열심히 해보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을 해보기 위해 하는 '그냥 하는 공부'라 더 특별하게 여겨진다.


책 <라틴어 수업>은 내가 공부하는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책이다. 일하는 삶에서 공부하는 삶으로의 스위치는 결코 쉽지 않았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던 나는 투자 유치 실패로 하루아침에 조직이라는 테두리에서 밀려나게 되었고,  불안과 우울,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괴로움, 커리어가 망가질 것 같은 공포에 휩싸였다. 근무했던 스타트업의 반복된 실패는 과거에 대한 미련과 나 자신을 향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내 마음은 절망으로 가득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혼란 속에 하루를 버텨나가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남편의 두 달 미국 파견이 잡혔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를 따라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한국을 벗어나면 좀 나아질까 싶은 마음에 그의 파견에 동행했지만, 아침마다 총기 난사 사건이 보도되고 거리마다 홈리스와 마약 중독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황량한 미국에서의 생활은 나를 더욱 절망의 골짜기로 인도했다. 그때 집어든 책이 바로 <라틴어 수업>이다. 짐을 싸던 중 지루한 비행시간을 견딜 겸 책장에 꽂아두었지만 읽지 않은 책을 무심코 골랐고, 그때 낚싯대에 걸려 올라온 책이었다. 라틴어에는 하나도 관심이 없었지만, 책의 첫 장에서 좋아하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인용된 것이 마음에 들었다. 활자가 많으니 우울함으로 가득한 부정적인 생각을 방어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라틴어 수업>은 나와 함께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아침마다 남편이 출근하면 나는 조식 서비스가 끝난 레지던스 호텔 식당 테이블에 앉아 이 책을 읽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책장을 넘겼지만, 곧 연필을 들고 줄을 치기 시작했다. 라틴어의 문구 혹은 그리스 로마인의 어떤 생활이나 풍습에서 시작한 챕터의 내용은 인간에 대한 성찰과 삶의 의미로 이어졌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그동안 무엇을 놓치며 살았는지, 나 자신과 얼마나 격렬하게 싸워왔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동사의 경우, 변화가 160여 개에 달하고 명사는 단, 복수 별 무려 1 격에서 5 격까지 있는 난이도 극강인, 하지만 현재는 잘 통용되지도 않는, 어떻게 보면 엄청난 비효율적인 언어인 라틴어가 왜 아직도 유럽 중, 고등학교 교육에서 중요한 과목으로 강조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공부란 무엇이며 어떤 태도로 공부에 임해야 하는지에 관해 중요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책에서는 효율이나 효용을 따진다면 라틴어를 결코 공부할 수 없다고 암시한다. 현재 잘 사용되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들이는 노력에 비해 성과는 좋을 수 없다. 쉽게 익히지 못하고 사용도 못하는 이 고어의 정체성은 '그냥 하는 공부의 즐거움'과 '인간과 세상을 보는 틀'을 익히는 데 있다. 라틴어는 많은 언어의 어원이기 때문에 라틴어를 익히는 것만으로도 왜 그런 단어가 생겨났는지 관련된 사회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기 쉽다. 또, 이 무지막지한 언어에 대해 그냥 공부하는 그 자체만으로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공부를 좀 더 능숙하게 진행할 수 있는 추진력을 얻고, 몰입의 즐거움을 더 배가시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늘 본인의 첫 강의 시간에는  봄날의 아지랑이를 보러 운동장으로 나가길  학생들에게 권하며 '휴강'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지랑이를 뜻하는 라틴어 '네불라'의 어원이 보잘것없는 것, 허풍을 뜻하는 '네불로', '네불로수스'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리고는 공부를 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의 아지랑이를 보는 일과 같다고 덧붙인다.


아지랑이를 보는 일. 삶이 불 분명하고 희미하다는 것을 서술한 문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마음에 큰 위안을 받았다. 그리고 내 속의 아지랑이를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준 용기와 위안으로 그동안 묻어두고 애써 외면했던 나의 아지랑이를 조심스레 꺼내어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현재 나는 매일 모락모락 피어나는 아지랑이를 따라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외에도 책은 라틴어를 빌려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지는 것, 진정한 쉼이 되는 휴식,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 중요성에 대해 정성껏 설명한다. 라틴어는 하나의 단어 혹은 한 줄의 문장만으로도 생이란 그냥 그렇게 또박또박 살아가는 것이며, 순간을 충만히 누리고, 지난 것들을 흘려보내며 나 스스로를 알아차리는 것이라는 진리를 충분히 진정성 있게 전달한다. 수많은 시간 동안 삶과 죽음, 신과 인간에 대해 고찰해 온 라틴어는 이토록 아름답고 멋진 매력을 품고 있는 고대어였다.


책을 통해 나는 '삶은 늘 엉망이고 희미하며 혼란스럽다. 그것을 인정하고 나의 아지랑이를 찾아가는 것. 죽지 않고 또 한 번 살아내는 것. 그것이 희망이다.'라는 값진 메시지를 얻을 수 있었고, 이를 발판 삼아 기존과는 다른 삶을 살아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아직도 급습하는 불안감과 슬픔이 나를 지배할 때가 있지만, 나만의 아지랑이를 부여잡고 스스로의 리듬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내가 어둠 속에 있을 때, 작은 불빛을 건네준 <라틴어 수업>에 고마움을 전하며, 오늘도 자신과 힘겨운 씨름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냥 함께 또 하루를 살아보면 어떻겠냐는 진지한 권유를 공중에 보내본다. 또 하루가 밝았다.


덧.

개인적으로는 '처음부터 인간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연민과 사랑의 대상일 뿐이다'라는 문장에 다시 한번 그동안 받은 상처에 억울하고 슬펐던 마음을 씻어낼 수 있었다. 인간이란 본래 태생이 불완전한 것. 사랑하기로 마음먹는다면 애초에 실망할 일도 없을 것이라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 본다.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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